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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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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 수 0
2009년 11월 9일 11시 04분 등록

입을 옷이 없어 고민하는 살찐 아들이 안쓰러우셨던지 어머니께서 바지를 한 벌 사다주셨습니다. 상설할인매장에서 사셨다는데, 가격도 적당하고 만듦새도 괜찮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이즈가 넉넉해서 편안했습니다. ‘어떠냐?’고 물으시는 어머니께 ‘괜찮다’라고 답한 것이 큼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대답하는 순간에는 몰랐습니다.

다음 날 저녁, 퇴근하는 저를 반긴 것은 ‘열한 벌’의 바지였습니다. 거실 쇼파 위에 거대한 산처럼 쌓여있는 바지들을 보는 순간 저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괜찮다’는 제 대답은 ‘더 사주시면 좋겠다’는 말로 자연스럽게 번역되어 어머니께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퍼줘도 아깝지 않은 것이 부모님의 사랑인가봅니다. 그래도 열한 벌의 바지는 좀 많지요?

어머니는 우선 한 벌을 세탁소에 맡겨 길이를 줄여다 주셨습니다. 기존에 제가 입던 바지 중에 하나를 들고 가서 그 길이에 맞춰 줄여달라고 하셨던 모양입니다. 제가 원래 입던 바지에 맞춰서 길이를 줄였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잘 맞았습니다. 여기서 끝냈어야 하는데, 특유의 고약한 버릇이 다시 발동했습니다.

이리저리 보다보니 길이가 조금 짧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지를 입은 채로 가족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대답이 제각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하셨고, 어머니는 조금 짧은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묻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번 품은 의문이 쉽게 가라앉을 리 만무합니다. 결국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전문가는 다름 아닌 세탁소 아저씨입니다.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바지 11벌이 걸린 일이니 아무래도 신중해질 수 밖에요.

주섬주섬 챙겨서 세탁소로 나섰습니다. 어쩐지 조금은 창피한 마음을 누르며 세탁소에 들어서서 오그라드는 목소리로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이 바지 길이 괜찮은가요? 제게 잘 맞는 건가요? 짧거나 길지 않아요?”

아저씨는 잠시 멈칫 하더니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나지막이 대답했습니다.

“입는 사람 마음이지요. 바지 길이에 정답이 있겠어요?”

그 말을 듣고서야 마음이 제자리를 찾습니다. 매번 내가 모르는 정답과 비법이 있지 않을까 마음이 바쁘고, 분주합니다. 남이 찍어주는 모범 답안을 놓칠 새라 여기저기 기웃거리느라 혼이 빠질 지경입니다. 결국 중요한 결정은 자신이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시도 때도 없이 흐트러지는 마음을 오늘도 추슬러봅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짐해봅니다.

“내 삶의 정답은 내가 정한다.”라고......

당분간 바지 걱정은 안 해도 되겠습니다. 더불어 열한 벌의 바지를 골고루 잘 입으려면 잠시 살 뺄 생각도 접어둬야겠습니다. 늘어만 가는 뱃살에 교묘한 핑계를 하나 붙여주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여러분의 월요일도 제 것과 같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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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9.11.09 19:06:22 *.160.33.244


종윤아,  오전 오후 하루 두 벌씩 바꿔 입어라.  쉬는 날 빼고 그래도 한 벌이 남는 구나.   
그 한 벌이 묘수구나.  요일마다 다른 컴비네이션이 가능하구나. 
어째서 열 한 벌을 사주셨는지  알겠구나. 
(애는 지가 낳나, 어째 맞는 옷이 없었을까 ?  신기하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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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09:32:31 *.96.12.130
ㅎㅎㅎ 그리 웃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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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9.11.09 19:11:07 *.72.153.59
크하하하하. 종윤 미안. 크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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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09:31:54 *.96.12.130
사부님~ 저도 같이 애 낳았어요. 짝수는 맞아떨어져서 좋고, 홀수는 남아서 조화를 이루니 또 좋네요. 사부님 소주 한잔 사주세요~ 어머니가 사주신 예쁜 바지 입고 달려가겠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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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in
2009.11.10 13:05:53 *.51.36.225
“내 삶의 정답은 내가 정한다.” 는 말은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사람이 되라는 뜻인 것 같기도 합니다...
축하가 늦었네요.. 아빠,엄마 닮았으니 얼마나 예쁘겠어요... 유진씨 한테도 안부 전해주시고.. 건강하게 잘 키우시길 바래요..  그리고 볼때 마다 느끼지만 종윤씨는 일상의 삶에 대한 애착과 소중함을 잘 아시는 분인것 같습니다.. 그럼 담에 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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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09:36:52 *.96.12.130
주민이형, 읽어주고 글까지 남겨줘서 고마워요. 은빈이랑 엄마랑 병원까지 찾아와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형이 둘째 갖는 거 절대 반대라던데, 사실이예요? 더 늦기 전에 깊이 생각을 해보심이 어떨런지... 저희는 다다음주에 이사해요. 형네도 잠실로 이사한다고 들었는데, 언제 가요? 가까울 때도 잘 못봤는데, 멀어지면 더 힘들어지는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하긴 잠실하고 장안동이면 그리 멀지도 않은데. 항상 마음이 문제네요. 만납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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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09.11.11 02:59:16 *.248.91.49
정화씨 웃고있는 옆에 서서 나도 우히히히힛~ 웃을래요.
사랑스럽고 이쁜 두 아이를 닯아가는 철부지 아부지?

어머니 눈에는 그저 " 귀여운 내새끼..."랍니다..
자랄 때도 그렇고 다 자라고 난 후에도 그렇고..아기 아부지가 되어도 그렇고 말고요......

다시 세탁소에 가서 바지단에 똑딱 단추 달아달라고 해보세요.
1단, 2단,  3단으로...... 신발에 맞춰서 바지 길이 조정할 수 있도록....

정이 넘치는 정바지...담에 함 보여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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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09:38:35 *.96.12.130
똑딱 단추 아이디어 베리 굿!이네요. ㅎㅎ 그런데 정말 그런 바지가 있나요? 매번 본문보다 더 좋은 댓글이 달리기까 참 좋네요. 거창한 거 말고,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해야 한다는 말씀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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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11.11 07:22:29 *.64.107.166
종윤씨..

어지간하면 살빼세요..^_^
살빼면 스무벌 사주시려고 하실 것 같은데...

내 삶의 답은 내가 정한다..멋있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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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09:41:14 *.96.12.130
수유에 전념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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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
2009.11.11 09:22:54 *.129.245.79
네...어지간하면 살빼세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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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09:40:49 *.96.12.130
ㅡㅡ; 네~ 살 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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