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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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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일 00시 34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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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목소리 무겁게 나의 전화기로 들리던 그날, 이곳 숲은 막 불타오르던 중이었습니다. 붉나무와 화살나무, 산벚나무 잎들이 하도 붉어서 그들이 차지한 자리의 숲에 내 넋을 빼앗기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대 절망 앞에서 몸부림치고 있다는 그 어려운 고백을 듣기에는 숲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운 날이었습니다.

 

새로운 길로 나선 그대 삶이 지금 겨울 숲처럼 가난하다 했습니다. 전화요금을 걱정하고, 달 세를 치르기 어려운 지경이라 했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그대의 새로운 길에 호응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그대 통증이 단풍처럼 내게로 옮아왔습니다. 나는 이미 그대의 통증이 어떤 것일지 아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해서 그저 그대 목소리에 묻어 있는 절망의 통증을 그냥 듣기만 해야 했습니다.

 

이제 차마 그때 해주지 못한 말을 적어 보냅니다. 소리 내어 우십시오. 아직 그대에게 다가오지 않은 그날을 견딜 힘을 모두 잃었다면 이제 어쩌겠습니까? 그저 우십시오. 밤을 새워 펑펑, 엉엉 우십시오. 때로는 우는 것만이 유일한 기도인 때가 있는 법입니다. 더는 눈물도 소리도 낼 수 없을 만큼 분노를 토해내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삶입니다. 하지만 소리를 듣기 바랍니다. 더 견디고 기다려야 비로소 기다리는 때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그 무자비한 신의 목소리를 듣기 바랍니다. 분노를 잠재워 인내의 강에 이르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기 바랍니다.

 

지금 산방 마당에는 봄 풀과 여름 풀 속에서도 제 자리를 지킨 산국이 한참 제 꽃망울을 키우고 있습니다. 모든 풀 사위어 가는 지금까지 그가 넘었을 여름날의 절망이 꽃망울 하나하나에 담겨 있습니다. 그이는 스무 날 뒤에 내릴 서리조차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달빛 머금은 이슬을 맞으며 바위처럼 서있습니다. 이제 곧 그이가 피울 노란 꽃이 이 숲의 언저리를 가득 채울 것입니다. 나를 포함해서 그이의 개화를 기다리는 모든 생명이 서릿발 속에서도 기뻐할 그날이 지금 막 오고 있습니다.

 

마찬가지 그대의 절망도 때에 이르러 멈출 것입니다. 그대가 절망이라 부르는 그것 또한 그대의 의지를 시험하는 신의 뜻일 것입니다. 신의 시험은 늘 한 여름 겪었을 산국의 절망과 같고, 서릿발 내려칠 개화 직전의 마지막 절망과 같습니다. 그러니 부디 아직 허리를 꺾지 말아 그때와 만나십시오.

 

그대의 절망에 그저 우십시오라고 밖에 말하지 못하는 지금의 나를 용서하십시오. 다만 산국화 만개하는 날 이곳에 들러주십시오. 그대 닮은 그 꽃 지천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IP *.229.1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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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9.10.01 04:46:53 *.46.87.112
그대의 글은 마치 한폭의 동양화 같습니다.
그대의 글은 한맺히게 살다간 죽은 시인의 노래같습니다.
그대의 글은 세속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우리를 천국의 계단으로 인도하는 아라비안이야기 같습니다. 

당신이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임니다. 어제 몸이 아픈 내자는 "용규씨에게 마른 멸치라도 한포 보내줍시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살아가는 것이 어려워서인지 "그래야겠지"라고 대답만 했을 뿐임니다.  한심한 늙은이의 변명이 그대의 글을 읽으며 희안의 눈물이 흐를 뿐입니다. 그대는 지금 어려워도 자연과 사는 위대한 생로를 걷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이의 부러움입니다. 그대는 변화를 실천할수 있는 것은 용기라는 강렬한 에너지 때문입니다. 추석을 잘 지내시고 건강하세요.  좋은 글 잘 읽고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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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10.05 10:57:42 *.229.146.110
초아선생님. 별 말씀 다하십니다.^^
추석명절 잘 보내셨지요? 사모님과 선생님, 항상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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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
2009.10.01 08:48:14 *.246.146.19
백오, 초아 선생님 말처럼 그대의 글은 시처럼 읽혀서 좋다.
여백을 두어 생각할 거리를 주는...
우행순 모임에서도 누가 그러더군, 그대 글이 참 좋다고. 나도 동감이네.

최고의 공감은 그저 듣기만 하는 거라던데
 그대는 친구의 가슴앓이에 단풍드는 사람이니 그 이상 뭐가 있겠나...

산방에서의 추석 준비는 어떠한가? 아무튼 건강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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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10.05 10:59:56 *.229.146.110
덕분에 추석 명절을 잘 보냈네.
형산의 한가위도 풍성했겠지?
우행순은 영화 이름 아니던가? 영화모임도 시작한 게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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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10.01 12:06:28 *.190.122.223
아름다운 놈님.

한편으로 생각하면 무거운 이런 편지에 가벼운 질문하나 드릴께요.

산길을 거닐다가 떨어지는 꿀밤(도토리)를 주었습니다.

꿀밤을 심으면 나무가 자랄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산에 벌초를 갔더니 다람쥐가 숨겨놓았던 꿀밤들이 참나무로 자라났더군요.

꿀밤(도토리)를 어떻게 하면 나무를 싹틔울 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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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10.05 12:08:35 *.229.146.110
두 분 글을 읽다보니 햇빛과 그늘이 곧 살림을 차리지 않을까 싶군요. ㅋㅋ
두 분 다 추석 명절 잘 보내셨지요?

궁금해하시는 것에 대해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도토리는 참나무의 열매요 씨앗입니다. 녀석들은 땅에 묻혀서도 비옥한 흙 위에서도 싹을 틔울 수 있습니다.
한편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그것을 주워 묵을 쒀먹었습니다.
물론 다람쥐에게 도토리는 중요한 식량이지요. 녀석들은 그것을 주워 앞발로 잡고 돌려가면서 까먹습니다.
또한 겨울철 식량으로 삼기 위해 여기저기 묻어두고 숨겨두는 습관도 가지고 있지요.
산까치라 부르는 어치들도 도토리를 식량으로 이용합니다. 녀석들도 월동을 위해 저장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렇게 숨겨놓은 녀석들 중에 일부 잊혀진 도토리가 발아의 기회를 얻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은 도토리가 스스로 번식을 위한 장치를 갖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녀석들의 모양을 잘 살펴보면 길쭉하면서도 동그랗게 생겼습니다. 구르기 위한 장치지요. 도토리가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 적당한 거리만큼 굴러가서 싹을 틔울 자리를 잡게 하기 위한 모양인 것이지요.
요컨대 참나무는 다람쥐나 어치 등 동물들에게 도토리를 식량으로 제공함으로써 번식의 기회를 얻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번식할 기제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관련된 질문으로, 찔레 열매처럼 새의 먹이가 되어 멀리 번식을 꾀하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녀석들은 새의 위장을 통과하면서도 씨앗의 원형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새 똥에 묻어나오므로 자연퇴비를 얻는 효과도 있지요. 하지만, 도토리는 위의 동물들에게 먹히면 씨앗의 원형을 잃습니다. 번식이 불가능한 것이지요. 온전하게 도토리가 보존되어야 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대표적으로 6종의 참나무가 있습니다.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가 그것입니다.
그 외에도 변종과 품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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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10.02 08:10:25 *.134.170.87
나의 반쪽(?) 그늘처럼님..
반갑습니다.
도토리는 다람쥐가 먹고 싼 것에서 자라는 것은 아닌 것 같고요.
다람쥐가 겨울에 먹으려고 저장해(숨겨) 두는데
그 장소를 다람쥐가 까먹어서 싹이 트는 것 같아요.

도토리는 자체가 씨앗 아닐까요? 

=

명절 잘 보내시고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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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처럼
2009.10.01 21:52:56 *.168.105.30
반가워요. 햇빛처럼님...
다람쥐가 도토리를 먹고 난 후 배설물을 분비해야 되지 않을까요?
물론 배설물에는 씨가 있어야 되는데... 씨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지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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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전략
2009.10.01 13:24:09 *.121.106.107
캬~  이게 아닌감..?
출력해서 한 번 더 읽었습니다.
또 누구에게 전할까 생각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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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10.05 12:09:17 *.229.146.110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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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2009.10.02 02:24:35 *.201.18.113
비가 내립니다.
문득 형님이 그립습니다.
전화를 드리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네요....
추석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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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10.05 12:09:57 *.229.146.110
어째서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신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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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처럼
2009.10.02 11:18:34 *.49.20.175
메일로 읽고 눈물이 핑 돌았는데 이렇게라도 댓글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견뎌내야 하는 삶의 여정을 님의 글을 읽으며 힘을 내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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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10.05 12:10:32 *.229.146.110
저도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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