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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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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2일 01시 33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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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의 가녀린 줄기를 보라. 잎을 줄여 바람에 대한 저항성을 줄였다. 그 유연한 올곧음으로 그는 자신의 영토를 키우고, 생태계에 대한 기여도를 늘려왔다. 그의 올곧은 유연함을 배우고 싶다.

상강을 앞두고 며칠 새 두어 차례 비가 내렸습니다. 추워졌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핀 뒤에 잠을 청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가깝습니다. 하지만 심어놓은 배추와 쪽파, 무는 찬 비도 마다하지 않는 듯 합니다. 비가 온 다음날 그들 곁을 지나면 부쩍 커진 키가 반갑습니다.

 

이 즈음의 비는 십중팔구 바람을 데려 옵니다. 며칠 동안 오두막 처마 끝의 풍경 소리가 한결 요란합니다. 산방 먼 앞을 흘러 한강에 이르는 강, 달천에도 거센 바람이 몰려왔다가 또 흩어지기를 반복합니다. 바람이 불면 갈대와 억새는 그 흐름을 따라 눕고, 그 멈춤의 순간을 누려 다시 일어섭니다. 바람에 꺾이지 않고 오히려 그것으로 번영의 기틀을 잡아내며 자기를 지키는 그 모습은 하나의 예술입니다.

 

갈대는 갈색 이삭을 달고 대나무를 닮은 줄기를 세운 풀입니다. 잎은 이삭 가까이의 줄기에 까지 달립니다. 억새는 갈대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그 이삭이 빛을 받으면 갈색보다는 은색으로 빛납니다. 길쭉하고 날카로운 잎 가운데를 관통하는 잎맥도 갈대보다 흰빛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잎은 이삭을 다는 기다란 줄기의 아래쪽에만 있습니다.

 

갈대는 주로 물가에서 자랍니다. 하지만 억새는 물가에서도, 들에서도, 심지어 화왕산 억새군락처럼 산 정상에서도 자라는 풀입니다. 그만의 세상을 갈대보다 더욱 넓게 차지할 줄 아는 지혜를 담고 있는 풀이 억새입니다. 억새는 물을 정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수질 전문 실력가입니다. 물 주변 토양의 유실을 막아주는 역할도 합니다. 갈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는 곳이 넓고 다양해서 갈대보다는 억새가 더 너른 면적에서 그러한 역할을 감당하는 편입니다. 또한 둘 모두 한 해를 살고 지운 줄기를 우리에게 주어 발로 쓰이거나 지붕을 이는 재료로 헌신하여 왔습니다. 하지만 억새는 갈대보다 내구성이 좋은 편입니다.

 

가을이 오면 그대는 색색의 단풍과 낙엽에 마음을 빼앗긴다고 했지만, 나는 수수한 갈대와 은빛 억새에게 더욱 마음이 가는 편입니다. 특히 억새는 산국과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을 풀입니다. 햇살을 받으며 뿜어내는 은색의 고운 자태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험한 땅 마다 않고 차지한 자리에서도 그들만의 독특한 꽃(이삭)을 피우고 마침내 결실로 이어내는 굳건함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태계에서 그가 품은 꿈과 그것을 실현할 줄 아는 그만의 비결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갈대도 멋진 풀이지만, 내가 보기에 억새는 그것을 뛰어넘은 풀입니다. 갈대보다 넓게 숲 생태계 도처에서 살 줄 아는 지혜가 빼어남의 핵심입니다. 억새가 뽑아 올리는 줄기는 낚싯대의 마지막 부분보다도 더 가녀립니다. 갈대와 달리 줄기에 달린 잎이 무척 간결합니다. 그것은 아마 이 즈음부터 불어대는 바람을 견디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잎이 많으면 바람에 대한 저항도 커집니다. 들판과 산 정상의 바람을 견디기에는 역부족일 것입니다. 쓰러지기 쉬울 것이고, 쓰러지면 씨앗을 날려 먼 곳에 번식을 꾀하는 일도 어려워질 것입니다. 따라서 줄기의 잎을 억제한 억새는 갈대보다 더 모진 바람을 견디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더 다양한 서식처를 확보할 수 있었고, 자연히 숲 생태계에서 보다 더 잘 번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억새의 줄기는 확실히 올곧습니다. 하지만 선비들은 대나무나 낙락장송의 올곧음과 푸르름을 더욱 사랑했습니다. 예전의 나도 그랬습니다. 바람을 이겨내고 마침내 그 바람을 이용해 씨앗을 날릴 줄 아는 억새의 지혜를 보지 못한 채, 유약함이라 혐오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억새의 유연한 올곧음을 더욱 닮고 싶어집니다. 그들에게서 미처 발견되지 않은 올곧은 유연함을 닮고 싶습니다. 갈대나 대나무, 낙락장송이 갇히기 쉬운 고립된 영역을 깨고 나가 더 너른 영역에 희망의 씨앗을 나누어주고 싶습니다. 이제 부러지기 쉬운 올곧음을 버리려 합니다. 차라리 억새의 올곧은 유연함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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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오키드
2009.10.22 11:47:53 *.137.144.102
안녕하세요?  얹그제 그곳으로 엠티를 다녀온 나우사의 멤버입니다.
부족한 잠과 거른 끼니에도 불구하고 형형했던 김용규님의 눈빛이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김용규님의 그 씨앗하나 제 마음밭에 담겨 발아하려 꿈틀댐이 느껴집니다.
님의 건강한 씨앗들이 바람을 타고 햇살처럼 세상 곳곳으로 번져나가길
온맘으로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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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10.23 10:53:55 *.229.241.136
뷰티오키드님도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신지 얼굴과 닉네임을 연결지을 수는 없으나 무척 반갑습니다.

말씀대로 저는 숲에서 숲 이야기를 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생기있는 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뷰티오키드님과 나우사분들도 모두 많이 고단하셨을 텐데 어느 한 분 그런 기색 없이
숲과 깊이 소통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저도 참 기뻤습니다.

뷰티오키드님도 진정한 '나우사'로 성장해 나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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