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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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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4일 16시 22분 등록

어릴 적 저희 집엔 거북선 모양의 저금통이 하나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우연히 생기는 동전과 지폐로 저금통을 채우셨습니다. 그 무렵 전자오락실에 맛을 들인 저는 그 저금통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씩 주어지는 몇 백 원의 용돈으로는 오락실에 대한 갈증을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죠. 부모님께서는 장롱 위의 보일락말락하는 자리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거북선을 놓아두셨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제게 검은색 자개 장롱은 까마득히 높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옆에는 어머니의 화장대가 놓여있었습니다. 어린 양심이 악마의 유혹에 무릎을 꿇던 날, 저는 화장대에 올랐습니다. 작은 도둑질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동전을 주 공략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지폐를 건드리기엔 통이 작았던 거지요. 때때로 오락실 생각이 간절해지면 한번씩 화장대에 올랐습니다. 절도행각이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저금통이 가벼워지는 것을 눈치채신 부모님께 덜미를 잡히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범인 색출 작업에 걸려든 것은 뜻밖에도 제 동생이었습니다. 제가 백 원짜리, 오백 원짜리 동전을 노린 것과는 달리 간 큰 제 동생은 지폐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었습니다. 녀석의 범행 동기도 저와 마찬가지로 오락실이었습니다. 덕분에 제 형량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풍부한 초기 투자의 영향이었는지는 몰라도 동생은 게임을 잘하고 또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컴퓨터 게임을 만드는 프로그래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좋아하는 게임을 직접 만들게 되자 전처럼 게임을 즐기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제 동생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녀석은 게임이 아닌 다른 분야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그 일이 싫어지는 걸까요?

심리학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체스 선수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들이 체스에 몰입하게 되는 원인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많은 응답자들이 체스를 ‘지적인 도전’이라고 표현한 점에서는 일치했지만 그 도전을 즐기는 방식은 제각각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체스 게임을 통해 마주하는 상대와의 경쟁 그 자체에서 몰입을 경험하고, 다른 사람은 체스에 대한 책을 읽으며 실력을 향상시키는 연구 과정에서 몰입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일부는 많은 수의 잡지를 구독하며 최신 소식을 습득하는 일에서 희열을 느끼고, 또 다른 사람들은 클럽에 가입하고 거기에 속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합니다.

이 인터뷰가 시사하는 바는 응답자들의 답변만큼이나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 제가 눈여겨본 것은 우리가 하나라고 규정한 활동 혹은 직업 속에 내재된 다면성입니다. 게임이 좋아서 게임 프로그래머가 된 제 동생은 체스가 좋아서 체스판을 만들겠다고 나선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던 셈이지요.

저는 탈출을 꿈꿉니다. 10년 가까이 묶여있던 직업의 굴레를 벗어나 강점과 기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새로운 무대를 꿈꿉니다. 그런 저의 발목을 붙잡는 것은 미래가 가진 불확실성이나 부양해야 하는 가족들에 대한 의무감만은 아닙니다. 도약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현재의 상황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으며 최선을 다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불신입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현재의 일을 시험해보지 못한 제 자신에 대한 의구심입니다. 이제 제가 직면한 현실이 품고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오늘은 어떤지요? 지금 하는 일에서는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요?

게임 대신 선택한 모바일 플랫폼 분야는 조금 나은 근무 환경과 급여를 제공했지만 동생은 가끔씩 과거를 그리워합니다. 자신에게 필요했던 것이 외적인 보상만은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모양입니다. 지금 박차고 떠나면 이 자리가 다시 그리워질까요? 미처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하고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바닥을 열면 동전을 쏟아내던 황금빛 저금통이 그리운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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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4 17:13:10 *.121.106.107
단순, 도발적인(?) 제목에 끌렸습니다. 재미있게 읽었고요.
전 얼마 전 서거하신 김 대통령 지지자는 아니어서 어제 하루종일 아이들과 계곡에 가서 더위를 식혔습니다.
그런데, 영결식을 라디오로 들으며, 다음과 같은 생각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내 꿈이 너무 작은 것은 아닌가?'
'안주하려는 사람었다면 저런 인생을 살 수 있었겠는가!"
...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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