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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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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1일 10시 28분 등록

“제가 등반을 시작했을 때는 제 기억 속에 가지고 있던 것들이 다 잘려 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지나간 30초였으며, 앞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다가올 5분이었으니까요. …… 엄청나게 집중함으로써 정상적인 세계는 잊혀졌습니다.”               – 어느 암벽등반가의 인터뷰 중에서 -

지난 한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머리 속은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다른 무엇도 들어설 틈이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생각으로 인해 잠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피가 마를 지경이었습니다. 저를 그토록 물고 늘어진 고민의 정체는 바로 ‘집’이었습니다.

모든 일은 갑자기 벌어졌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결정된 것은 지난 월요일 밤이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아내와 저는 몹시 당황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간단할 수도 있는 그 일이 제게는 가족의 전 재산을 걸고 하는 도박인양 느껴졌습니다.

어떤 집을 구할지 고민하는 동안 다양한 심리상태가 저를 휘젓고 지나갔습니다. 가진 돈에 맞춰서 지금 살고 있는 곳과 비슷한 수준의 집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집을 구하는 일은 그저 조금 귀찮고 번거로운 일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대출을 받아서라도 더 나은 집을 알아보기로 생각을 바꾸자 상황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더 많은 선택이 가능해졌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내년이면 유치원에 가는 아들 아이에게 작은 자기 방을 만들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가슴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일년이 넘도록 집중해왔던 번역 일을 마친 후 찾아왔던 나른한 휴식과 권태에서 벌떡 깨어나는 느낌이었습니다. 대출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상환해갈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는 동안 의욕이 솟아올랐습니다.

하지만 생각은 필요한 데서 멈추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크고 좋은 집에 대한 욕심이 커지자 대출 금액을 늘리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설렘은 사라지고 공포와 탐욕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때부터 불면의 밤이 이어졌습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암벽등반가들이 외적인 보상도 없는 그 일에 깊이 몰입하는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인터뷰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적절한 수준의 ‘위험’과 그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몰입의 중요한 원인임을 발견했습니다.

암벽등반에는 엄격한 등급체계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그리고 자신이 오르려고 하는 코스의 난이도가 어떤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기술수준보다 등급이 현저히 낮은 코스를 오르는 등반가는 별다른 재미를 느낄 수 없습니다. 반대로 너무 높은 등급의 코스를 선택한 초보 등반가는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되는 공포를 경험하게 됩니다. 두 경우 모두 암벽등반에 몰입할 수 없는 거지요.

결국 지난 토요일, 새로운 집을 계약하면서 상황이 일단락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탐욕으로 인한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가족들의 도움이 컸지요. 소심한 제 성격도 크게 한몫 했고요. 대출을 일으켜서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데요. 대출이라는 위험 요소가 제 삶으로 들어오자 투지가 생기는 건 사실이네요. 거기에 그 위험을 함께 하게 될 가족들과의 강한 유대감은 덤이고요.

여러분의 삶에는 어떤 위험이 존재하는지요? 아무런 위험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삶이 조금은 단조롭게 느껴진다면, 적당한 수준에서 하나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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