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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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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4일 13시 06분 등록
회사 체육 행사를 위해 북한산으로 향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키지 않는 등산이었지만 일단 산의 초입에 서자 기분이 제법 괜찮았습니다. 오랜만의 산행에 대한 약간의 흥분도 상쾌했고, 촉촉한 아침 산의 기운이 몸을 휘감는 감촉도 시원했습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리며 동시에 산행을 시작했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오르는 통에 얼마 안 가서 모두 흩어졌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갈림길을 하나 만났습니다. 이미 사람들이 줄지어 오른쪽 길을 따라 산을 오르고 있었고, 뒤를 따라오던 사람들 역시 멈칫거리는 저를 스쳐지나 오른쪽 대열로 합류해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제 눈엔 왼쪽길이 맞는 것만 같았습니다. 지도랍시고 손에 들고 있던 종이 조각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제가 서있는 자리조차 찾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매번 갈림길에 서서 오만 가지 걱정을 다했습니다. 작은 실수도 피하겠다는 무모한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지요. 모든 시작은 불완전하다는 진리를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완전한 시작이라는 허상에 갇혀서 갈림길 주변을 안절부절 서성이다 주저앉곤 했습니다. 그 버릇이 그대로 남아있었던 모양입니다. 잠시 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있다 보니 문득 오기가 솟았습니다. ‘이 작은 산에서 어디로 간들 길을 잃을 것도 아닌데……’하는 소박한 용기였지요. 그렇게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떼자 작은 모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인적 드문 산길을 혼자 걸으려니 처음에는 으스스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묘한 쾌감이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흐린 하늘 아래 눈부시게 흐드러진 철쭉도 끝내줬고, 바로 머리 위 나무 가지로 날아와 기묘하게 노래하는 새소리도 황홀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만의 보폭으로 걸을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갈림길에서 머리 속을 어지럽혔던 우스운 이유들은 시원한 바람에 실려 날아가버렸습니다. 그렇게 조금 외롭지만 달콤 쌉사름한 자유의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혼자만의 산행을 즐겼습니다.

전혀 다른 길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길이 다시 이어지고 결국 정상에 닿았습니다. 산 속의 길은 그렇게 다 통하는 모양입니다. 산을 내려와서 예약된 식당으로 들어서자 동료가 왜 이제야 왔냐며 의아해합니다. 불과 10여분 일찍 도착했다는 동료의 질문이 오히려 신기합니다.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생각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마음 속 한마디가 미끄러져나옵니다.

“그저 조금 돌아왔을 뿐이야.”

이 말 괜찮네요. 우리가 두려워하는 실패는 조금 돌아가는 길에 붙여진 거창한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갈림길에 선 당신의 발목을 붙잡는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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