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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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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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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5일 09시 32분 등록
요즘 저는 하루하루 사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또 다른 하루가 제게 주어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토록 눈부신 하루를 선물 받을 만큼 저는 근사한 사람이 아닌데 말입니다. 더구나 저는 역사와 미래가 기억해 줄 엄청난 일을 한 사람도 아니고, 남보다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소소한 일에 짜증을 잘 내고, 아이들에게 자주 잔소리를 늘어놓는 40대의 평범한 아줌마일 뿐입니다. 그런데 왜 하루하루가 재미있냐구요? 혹시 날마다 재미있는 일이 계획되어있는 건 아니냐구요? 아닙니다. 제가 맞는 어제와 오늘?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었냐구요? 아닙니다. 저는 누구보다 인생이 힘들다고 투덜대던 사람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닥치는 거냐고 틈만 나면 하늘에 대고 따지던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이토록 사는 것이 재미있다고 외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지난 주말, 울산에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에 행복숲에 들렀습니다. 얼마 전에 심어놓은 사과나무가 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심고, 바로 이틀 동안 흡족하게 비가 내린 덕분인지 어린 사과나무는 자리를 잘 잡고 어여쁘게 꽃까지 피우고 있었습니다. 사과나무 한 그루를 그토록 그리워하는 마음이 저를 아주 행복하게 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탈없이 잘 자라 주는 것이 어미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아는 저는 그런 마음으로 사과나무가 자라는 모습도 지켜보게 될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친구 한 명과 출발한 저는 중간에 두 명의 친구를 제 차에 태웠습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외진 두 곳을 찾아가면서도 제가 그토록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여행을 행복하게 해 줄 좋은 친구들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동행이 네 명이 되자 그만큼 즐거움은 커졌습니다. 그리고 울산에서 돌아올 때는 제 차에 동행이 한 분 더 늘었습니다. 그 분은 친구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 때문에 서울로 오는 길이 훨씬 즐거워졌습니다. 떠나기 전부터 저는 그 분이 우리 차를 타고 상경하기를 매우 고대하였습니다. 그분이 우리 여행을 더욱 빛내줄 또 한 명의 주연인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차에 탄 5명은 모두 특이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다지 모범적인 사람들은 아닙니다. 모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그다지 소득 있어 보이지 않는 일을 위해 낯선 길을 나선 사람들입니다. 낯설다는 이유가 그들을 막지 못하는 것은 그들은 낯선 것에 유난히 흥분하는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그 어른도, 사실은 우리와 같은 과였습니다. 오히려 그 분은 더 많이 열려있고 더 많이 자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넉넉치 않은 공간에서 우리는 거의 10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갈 길이 먼데도, 카르페 디엄을 외치며 경주라는 샛길로 빠져, 막 문 닫는 불국사에 들어가 가장 아름다운 일몰과 막 불을 켠 연등의 장엄한 행렬을 보았습니다. 가장 선명한 블루로 피어오르던 밤 하늘과,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달과, 그 옆에 뜬 비너스를,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는 절의 지붕들 실루엣 사이로 바라보았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죽고 싶을 만큼 그러하였습니다.

내가 정말로 바라던 것들은 어쩌면 그런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을 한 점 의심 없이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순간들 속에 숨어있는지 모릅니다. 생각해보니 하루하루가 못 견디게 즐겁고, 기다려지게 된 것은 도처에 숨어있는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돌아보니 제가 읽는 책들과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변화가 있습니다. 책이든 사람이든 ‘그렇게 살아도 괜찮아’ 라고 독려하는 대상들이 제 주변에 늘어가고 있습니다.

Carpe Diem! 모든 것은 흘러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나는 순간순간의 각성으로 그렇게 날마다 읽고, 쓰고, 사랑하며, 하루 하루를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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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면을 빌어 우리를 정성껏 대접해준 영남권 식구들과, 함께 나눈 즐거운 교제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방어진을 앞에 두고 알콩달콩 살아가는 정겨운 부부와, 반구대 암각화를 보러 가던 그 아름다운 오솔길과, 느긋한 오후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유난히도 정겹던 어느 정자에서의 차 한잔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언양에서 맛보았던 떡갈비와 된장국수도요, 모두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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