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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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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8일 11시 57분 등록
“오빠, 나 지금 바로 입원해야 한대.”

물기 가득한 아내의 목소리를 듣자 심장이 명치 언저리로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았습니다. 불과 십여 분 전쯤 전화해서 하혈이 있다며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큰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매번 그렇듯이 어설픈 기대는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의사는 아내의 몸 안에서 14주를 맞이한 둘째 아이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며 확률은 반반이라고 했답니다.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주섬주섬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삼십 분의 시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아침을 챙겨주지 못한 아내에게 눈을 흘겼던 기억도 머리를 스치고, 겨울 옷을 정리하고 여름 옷을 꺼낼 때가 지나지 않았냐며 눈치를 주었던 순간도 떠올랐습니다. 혹시 그런 일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몸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아내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허둥지둥 입원실로 들어서자 환자복을 입은 아내가 환한 얼굴로 맞아주었습니다. 그녀의 손을 꼭 잡고, 큰 아이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서야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잦아들었습니다. 아직 안심할 수 없다는 간호사가 야속했지만 그나마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이후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우리 네 식구가 한 자리에 모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운이 솟았습니다.

아내와 장모님을 병원에 남겨둔 채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아이만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태어나서 3년이 넘도록 단 하루도 엄마와 떨어져서 잠을 자보지 않은 아이를 겨우겨우 얼러 재우고 나니 길게 남은 밤이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이런저런 상념들에 휘둘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아내에게 문자를 한 통 보냈습니다.

‘많이 놀랐지? 다 괜찮을 거야. 기운내! 사랑해!’

답이 없는 걸 보니 잠이 든 모양입니다. 어쩌면 오늘 일은 둘째라고 알게 모르게 소홀했던 저희 부부에게 ‘미소(둘째 아이의 태명)’가 보내는 신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번 계획과 실행에 대해서 떠들어대곤 했지만 가끔은 오늘처럼 할 수 있는 일이 기도뿐인 날도 있는 모양입니다. 깊이 잠이 든 아이 옆에 무릎을 꿇고서 간절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도를 해봅니다.

‘우리 미소를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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