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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09년 6월 2일 17시 58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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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를 돌아보니 몇 개의 단어가 튀어나옵니다. 메신저, 양은 냄비, 막내, 이어령, 인연...

 

먼저 메신저, 친한 친구 두 명과 지난 주 메신저를 텄습니다. 두 친구는 저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무거운 나이를 떨치고 조금 더 자유롭고 자기다운 공기를 숨쉬겠다고 선언한, 어떻게 보면 조금은 철이 거꾸로 드는 사람들입니다. 관습이나 윤리 같은 전방위적 사회 보호로부터도 자신을 격리시키려는 어쩌면 조금은 무모한 중년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재미도 있습니다. 편견을 버리는 만큼 우리는 실제로 자유로와지고 있으니까요. 욕 좀 먹고 대신 숨은 크게 쉬자, 그런 주의지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들 대화에는 격의가 별로 없습니다. 먼저 한 친구와 우연한 기회로 메신저를 트고 보니 메신저 대화라는 것이 참 묘미가 있습니다. 말로 하는 것보다 글자로 하는 대화가 더 깊고 맛이 있습니다. 대화 중에 터져나오는 통찰들이 날아가지 않고 활자로 컴퓨터에 날짜,시간과 함께 바로 저장된다는 것도 매력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친구에게는 내가 먼저 메신저 트기를 요구했습니다. 지난 며칠 메신저로 대화를 하다보니 늘 알던 친구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메신저를 이용하는 한, 시간을 잘 절제하는 것은 또 다른 숙제입니다.

 

양은냄비, 지난 주말에 모처럼 아이들이 다 모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동네 이마트에 갔습니다. 그곳 주방 잡화 코너에는 노란 양은 냄비가 있었습니다.  저 냄비가 말야...’. 반가운 마음에  한껏 상기되어 아이들에게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엄마, 우리들도 다 알아!’ 하며 심상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네 맞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잘 알 만큼 언제부터인지 옛날에 쓰던 물건들이 추억의 힘을 빌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시장에 가면 그런 물건들을 위해 추억의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양은냄비는 연탄불에 물을 올려 끓여먹던 라면과 함께 우리의 가난한 시절을 대변하는 추억의 물건 중의 하나입니다. 요즘은 양은 냄비에 라면을 끓여주는 식당도 흔하고, 양은 냄비를 파는 수퍼도 많아져서 양은 냄비의 희소성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렇다고 물건이 갖는 추억의 힘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요. 나는 그날 아이들의 응원에 힘입어 라면 하나를 끓이면 딱 맞을 작은 냄비 하나를 샀습니다. 그 냄비 때문에 라면을 더 자주 끓여먹게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거기에 끓여먹는 라면과 된장찌개는 유난히 맛이 있습니다. 가스레인지에 올려진 노란 양은 냄비를 볼 때마다 내 입가에는 웃음이 저절로 솟아납니다.  

 

막내, 유학 가 있는 막내 아이가 지난 금요일에 왔습니다. '엄마!' 눈을 떠보니 아이가 코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인사를 하였습니다. 밤새 안자고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든 사이에 아이가 당도한 것입니다. 재회하는 순간을 감격으로 맞이하고 싶었는데 잠자다 아들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아침을 차리는 동안 아들은 식탁에 앉아 이것저것 말을 쏟아놓았습니다. 아들이 오니 제법 사는 것 같은 풍경이 만들어집니다. 요리를 하는 동안 아이들이 옆에서 거들어주거나, 혹은 옆에 앉아 수다를 떨어주는 것을 나는 유난히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크면서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다들 제 일이 바빠 함께 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학만 되면 상냥한 막내의 귀가를 저도 모르게 기다리게 됩니다.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으며 아들은 예의 접대성 발언을 시작합니다.'역시 엄마가 해준 밥이 최고야. 이런 밥을 정말 먹고 싶었어.'우리 막내는 어렸을 때부터 시키지 않아도 달콤한 말을 잘합니다.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남의 마음을 잘 읽고, 어떻게 하면 상대를 기분 좋게 할지 잘 압니다. 나는 가끔 그런 아이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특유의 상냥함이 아이 나름의 처세가 아닐까 하는 안쓰러움도 있지만 사는데 요령을 먼저 피우게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입니다. 우리는 착한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남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집 식구들은 막내를 그렇게 남용합니다. 남용의 무기는 칭찬입니다. 아이가 칭찬에 너무 기대게 될까봐 걱정을 하면서도 나 역시 칭찬으로 그 애를 자주 남용합니다. 막내는 내가 마음을 나쁘게 먹었으면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아이입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막내를 유난히 이뻐합니다. 네 놈을 똑같이 사랑하려 하지만 한 쪽으로 치우치는 마음을 온전히 어쩌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저는 조급해하지 않고  아이를 믿어주며 기다리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내가 그랬듯이 아이도 언젠가는 자신 안의 어떤 갈증을 따라 자기다움을 찾아갈 때가 있을 테니까요. 아들이 오니 참 좋습니다.

 이어령, 요즘 저는 이어령씨가 연재하는 중앙일보의 칼럼 한국인 이야기를 즐겨 읽습니다. 그 나이에 날마다 그런 칼럼을 하나씩 써내는 것도 대단하지만 , 동서 고금의 문화를 마구 횡단하며 퍼올리는 그의 멋진 통찰과 우리의 것에 대한 방대한 지식은  그 자체로  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대학 다닐 때는 누구나 한번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그의 강의를 들어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박학다식함 그 자체보다도 지칠 줄 모르는 학구열에 존경을 보냅니다. 어떤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필요한 건 목마름이다. 정작 물을 만나면 다시 정체하지 않고 다른 목마름을 가지고 길을 떠나는 것, 그래서 나는 평생 늙지 않기를 바란다’. , 저 역시 그 나이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끝을 모르는 그의 열정을 사랑합니다.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그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거죠?’ 그가 대답했습니다. ‘돈 후안이 1003명의 여자와 사랑을 나눴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적 돈후안이오. 생명이 허락하는 한 지적 모험을 계속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난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낯선 곳에 가면 괜한 슬픔이 밀려와요. 고개 한 번만 돌리면, 언덕 하나만 넘으면 내 평생 보지 못했던 어떤 거리, 어떤 사람들이 있을텐데 그걸 다 못보고 지나쳐가는구나. 그런 아쉬움이 나를 끊임없이 몰아가지요.’ 그의 말대로 우리가 책을 자꾸 사서 읽는 것은 책장 하나를 넘기면 만나게 될 새로운 세상, 그 세상을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 아닐까요. 저 역시 보고 싶은 세상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렇게 몇 개의 단어로 정리해보니 저의 일주일이 조금은 더 입체적으로 보이는군요. 벌써 새로운 한 주도 절반을 향해 갑니다. 지난 주에 말씀 드린 것처럼 저는 요즘 계속 인연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앞에 어떤 새로운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중요한 건 자리를 내주어야 새로운 인연이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무엇을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그건 미련 때문입니다. 그런 미련이 보내주어야 할 인연을 잡고 있는 것을 넘어서 새로 올 인연까지 막고 있었다는 걸 저는 뒤늦게야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선택, 그것에 따른 기회비용을 기꺼이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으신지요. 그럴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인생은 더 즐길 만한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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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3 06:33:51 *.71.76.251

   소은의 단상을 따라가다 보니 나도 떠오르는 말들이 있네.  막내 아들은 언제 돌아가나? 집 밥, 그거이 참
  묘한 말이야. 여러가지가 함축 된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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