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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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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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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9일 06시 42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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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산방으로 오는 길 가에 있는 커다란 감나무 두 그루를 기억하시는지요? 늦가을, 감을 단 풍경이 참 예쁜 나무지요. 그 풍경이 좋아서 이곳을 찾아오던 그대 발 길도 잠시 멈추게 했다던 그 나무입니다. 겨울 초입 어느 날 나는 그 감나무 아래에 갔습니다. 주인이 그 감나무의 꼭대기 줄기와 가지들을 벤 뒤, 바닥에 버려 놓은 것을 주어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서였습니다.

 

열심히 감나무 땔감을 주어 트럭에 싣고 있는데 갑자기 까마귀 한 쌍이 근처 전봇대에 앉아 섧게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나를 보며 울고 있었습니다. 즉시 일을 멈추었습니다. 그들도 소리를 늦추었습니다. 그들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역시 나는 아직 생명 공동체와 불통하는 인간입니다. 다시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트럭에 싣기 시작했습니다. 까마귀들도 다시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더욱 맹렬하게, 심지어 이 전봇대에서 저 전봇대로 옮겨 다니면서짖기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잘려진 가지 끝에 달린, 이미 홍시의 수준보다 더 물러있는 감들을 가져가지 말라는 항의였던 것입니다. 감이 달린 잔 가지들은 두고 큰 줄기들만을 챙겨 얼른 차에 싣고 돌아왔습니다.

 

지난 가을, 나는 그 감나무의 윗부분을 베어낸 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아랫마을 어느 어르신의 아들입니다. 도시에 나가서 살고 있는 그가 연로한 모친을 대신해 감을 따고 있었습니다. 낮은 곳의 감은 다 땄는데 높은 곳의 감을 딸 방법이 없어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몇 주 뒤 다시 찾아온 그가 나무에 올라 높은 부분을 모조리 베어낸 것입니다. 이미 터져버린 감은 쓸모가 없었는지 잘려진 가지 끝에 그대로 달려 있었습니다. 그는 내년에는 낮은 가지에서 더 많은 감을 딸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나무를 잘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옛 어른들은 감을 따더라도 꼭 이삭을 남겨 두었습니다. 까치와 까마귀 같은 새들의 겨울 양식을 생각해서였습니다. 그것으로 새들은 겨울의 별미를 맛볼 수 있었고, 감나무 또한 다시 고욤나무로 싹 틔울 기회를 얻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감나무 이삭을 두는 모습이야말로 우리 조상들이 살아가던 방식입니다. 추수하며 흘린 벼 이삭, 탈곡할 때 다 떨어지지 않고 남는 곡식 몇 톨을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자연의 생명들과 더불어 살고자 했던 모습. 이 모습이 바로 예전의 삶을 관통했던 삶의 얼개입니다. 이것이 확장된 얼개가 우리의 공동체였습니다. 우리의 공동체에 담겨 있던 삶의 얼개는 타자를 배려하고 품는 것으로 더불어 사는 방식이었습니다.

 

나는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얼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이 위기와 절망의 원인이 개인들의 무능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얼개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얼개는 지나치게 무자비합니다. 손이 닿지 않는 감나무의 꼭대기마저 무참히 엔진 톱으로 잘라내는 방식의 얼개입니다. 누군가의 몫을 더 많이, 심지어 깡그리 거두어 부자가 되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 보는 방식, 지방을 희생하여 도시가 번영하는 방식, 다른 나라 노동자의 낮은 임금을 토대로 생필품의 가격을 낮게 유지할 수 있는 방식, 원주민의 삶을 내몰아 더 크고 높은 집을 지어 이익을 창출하는 방식, 이 모든 것에 무감각한 방식……

지금의 위기가 그 좋은 돈을 풀어 극복되더라도 지금의 얼개로는 훌륭한 대안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위기가 반복될 때 마다 희망은 점점 쇠할 것입니다. 더 많은 희망이 살 수 있는 새로운 얼개가 논의되고 연구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IP *.142.18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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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2.19 09:03:30 *.229.151.37
이 글에 쓴 사진은 사진쟁이 김주한님이 지난 가을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마땅한 감나무 사진이 없어 도움을 청했더니 선뜻 두 장의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목요일 새벽마다 편지를 올리고 보내는 작업을 해주시는 신재동님도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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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09.02.19 16:24:55 *.93.113.61
현재 개인과 조직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저에게 위안과 깨달음을 주는 글이네요.

봄을 시샘하는 겨울 끝자락의 몸부림 추위와 긴 가뭄으로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함을 글에서 해소할 수 있어 무척 안심이 됩니다.

요즈음처럼 마음이 힘들 때면 무작정 찾아가 뵙고 싶어집니다.

그 날을 기다리며 몇자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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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2.19 22:13:00 *.220.176.180
감꽃이 떨어질 때면 바람이 불면 달려가고 했습니다.
지금은 그 맛이 어떤 맛이었는지조차 기억이 희미하지만 실에 뀌어 목에 매달고 하나씩 빼먹기도 했었지요.

그리고 까치밥이라고 남겨놓는 그 여유..

고욤나무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알고보니 어릴때 고향에서 김나무라고 부르던 나무와 비슷한 것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김나무를 검색해보니 한명의 글만 나오는 것으로 봐서 사투리인 것 같기도 하고...

사진에 보이는 감나무는 논길을 마다하고 딴길로 들어섰을 때 부르는 벗들을 뒤로하고 아내와 손잡고 뛰어내려갔던 길에 보았던 그 감나무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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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09.02.20 14:39:40 *.77.216.65
까마귀 왈 : 까... 까... (caw caw : 까마귀의 영어 울음소리)
까마귀 말 해석 : 고맙다 용규야, 고맙다 용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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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9.02.20 22:46:31 *.253.249.70
백오가 흑오와 대화를... ㅎㅎㅎ
그대는 자연과 같이 숨쉬고 대화하며 시공을 같이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까마귀가 혹시 三足烏는 아니든가?
감히 白烏에게 반항하다니.
오늘 따라 자네가 살고 있는 산방이 보고싶다.
이틀동안 용산에서
세속에서 찌들린 부르조와와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젊은 이들과 함께지내다가 부산에 이제 도착하였네...
제법많은 돈을 봉투에 들고 들어와
병든 내자에게 자랑하는 한심한 나를 보다가
자네의 글을 읽었네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게 정직하게 살기위해서 30년을 넘게 하던 짓을 버렸는데 어찌보면 똑같은 짓걸이를 하는 것 같은 나를 보면서 원망의 그림자가 나를 엄습한다.
작은 시간이라도 자네의 글을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깨끗한 그대의 글을 보면서 다시 그대가 그리워진다.
부끄러운 노질 초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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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분
2009.02.22 00:52:31 *.82.100.129
오늘은 제목에 끌리어 책을 한 권 삿습니다.
"꼭 한 번 살아 보고 싶었던 삶 / 김태원"
지은이는 신부님이시고, 옻칠그림 화가이십니다.
제목답게 27년의 사제생활후
처음 홀로 살아보는 산중생활 - 어려운 재미들을 진솔하게 담아내셨습니다.
저도 어느덧 눈 떠 보니 지천명인지라
서점에서 제게 말을 건넨 책이름대로
'꼭 한번 살아보고 싶었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누구라도
나는 그 삶에 사노라는 답을 가지신 분들은
'참 복 많이 지으시는 분들이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하신
'희망이 살 수 있는 얼개'를 이제라도 열심히 생각한다면
저도 그 복짓기에 동참하는 것이 되려나요
모쪼록
건강하시길 빕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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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2.22 12:22:51 *.229.172.228
송창용님_ 저도 무작정 찾아오고 싶은 분들에게 무작정 이 숲을 보여드릴 봄을 준비합니다. 그날을 기다립니다. ^^

햇빛처럼님_ 고욤나무를 김나무라 부르는 동네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고욤나무는 말씀대로 생김새가 감나무와 매우 흡사합니다. 아주 작은 열매를 맺는 야생의 나무입니다. 고욤나무에 감나무 가지를 접을 붙여 감나무로 키웁니다.

정양수님_ 놀랍습니다. 수련을 깊이 하시는 분이라 까마귀의 울음을 다 해석하시니... 하하. 댓글을 읽고 한참 웃었습니다. ^^

초아선생님_ 지혜를 구하는 이들에게 좋은 말씀을 나눠주시고 그것으로 댓가를 받으시는 보람된 일을 그렇게 낮추시니 민망합니다. 건강해지신 사모님과 이 산방으로 봄소풍 오실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김덕분님_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었던 삶'에 관한 말씀이 참 좋습니다. 매일이 '꼭 한 번 살고 싶은 삶'으로 이어질 때 정말로 복된 삶을 사는 것이겠구나 생각하게 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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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2.22 14:59:56 *.220.176.180
아름다운놈님..
맞습니다. 감나무처럼 비슷하게 생겼고 열매는 씨는 크고 감비슷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감나무하고 접붙이는 나무이기도 하고요.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딱 한 글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제가 살았던 동네에서 그렇게 불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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