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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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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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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6일 09시 23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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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말씀처럼 나는 분명 사람 복이 많은 놈입니다. 그 복 덕분에 적적한 이곳에서 더러 편지도 받고 선물도 받는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음식이나, , 술처럼 먹을 거리를 보내주는 분도 있고, 읽어 보라고 책을 보내는 이도 있습니다. 짓궂은 어느 후배는 종이 구하기도 어려울 테니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쓰라며 선정적인 화보 잡지를 한 박스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혼자 있는 놈에게 아주 고약한 짓을 한 놈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산방에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소품을 구해 보내주는 이도 있습니다. 이때 함께 보내주는 짧은 편지는 사람을 참 따뜻하게 해줍니다. 나는 이 중에서 몇몇 편지를 골라 냉장고에 붙여 놓고 두고두고 읽어 봅니다. 엊그제 받은 한 통의 편지는 혼자 간직하고 보기에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에 옮겨 함께 나누겠습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집 근처 뒷산에 올라갔습니다. 길섶의 찔레가 벌써 여리고 작은 잎을 틔웠고, 개나리 가지들도 곧 터질 것 같은 노랑 꽃망울을 달고 있었습니다. 지난주 아이들과 들렀던 덕수궁의 미선나무도 잔뜩 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사람들은 다시 몸을 움츠렸지만 숲 속의 생명들은 차곡차곡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숲의 식물들은 바닥의 키 작은 생명들부터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복수초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눈 속에서 꽃을 피우고 겨우내 바닥에 납작 엎드렸던 풀들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보다 키 큰 나무들이 잎을 내어 하늘을 닫아버리기 전에 서둘러 잎을 틔우고 햇빛을 받아 쓰기 위함입니다.

 

숲은 이렇게 틀림없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의 순서로 봄을 맞이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키 작은 생명들이 살아가기 위한 영리한 생존전략이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저 아래쪽 생명들이 충분히 햇빛을 받고 쓸 수 있을 만큼 기다려준 후 서서히 피어나는 높은 나무들의 인내와 배려의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하늘의 빛을 온전히 다 차지할 수 있는 키 큰 나무는 그러나 뒤늦게 싹을 틔워 숲 속 구석구석의 생명들에게 햇빛을 나누어 줍니다.

 

나무는 이미 숲 속의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그 자신도 얼마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것을 키 큰 나무가 실천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것은 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에게 동정하고 적선하는 마음으로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하지 않으면 함께 소멸된다는 공존의 철학이 밑바탕에 깔려 있을 때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사회를 건전하게 발전 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겠지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자들이 덜 가진 자의 마지막 하나까지 뺏는 것이 정당화 되어버린 이 사회가 꼭 배워야 할 나무의 덕목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제 산방에도 봄의 기운이 퍼지고 있겠지요? 언제 한 번 봄 냄새 맡으러 그 곳에 가고 싶군요. ^^

 

나는 이 이의 편지에 깊이 공감합니다. 배려와 양보는 희망이 살 수 있는 얼개를 구성하는 분명한 요소의 하나입니다. 이 숲에서도, 그리고 사람의 숲에서도 분명 그러합니다. 모든 숲은 배려와 양보 속에 더욱 푸르러집니다.

IP *.162.8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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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9.02.26 11:20:52 *.247.80.52
'우아.. 호~오'
편지글을 읽고난 후 저는 이렇게 '호~오'하고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아름다운 봄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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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9.02.26 12:31:05 *.253.249.82
님이 계신 곳에 사는 백오를 생각하면 그렇게 좋아하던 넘실거리던 파도가 밉기만 합니다. 통영으로 낚시를 같을 때, 노처녀 향인은 그 갯내음이 너무 좋아서 밤세 한숨자질 않고, 고기가 불쌍하여 한번도 낚시대를 잡지 않던 용규의 모습이 생각난다.

소원데로 산방에서 자연과 함께하면서 적막의 고요함이 창작에 얼마나 좋을 역할을 하는지는 그대의 글속에서 자세히 보인다. 부디 초심에서 그리워하던 산속의 생태삶을 허물지 말게나. 언제쯤 탈고를 하는지도 알고 싶고, 백오가 싸인한 책을 받는 시간이 언제인지 몹씨도 기다려진다.

오늘도 나는 산에 올라 산의 향취에 취해 돌아와서 기다리던 그대의 글을 읽는다.

"何天之衢 亨"
용규야! 때가 이르럿다. 더욱 열정을 다해 글을 쓰라. 하늘이 그대를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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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2.26 14:42:44 *.190.122.223
함께함. 배려와 양보 좋은 글로 마음을 맑게 해주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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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분
2009.02.26 23:29:51 *.82.96.221
^----^ 편지를 보니 신기합니다.
편지를 주고 받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저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편지를 주었던 친구가 생각 나 그립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생각나는군요
이맘때쯤 봄꽃 마당에 서 계신 어머니
제가 너무 좋아 '어머니!'하고 다가갈라치면
두손을 내밀어 흔들어 오지 말라며
'꽃 죽인다.'고 손사래질을 치셨죠
어머니 말씀에 놀라, 발을 번쩍 들고 보면
아지도 못하는 잎사귀들이 병아리 입처럼 돋아나 있어
갑자기 발 둘 곳을 몰라 쩔쩔매었던 때 ...
그 좋은때도 밴댕이 속을 닮은 저는
'어디에 무슨 꽃이 있는 줄도 모르면서 함부로 발 들여 놓지 마라'는 어머니가
'자식보다 꽃을' 이라며 섭섭한 척 했더랬습니다.
맑은 편지글에 비추어 보니
제가 참 무심한 선배라는 생각에 부끄러웠습니다.
나이테자랑밖에 내세울 것이 없으면서
'나 사노라 바쁘다'는 핑계로 후배들 살림살이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 입니다.
갑자기 보고 싶은 마음에 전화기를 잡고도
민망하여 끙끙대는 꼴이 한심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소주 한 잔 하자고 전화를 해야겠습니다.
이것 저것 궁금한 일들이 많아지고 뭐래도 도울일을 궁리하다보니
이렇게 밝아지는 마음이 희망이 깃드는 마음인가 잠시 웃어도 봅니다.
덕분에
또 한 소쿠리 가득 담아 갑니다.
감사합니다.
봄하고 많이 많이 노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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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분
2009.02.28 00:48:51 *.82.100.59
쓰고 보니 긴 편지글이 되어 망서려졌습니다.
편지를 보니 편지가 쓰고 싶어졌던 모양입니다.

평소에 저는 못된 사람이라고 여기던 차에
우연히 이곳에서 김선생님의 글을 뵈니 참 좋아 보여서
산책길 꽃 보듯 쓰신 글들을 읽어 보았습니다.
제 어리숙한 마음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관심있게 보아주시고 답글을 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종종 들러 공부하겠습니다.
음,
그리고 앞으로 긴댓글은 참도록 하겠습니다.(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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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2.27 18:08:51 *.229.160.252
*^_^*긴 댓글이 참 재미있고 따뜻합니다.

친구분도 떠올리시고,
그리운 어머니와 쌓았던 추억도 떠올리시고
후배들도 새삼 생각하시고...

손으로 쓴 편지. 그 느리고 수고로왔던 소통방식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구나 생각하게 합니다.

소중한 기억을 나눠주신 덕분에 저도 넉넉한 마음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봄하고 많이 놀겠습니다.
계신 곳에도 예쁜 봄 가득 스미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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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2.27 18:00:53 *.229.160.252
한정화님_ 호오~! 하고 숨을 고르니 겨울이 녹아 아름다운 봄날이 온건가요? 하하. 이곳도 봄이 막 당도하고 있습니다.

초아선생님_ 매주 격려의 피드백을 해주시니 홀로 산방에 앉아 있어도 외롭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3월 10일 정도면 원고가 손을 떠날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는 벌써 제목회의도 하고 있고, 디자인 시안을 잡는 작업에도 착수했다고 합니다. 책쓰는 일이 막판에 이를수록 참 어려운 일이구나 느끼고 있습니다. 탈고하면 이 산방에 모시고 봄 숲을 거닐겠습니다.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햇빛처럼님_ 이번 주 햇빛처럼님을 맑게 해드린 분은 제게 편지를 주신 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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