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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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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5일 06시 50분 등록

마음을 나누는 편지를 처음으로 쓰려고 자리잡고 앉으니 엉뚱하게도 어릴 적 교과서에 실렸던 이솝 우화의 한 토막이 떠올랐습니다. 너무 오래 전이라서 분명하지는 않지만 대략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렇습니다.

 

함께 길을 걸어가던 너구리와 여우는 땅에 떨어진 빵을 발견합니다. 서로 먼저 보았으니 자기가 먹겠다고 우기던 둘은 결국 원숭이를 찾아갑니다. 똑똑한 원숭이는 거침없이 빵을 둘로 나누고는 한 조각씩을 나눠줍니다. 그러자 너구리가 먼저 불만을 터트립니다. 여우의 빵이 더 크다는 거지요. 원숭이는 당황하는 대신에 여우 몫의 빵을 한 입 덥석 베어 뭅니다. 그러자 이번엔 여우가 목소리를 높입니다. 원숭이는 다시 너구리의 손에 들린 빵을 한 움큼 잘라냅니다. 이렇게 몇 번을 오가자 빵은 흔적도 없이 원숭이의 뱃속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아마도 아이들에게 다투지 말고 잘 지내라는 의미에서 이 이야기를 교과서에까지 실었던가 봅니다. 어린 아이였던 저는 원숭이가 무척 고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도 싶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제게는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일은 바로 이곳에서 벌어졌습니다. 연구원이 되어 100권 남짓 책을 읽었고, 100꼭지쯤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제법 두툼한 동양고전 한 권을 힘껏 번역했습니다. 단 하루도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둘 사이의 괴리는 점차 잦아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앞으로 일 년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제 마음 한 조각을 많은 분들께 전할 수 있는 놀라운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루의 혁명과 눈부신 도약, 아마도 이것이 제가 오른손에 쥐고 있던 빵이었던 모양입니다.

 

딱 그만큼의 시간 동안 체중이 15킬로그램이나 불었습니다. 1.0 언저리를 오가던 시력은 0.5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거기다가 얼마 전에 받았던 건강 검진에서는 간에 조금 문제가 생겼다는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제 자신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던 탓에 생긴,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제 막 4살이 된 아들 아이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이 녀석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공부번역입니다. 뭐라도 좀 해볼까 싶어 방으로 숨어들라치면 벼락처럼 울어댑니다. 소소한 일상과 그 속의 작은 행복, 이것이 제가 왼손에 쥐고도 한동안 돌보지 못한 다른 한 조각의 빵이었던가 봅니다.

 

균형은 두 개가 정확하게 똑 같은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많은 쪽을 덜어내고, 모자란 쪽을 채우는 끊임없는 노력이 바로 균형인 거지요. 상대의 빵이 더 크다고 불평하는 너구리의 말에 거침없이 여우의 빵을 베무는 원숭이처럼 말입니다.

 

지금 오른 손에 들고 있는 당신의 빵은 무엇입니까? 반대편 손에 쥐고 때때로 흘끔거리는 그것은 또 무엇입니까? 한 쪽에만 너무 매달려왔다면 슬그머니 다른 쪽에도 마음을 나눠주세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여주세요.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흔들리며 아주 멀리 가게 될 것입니다.

 

한 해가 넘도록 매달려온 번역 원고의 수정을 조금 전에서야 겨우 마무리했습니다.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들 녀석이 좋아할 작은 주말 계획을 하나 꾸며보아야겠습니다.

IP *.96.1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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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9.01.05 07:41:52 *.160.33.149
종윤아, 그 왼손의 빵이 작은 것에 내 책임이 좀 있는 것 같아 미안하구나. 오른 손 빵을 한 입 먹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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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5 10:51:23 *.96.12.130
사부님~ 글을 올려두고도 부끄러워서 이리저리 망설이다가, 처음으로 달아주신 댓글에 이제서야 겨우 꼬리를 답니다. 오른손 빵을 그대로 두고 왼손 빵을 크게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요? 시간, 집중 등등이 머리를 스칩니다. 한해 동안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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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9.01.05 08:22:07 *.36.210.12
첫 편지에 대한 부담감으로 밤새 잠을 설치기보다 지난 두 해 동안의 자신의 일상을 차분히 되짚어가며 더욱 균형감 있는 진화를 모색해 내었구나. 그대는 언제나 의젓한 맏형처럼 착실하고 든든한 아우지. 올 한 해도 바삐 살아가야 하겠지만 무던함으로 다져지는 성취가 가져다주는 행복은 신뢰와 강건한 사랑을 바탕으로 이전보다 훨씬 배가 될 듯 싶다. 왼쪽 손의 빵은 응원의 몫으로 우리들이 베어먹어도 되겠지?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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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5 10:52:28 *.96.12.130
누나~ 나름대로 잠을 설쳤어요. 오랜만에 글을 써서 많은 사람에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손발이 오그라들었거든요. 왼손 빵을 누나가 베어먹으면 어쩌? 날 풀리면 고기라도 함 더 구워 먹읍시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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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1.05 08:28:55 *.220.176.137
첫글을 축하드립니다.

중용, 동적평형이라는 말이 연상이 되는 군요.

항상 가운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한쪽으로 치우쳤다가 그 치우침을 깨닫고 다시 반대쪽으로 돌아서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좋은 글 일년동안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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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5 10:53:35 *.96.12.130
이미 좋은 아빠이신 햇빛처럼님께 많이 배우겠습니다. 일년 동안 성실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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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5 09:18:00 *.48.228.172
연구원이 아니어도 글을 써도 되나요? 새로운 필진이신 신종윤님의 글을 새해 첫 출근하여 첫 메일로 읽어봅니다. 지난해.. 일때문에도.. 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도 하지 못하고.. 스트레스에.. 집에서는 나를 방해하는 아이와 아내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며.. 더러는 말다툼에.. 아이를 협박까지 해대던 제 모습을 투영해 보았습니다. 모든게 제 잘못인데.. 그 잘못의 원인을 일과 회사와 아내와 딸에게 전가시키며 스스로 나락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젯밤 잠들기전.. 가슴이 턱 하고 막히더니..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신종윤님의 글을 통해 다시금 마음을 다져 봅니다.. 제 오른손에 쥔것과 왼손에 쥐고 놔주지않고 있는 그것의 균형을 위해 다시금 저를 바라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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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5 11:00:16 *.48.246.10
'마음경영'이라는 닉네임이 참 좋네요.

둘 다 소중하지요. 오른손의 빵과 왼손의 빵. 어느 한쪽만으로는 어렵지요. 그래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줄 타듯이 살아가나봅니다. 제가 잘해야겠지요. 제가 줄을 잘 타야겠지요. 올 한 해는 멋지게 조화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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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9.01.05 10:51:55 *.209.32.129
첫 마음편지를 축하하고 환영합니다.
노련하고 함축적인 글을 보니,
'신종윤이라는 아름다운 세상'을 들여다 볼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들뜨네요.

꿈과 헌신, 성장과 진화, 모험과 균형...
그 모든 것을 실험해볼 수 있는 '바로 이 곳'에서
더욱 커나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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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5 11:01:29 *.96.12.130
한선생님~ 감사합니다. '노련하고 함축적'이라는 말씀에 한참을 웃었네요. ㅎㅎ 한해동안 많이 생각하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선생님께도 좋은 소식으로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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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9.01.05 13:41:40 *.244.220.253
오~ 글 좋은데~
동갑이라고 말 함부로 하면 안되겠는데.....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구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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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5 11:03:10 *.96.12.130
그동안은 함부로 한거였구나~ 어쩐지~ ㅎㅎ 아이를 많이 둔 아빠는 마땅히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네게도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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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엽
2009.01.05 18:45:54 *.165.140.205
와우!

첫 마음의 편지를 띄우셨네요.
앞으로 열열한 팬이 될 것 같은 대박예감?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그런데ㅡ 몸무게에 관한 이야기가 제일 마음에 와닿았던것 같아요.
아옹! 오늘부터 난 다이어트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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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5 11:04:57 *.96.12.130
저 마음 편지 중간쯤에 다이어트 선언하고... 매주 몸무게 현황을 쌩!중계할까도 생각중인데... 동참하실래요? 그럼 제 몸무게랑 재엽선배님 무게랑 나란히 적어서 공개하는 걸로? ㅎㅎㅎ 송년회날 얘기를 많이 나누진 못했지만 따뜻하게 배려해주셔서 많이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는 좀 자주 뵐 수 있으면 더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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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랑
2009.01.05 22:21:41 *.239.51.35
아는 분의 글이 올라왔다는 소식이 있어 들어와 봤습니다.
그동안 번역일에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

솔직히 제 경우엔 왼손의 우선순위가 상대우위이기 때문에 종윤씨의 행보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어렵습니다. 좌우의 균형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균형까지 살필 수 있는 혜안도 펼쳐주세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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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5 11:05:39 *.96.12.130
ㅎㅎㅎ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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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9.01.06 00:03:53 *.100.109.186
종윤아.. 메일로 전해진 너의 편지는 그냥 훑어보기만 하고 밖에 나갔다가 여기서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고 선생님의 댓글때문에 또한번 웃게 되는구나.. 너의 편지가 매주 기다려질 것 같다.. 그리고 서서히 너와 한번 만나서 못다한 이야기와 너만의 재능에 대해 얘기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락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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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5 11:06:30 *.96.12.130
고마워요~ 조만간에 재능해석 부탁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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썽이리
2009.01.06 17:00:58 *.72.77.81
딸의 핸드폰에 엄마 전화번호에는 "사랑하는 울어무이" 아빠 전화번호에는 "공부쟁이 울아부지"라고 되어있는 걸 보고 뜨끔했습니다. "무감어수 감어인(無鑒於水 鑒於人)"이라고 했나요? 님의 새해 첫 편지를 통해 비틀어진 균형을 다시 잡아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올한해 건강도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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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5 11:08:39 *.96.12.130
저에게는 "공부쟁이 울아부지"라는 표현이 부럽게 들리기도 하네요. ㅎㅎ 다른 사람을 힘들게 만들지 않는 방법으로 저를 나아지게 하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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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9.01.09 05:12:45 *.86.177.103
종윤이가 보낸 마음의 편지에 내 어깨가 춤을 춘다.
과다 사용으로 내려앉은 오른쪽 어깨다.

나는 균형을 몰랐다.
달랠 줄도 몰랐다.
그냥 따라오기만을 바랬다.
아우성을 치면 나무랄 줄만 알았다.

의사선생님의 지시에서보다는
아픔의 고통 때문에 잠시 일을 멈출 뿐이다.

아침 마다 나 대신 손빨래하는 남편에게서
균형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새해 출발에
따스한 시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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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5 11:12:10 *.96.12.130
맞아요!!! 누나는 좀 쉬어야 하는데... 그게 남이 말한다고 되는게 아니지요? 아프기 전에 조금씩 쉬자구요. 그래야 더 오래, 멀리 갈 수 있잖아요. 전화도 자주 못해서 궁금했어요. 가끔씩이나 연락드릴께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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