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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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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8일 00시 19분 등록

그대는 늘 시간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가 몇 살인지 알고 싶어했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100, 200, 1주년…, 서로 얼마의 시간을 사랑해오고 있는지 기억하고자 했습니다. 그대는 그렇게 물리적인 시간의 어느 지점을 확인하기를 좋아했습니다. 한결같이 똑딱똑딱, 오차 없이 46억 년 지구별을 관통하며 흐르고 있는 시간의 한 토막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대의 시간이 아닌 오로지물리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을 더 궁금해 했습니다. 시간의깊이보다는길이를 궁금해 했습니다. 그대의 삶 속에 겨울이 깃들자, 겨울을 살고 있으면서도 봄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헤아리고 싶어했습니다. 봄이 오면 그대의 꽃도 필 것이라고, 봄이 오기까지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를 선물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 명품 시계를 살 돈이 없는 나는 대신, 시계를 보지 않고도 계절을 알아내는 숲의 생명들 앞으로 그대를 데려갑니다.

 

낙엽송은 겨울이 오기 전부터 이미 잎을 지웠고, 느티나무, 붉나무, 가죽나무, 쪽동백, 산사나무, 팥배나무, 국수나무, 오리나무…… 모든 활엽수가 이미 가을이 지는 것을 알고 또 준비한 숲. 이제 숲은 겨울의 침묵에 잠기는 시간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겨울은 생명 모두에게 깊어지는 시간입니다.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참아내는 시간입니다. 그 준비하고 참아낸 깊이만큼 각자 다음 한 해를 살아갈 것입니다. 하여, 그들은 오로지 숙연함 속에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 잎눈과 꽃눈의 끝에서 다시 새살을 돋게 할 저만의 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누군가의 겨울은 길고, 누군가의 겨울은 조금 짧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물리적인 시간에 기대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의지할 뿐입니다. 어느 날 다가올 저의 봄날을 기다릴 뿐입니다. 벚나무가 꽃을 지우고 비바람을 견디며 그 열매를 다 익혀갈 때쯤에서야 배롱나무는 느릿느릿 제 꽃을 피워내듯, 각자의 시간은 다릅니다. 세상이 온통 꽃들의 잔치로 분주할 때가 되어서야 대추나무는 겨우 새 잎을 틔울 것입니다. 산방 옆, 저 어린 은행나무는 우리가 7년이라 부르는 물리적인 시간을 깊어지고 나서야 처음 제 꽃을 피울 것이고, 사막에 사는 달맞이 선인장은 70년의 길을 걷고 나서야 제 꽃을 피울 것입니다.

 

그대는내 꽃도 한 번은 피리라는 믿음으로 이 겨울을 견디고 있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앞에 주어진 긴 겨울의 시간을 알아차리고 깊어지고 준비하며 참아낼 때, 저마다의 시간으로 그날이 오는 것임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내가 사는 이 숲과 산방에는 시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불편하지 않습니다. 숲의 생명들도 그러해 보입니다. 시계 없이도 우리는 우리를 위한 시간의 대부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겨울, 물리적인 시간의 봄은 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의 봄은 아직 멀리 있습니다. 겨울의 한 복판에 내가 서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참고 준비하며 깊어져야 하는 시간이 나의 시간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나의 시간을 아는 것으로 나는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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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42.181.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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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8 00:56:48 *.41.62.225
한 편의 시군요. 출발을 축하드려요.
독자로서 기대 만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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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1.08 04:15:12 *.220.176.217
깊어지는 시간, 준비하는 시간..

글을 읽으면서 이런 떨림이 있다니 참 좋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더 아름다운 놈이 되실 분의 글을 나무(木요일)의 날에 받아 볼 수 있다니

우연이 아닌 것 갈습니다. 마치 일부러 목요일을 택한 것 같아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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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9.01.08 05:06:37 *.160.33.149
그곳이 좋아 보이는구나. 네가 이제 있을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겠구나.
동네 어귀에 목련이 몇 그루 있다. 그들은 이미 겨울 꽃 처럼 솜털가득한 봉오리를 가지고 있다.
푸른 하늘에 그 겨울 꽃방들은 이미 꽃과 같다. 너의 봄도 멀지 않을 것이다. 이 겨울에 이미
내피 속에 가득 피어 있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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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9.01.08 07:57:54 *.36.210.115
봄을 기다리는 망울들이 가슴 속 깊이 알알이 맺혀 저답게 한껏 피었다가 질 수 있기를 열망하네요. 우리들처럼... 봄은 또 얼마든지 오고 가지만 저다운 일상의 봄을 살아가기란 겨울다운 겨울을 오롯이 보낸 후에라야 바르게 찾아진다는 것,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커다란 울림이지요. 시계가 없어도 시간의 흐름을 알아차리는 백오 산방의 화창한 봄날을 기대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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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
2009.01.08 09:41:21 *.47.51.23
행복숲지기님!

행복숲에는 꽃시계 해시계. 나무시계......
그어느 명품시계와 바꿀수 없는 명품들이 숲속에 가득하군요...

이렇게 매주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고 감사합니다..
아울러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행복숲이야기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포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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썽이리
2009.01.08 10:10:14 *.48.246.10
숲으로 가면 시간에 연연해 하지않고 숲으로부터 멀어지면 점점 더 시간에 쫒기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우주가 부여한 생명의 질서를 오감으로 느끼는 그 곳이 참 좋아보입니다! 영화 "스파이더위크가의 비밀"의 꼬마 자레드가 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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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9.01.08 12:48:58 *.209.32.129
벚나무, 배롱나무, 대추나무, 은행나무, 달맞이 선인장의 비유가 감동적입니다.
누구에게나 일률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종종 타인을 평가하고 몰아세우기 쉬운 달력의 시간이 아니라,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내가 가진
나만의 시간, 나만의 속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자긍심을 갖게 해 주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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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1.08 17:56:43 *.229.153.197
산방에는 유선 인터넷이 안됩니다.
할 수 없이 무선 인터넷 모뎀을 장만해서 쓰고 있는데 비용이 만만찮습니다.
그래서 신재동님이 고생이 많습니다. 제 편지는 늘 신재동님이 대신 부쳐주기로 했습니다.
미안하고 또한 고맙습니다.

빨강머리 앤님, 참 좋은 주제로 수요일의 우리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고맙습니다.
햇빛처럼님, 마음으로 읽어주시니 고맙습니다.
스승님, 이제 있어야 할 곳에 제가 있어 저도 행복합니다. 봄은 모두 제 안에서 오는 것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써니님, 얼굴이 아른 거립니다.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구절초님, 얼른 명품 시계를 보여드려야 하는데... 숙제가 끝나는대로 꼭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썽이리님, 모두에게 훌륭한 응원가를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한명석님, 저다운 모습으로 힘껏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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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라
2009.01.08 18:42:22 *.102.104.217
금방이라도 터질듯 노란 꽃망울을 가득 담고 봄을 기다리는 산수유 속에
모두의 희망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저마다의 시간속에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야 함을 잊지 않겠습니다.
매주 나무의 날 아름다운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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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9.01.09 04:54:10 *.86.177.103
겨울 숲 한가운데 서는 일은 언제나 떨림입니다.
먼 길을 달려온 바람을 마주하고 숲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은 기쁨입니다.

그대 모르셨나요?
겨울 숲 속이 바람과 함께 얼마나 수다스러운지를......
꾸밈없이 소리내어 웃는 그들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싸리나무의 찰랑거리는 그 가벼움이 얼마나 경쾌한지 모릅니다.

겨울 숲은 고요속에서 침묵함을 넘어
그들끼리 어우러짐을 아는
참 삶의 모습입니다.

그 대 잠시 멈추어 서서
숲의 소리 앞에 서 보십시요.

숲에서 들려주는 아름다운 편지에
마음이 한 없이 풍요해 집니다.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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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1.09 21:17:29 *.229.144.154
글라라님.
겨울눈만 보고도 사진 속의 나무가 산수유인 걸 아시는군요.
식물을 아주 특별한 눈으로 바라보시는 분이신 것 같아 더 반갑습니다.^^

최정희샘 ^^
샘께 드리려던 고구마 한 상자가 아궁이에 들어가 익었습니다.
당시 한동안 바쁜 탓에 보내드리지 못하고 다시 게으름이 커서 끝내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T.T
겨울숲의 수런거림을 들으시니 참 맑으신 분이세요^^
다시 뵈올 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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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재
2009.01.12 22:00:12 *.241.15.91
형, 생각을 몸으로 살아간다게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짧게 나마 형과 산방에서 나누었던 이야기가 벌써 그리워집니다.
이렇게 매주 형을 만나게 될 수 있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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