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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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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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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5일 06시 15분 등록

 

마흔이 그를 세게 치고 지나갔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처럼 정직하게 마흔이 가진 모든 유혹과 방황에 노출된 사람도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흔은 마지막 남은 청춘의 모습으로 우릴 괴롭힙니다. 마치 젊음의 끝인 양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시그널을 뿜어 냄으로 젊어서 할 수 있는 무슨 일인가를 마지막으로 저질러 보도록 유혹합니다. 마흔이 되면 또 우리가 그 나이가 되도록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것을 겨울 나목처럼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마흔이 되면 미래를 위한 터닝 포인트로  새로운 인생을 위해 무언가  대단한 계획을 짜내도록 우리를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 모든 것들로부터 심하게 공격 받은 사내입니다. 그는 심하게 일에 치이기도 했고 공황 장애를 겪기도 했고, 회사를 나와야 했고, 거의 날마다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쉽게 굴복하지 않는 사냅니다. 나는 그에게 '성실한 독종'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는 그 별명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술조차 마음만 먹으면 두 달 쯤 끊을 수 있습니다. 그는 집에서 회사로 가는 동안, 그리고 술을 먹고 집으로 들어오는 동안 지하철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월화수목금금금'의 싸이클을 따르는 IT 업계의 개발자들을 위하여 '대한민국 개발자 희망보고서' 라는 책을 썼습니다. 웃기는 제목의 책입니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절대 웃기지 않습니다. 나는 그 책의 첫 번 째 독자가 그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의 희망을 위해 그 책을 썼습니다. 나는 그가 그 책에 혼신의 힘을 다 바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책은 그의 삶에 기념비적인 이정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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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를 때 멋집니다.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 합니다. 키가 작고 곱슬머리에 반대머리기 때문에 처음 척 볼 때는 별로지만 사람들은 그를 좋아 합니다. 몇 년을 지켜보는 동안 점점 더 노래를 잘 불러 갑니다. 요즘은 가수 수준입니다. 야구모자를 뒤집어 쓰고 눈을 지그시 감고 열창을 할 때는 작은 체구가 커 보입니다. 술을 많이 먹기 때문에 나름대로 건강의 비법도 가지고 있습니다. 칡즙을 달고 살고, 이름이 이상한 동양무술도 합니다. 무릎을 굽히고 엉덩이를 내밀고 팔을 묘하게 교차시킨 기본 자세 - 나도 몇 번인가 따라해 보았는데 영락없이 싸는 자세입니다 -를 보여 줄 때는 귀엽기도 합니다. 약간 시니컬하지만 유머 감각이 뛰어나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감동도 잘하고 눈물도 가끔 흘릴 줄 압니다. 그 많은 세월 조직에 몸 담고 있었으니 닳기도 많이 달아 눈치도 빠르지만 하기 싫은 것은 모르쇠도 잘 합니다.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해서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아내가 좋아하는 좋은 남편은 못됩니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을 깊이 사랑합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고 가족과 작은 밴드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나는 언젠가 그가 만든 '내 인생의 노래 하나' 라는 까페에서 해가 질 때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싶습니다.  그는  매년 좋은 책을 한 권 씩 써내는 좋은 작가로 자랄 것입니다.  그가 운영하는 그 특별한 카페에는 그를 좋아하고 그를 따르는 후배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나는 그곳에서 나짐 히크메트의 시를 읇는 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도전하는 사람으로 남을 테니까요.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고,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나는 그의 꽃이 크고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IP *.160.3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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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08.12.05 09:36:09 *.232.127.164
사부님은 병곤 형을 '성실한 독종'이라 부르고, 나는 형을 '독수리'라고 부른다.
형은 독수리 같은 재능이 많다.
컨셉을 잡고 전체를 꿰뚫는 기획력, 판단이 빠르고 사람도 볼 줄 안다.
커뮤니케이션도 좋고 노래도 잘 부른다. 거기다가 꼼꼼하기까지 하다.
독수리가 먹이 사냥에 성공할 때와 형의 재능이 빛날 때는 비슷하게 멋지다.
형을 알게 되어 참 든든하고 고맙고 좋다.
평생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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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5 10:12:19 *.162.86.19
이젠 워낙 익숙해져 있어서 잊고 있었는데
그동안 참 많은 순간을 함께 해 왔던 것 같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사람에 대한 애정과 특유의 시니컬한 표현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 잡고 가시는게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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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8.12.05 11:51:14 *.105.212.77
역시 두 사람이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았군.. 병곤이는 참 좋겠다.. 나도 이제 부러워하는거 그만두고 부러워할 일 좀 만들어야겠다..ㅋㅋ 누군가에 대해서 이렇게 특별한 글을 써준다는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느끼게 만드는 요즘이다. 맛있는 식사 한번 쏴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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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2008.12.06 19:58:57 *.33.208.209
내 꽃도 한번은 피리라...

가슴 가득 들어오는 귀절입니다.
오병곤님의 오달자 블로그에도 그런말이 씌어 있지요.

김광석의 '꽃'이라는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
아마 오병곤님도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연구소에 밴드를 하나 결성하시면 저도 불러주십시요...

병원의 상황이 연구원으로 들어갈 상황은 어려운 것 같아.
객원보컬로나 참여 했으면 좋겠네요...하하하...

특별한 하루,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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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8.12.06 20:34:34 *.152.82.96
너무 늦었군.
이래서 지방은 아직도 꿈뜬가 보다.
마흔이 되었을 때 말이야.
세상에 기회란 기회는 나를 피해가는 것만 같았지.
더 이상 나에게 새로운 삶은 보이지 않았었어.
...
그런데 말이야.
불과 5년이 채 되지 않아 이렇게 많은 기회가 찾아오고 있음을 느끼는 것은 또 무슨 조화일까?
그대의 새로운 출발이 아마도 이쯤에서 시작할 것만 같군.
꽃망울이 피어오르는 느낌이 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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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골반
2008.12.07 17:30:57 *.234.76.195
성실한 독종 반 대머리 독수리.....
오래 된 친구같은 나의 환상의 커플 골룸 커플
분위기를 잘 타는 남자, 의리가 있을 것만 같은 남자.

어느날 좋은 영화를 선정해 가슴 깊이 울려 놓고 욕 먹는 남자 병곤.
그대의 책이 나와 정말 축하한단 말 만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서로 소홀히 하고
있는 꿈 벗.

호되게 휩 쓸고 지나간 자리에 새 살이 돋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너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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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엽
2008.12.19 16:10:34 *.165.140.205
병곤형의 그림이 참 닮았어요.

고독한 사냥꾼 처럼 나왔잖아요? 그래요. 형은 노래할때가 젤로 멋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책, 빨리 읽고 싶어요.

앞으로 더 친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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