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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6일 06시 19분 등록

비개인 다음 날 산에 들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곳에 바람 불어 벚나무 큰 가지 한 개가 부러져 늘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까맣게 익은 버찌를 따내었습니다. 손바닥에 열 댓 개 쌓이면 한 입에 털어 넣습니다. 버찌들이 입안에서 툭 터져 짙은 보랏빛 즙이 커다란 씨앗사이로 시원하게 고이게 됩니다. 그렇게 몇 번하면 혀바닥이 까맣게 됩니다. 우리는 서로 혀바닥을 보이며 웃었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 어느 풀 섶에 이르면 산딸기들이 가득합니다. 햇볕이 잘 드는 양지쪽에 커다란 잎사귀와 줄기에 귀여운 작은 가시를 달고 붉은 열매를 잔뜩 자랑하고 있습니다. 가벼운 탄성과 함께 얼른 달려들어 가장 잘 익은 것들을 따 모아 손바닥에 한 움큼 쌓이면 입속에 털어 넣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오디가 까맣게 달려 있는 곳에 이르게 됩니다. 손가락으로 조금 눌러 주면 아주 우아한 보라빛 물이 흘러나옵니다.

여름이 되면 나무들이 익어가고 산은 풍성해 집니다. 그리고 깊어집니다. 늘 다니던 길인데 오늘은 다른 길처럼 느껴집니다. 매일 달라지는 것이 산입니다. 매일 변하며 매일 자라고 매일 깊어집니다. 커다란 나무 그늘에 앉아 여름 산이 익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매일 깊어져 매일 다른 산이 되어 가는 것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산에 들어가 산을 보다 문득 에머슨의 말이 생각납니다.

"누구든 진정한 인간이 되려한다면 먼저 비순응주의자가 되어야한다......세상의 의견을 좇아서 사는 것은 쉽다. 자신만의 고독 속에서 사는 것도 쉽다. 그러나 군중 속에서도 고독한 독립이 주는 달콤함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위대한 인물이다“

공자는 아주 짧게 이것을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말했지요.

퇴근길에 지하철 입구 같은 곳에 버찌나 오디나 산딸기나 복분자 같은 것을 파는 행상이 있으면, 잠시 눈길을 주고 웃어 보세요. 물론 먹어 보아도 좋지요.

오늘은 검은 버찌를 가득 달고 있는 벚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IP *.189.23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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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안자
2006.06.16 13:26:34 *.44.45.103
비순응주의자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순응은 환경에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고 적응은 환경과 자아의 조화를 꾀하는 것.
즉 나름대로 존재의 증명을 위해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는 변화에의 갈등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버찌, 산딸기, 오디의 자연과 만나 탄성을 지르며 즐거워하는 자연인.
선생님의 따뜻한 온화함과 풍성한 감성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집니다.
아름다운 글, 체온이 있는 칼럼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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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수
2006.06.29 17:11:31 *.233.85.248
제기동에 갔었습니다....와이프와 함께
우선 옥수수를 사서 하나씩 먹으면서 걸었지요.....오디,버찌,산딸기등위에 써진 작은 열매들은 다 있었습니다....여기 홈에 오늘 처음 와봤는데....철학자가 된것 같아 기쁨니다.....일상의 황홀을 요즘 전철에서 읽으면서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괜찮은 글을 발견해서 줄을 쳐놓고 미팅시간에 직원들과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도 갖어봅니다.....가슴 벅차옵니다....그런 내용을 발견하려고....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읽는 중입니다....익숙한것과의 결별을 읽고....삶의 깊이가 더해진것같아..기뻤습니다...감사드립니다...북한산을낀 평창동 어디에선가 함께 쌈밥을 먹어봤으면 좋겠습니다....가슴벅찹니다....철학이 짧아서 여기에 글 남기기가 두려워집니다....용기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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