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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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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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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10일 09시 23분 등록




'진실'은 균형 잡힌 감각과 시각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 균형은 새의 두 날개처럼 좌(左)와 우(右)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상태이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맞고, 인간 사유의 가장 건전한 상태이다." - 리영희


지난 주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 시청 앞 광장을 걸었습니다. 혼자서 한 바퀴 돌았습니다. 도로 옆을 가득 메운 전경 버스와 길목 곳곳에 정렬해있는 전경들을 지나, 부랑자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평화롭게 누워있는 지하도를 지나, 임시로 세워진 낙서 가득한 시청 옆 벽을 지나, 모래가 깔려있는 광장에 들어섰습니다.

참, 묘한 풍경이었습니다. 무대가 세워진 앞 쪽에선 스님들이 주도하는 집회가 진행되고 있었고, 광장 한 켠에는 부스를 설치하고 인쇄물을 나눠주며 각자의 주장을 펼치고 있었고, 또 다른 쪽에선 추억의 먹거리와 불량 식품과 음료수를 팔고 있었습니다. 술에 취한 것인지 잠든 것인지 알 수 없이 여기 저기 누워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열혈 부모도 있었고, 또 이 광경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는 외국인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질서한 시청 앞 풍경이 그날의 제겐 무척 건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가끔 이 나라가 관용의 폭이 무척 좁은 사회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자기와 다른 모습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잘 인정해 주지 않으려 하는, 선 밖으로 조금만 벗어나도 이상한 사람으로 내몰아버리는 사회는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한비자'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연나라 사람의 아내가 젊은 총각과 몰래 정을 통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 남편이 밖에서 일찍 돌아왔는데 마침 그 젊은 총각이 집을 빠져 나갔다. 남편이 물었다. "웬 손님인가?" 아내가 말했다. "손님이 온 적 없습니다." 남편이 집안 좌우의 사람들에게 물었으나, 좌우의 사람들은 모두 손님이 온 적이 없다고 대답하는 게 마치 한입에서 나온 것 같았다. 그 아내가 말하기를 "당신 정신이 무언가에 홀렸습니다."하고는 그에게 개똥을 끼얹었다."

이처럼 여러 사람이 한 사람 바보 만들기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시청 앞 광장에 서서 뒤가 구린 사람이 오히려 다른 사람을 마녀 사냥하듯 몰아 세워 똥바가지를 뒤집어씌우는 게 우리의 가슴 아프고, 부끄러운 현대사는 아니었는지 반성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광장에서 펼쳐지는 촛불 집회의 뜨거운 마음이 또 다른 형태의 마녀 사냥으로 변질되지는 않기를 간절히 기원해보았습니다.

촛불을 든 사람도, 촛불을 들지 않은 사람도 모두 이 땅의 주인입니다. 저는 이 땅의 주인들이 좌, 우 어느 한쪽의 날개 깃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튼튼한 좌우의 날개로 훨훨, 드높은 하늘을 날아오르는 한 마리 새가 되는 그날을 꿈꿔봅니다. 모든 흥분이 가라앉은 뒤의, 촛불이 꺼진 뒤의 고독한 혁명을 그려보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 中




(2008년 7월 10일, 스물 여덟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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