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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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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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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11일 05시 38분 등록


제목이 좀 그렇지요 ? 그러나 절실했기 때문에 그대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며칠 전
아래 배가 살살 아파 동네 병원에 갔었습니다. 맹장염 같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군요. 몇 가지 검사와 함께 CT촬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 수술을 받았습니다.

난 수술을 처음 받아 봅니다. 베드에 누워 천장을 보니 커다란 형광등이 2개가 한 조가 되어 한 칸에 3줄씩 사방으로 무려 9개 줄이나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영화에서 보았던 우주선처럼 생긴 다리 달린 둥근 등 2개가 수술실의 권위로 떡 버티고 서 있습니다. 복면을 쓴 남녀가 번갈아 가며 내게 틀니가 없는 지 물어 보았습니다. 하필 틀니 ? 아마 전신 마취를 하면 기계호흡을 해야하기 때문에 틀니가 빠지면 큰일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내 추측이지요. 난 의식이 없어 졌습니다. 1시간 쯤 후에 회복실에서 눈을 떴습니다. 인공호흡기가 씌우져 있었는데 약간 답답했습니다. 목이 많이 말랐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난 다음에야 약간의 물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방귀가 나오지 않아서였지요. 그때처럼 방귀를 기다린 적은 없습니다. 그게 그 당시 내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이틀이 지난 다음에야 미음과 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남자는 수술받고 이틀 만에 퇴원하기도 한다는 간단한 수술이라 아픈 척을 하면 엄살 같아 보이지만 그래도 배가 탱탱 붓고, 부위마다 여간 아픈게 아닙니다. 나는 젊은 남자가 더 이상 아니었으니까요. 회복 운동을 하느라 천천히 복도를 거닐다 문득 지금 행복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은 늘 지금의 문제인 듯 했습니다. 환자복을 입고 비실거리며 병원의 복도를 걷고 있지만, 심한 병이 아니어서 다행이고, 며칠 후면 퇴원할 수 있어 좋고, 돌봐줄 아내가 병실에서 나를 기다리니 든든하고, 어찌 알았는지 빨리 쾌유하라고 전화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좋고, 앞으로 세계 어디를 가든 맹장염 걱정을 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댕기던 배도 별로 아프지 않습니다.

취소하기 어려운 약속이 있어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몸은 불편합니다. 그러나 기분은 매우 상쾌합니다. 지금 행복하세요. 힘들더라도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마세요. 수술 받던 날 금요일 편지를 여러분들에게 보내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이렇게 보낼 수 있으니 또 다행입니다. 좋은 주말되세요.

IP *.189.23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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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8.07.11 08:30:38 *.249.162.200
사부님, 수술이 잘 끝나 다행입니다.
쾌유하시고, 좋은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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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7.11 09:17:24 *.247.80.52
사부님의 쾌유를 밉니다.
빨리 방귀 나오고 ....아무거나 드실 수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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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8.07.11 09:19:48 *.254.36.178
저도 최근에 가벼운 수술을 했는데,
48시간 동안 왼팔에 꽂혀 있던 링겔 주사만 빼도 행복인 것을
알았습니다.

세월도 와병 못지않게 저를 가르칩니다.
그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도 깨달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
이제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인 것을 알겠습니다.

그래서, 슬퍼도 행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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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7.11 10:27:48 *.97.37.242
아침에야 수술 소식을 들었습니다.
수술이 잘되고 일찍 퇴원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취소하기 어려운 약속이란 게 혹시?...

방귀에는 보리밥, 고구마가 좋은거 아시죠?
배가 붓고 땡기면 방귀 뿐만 아니라 웃기도 힘드실텐데...
빨리 쾌차하셔서, 건강한 웃음 뵐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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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8.07.11 12:36:53 *.215.56.223
수술 안 해도 지내기 힘든 여름인데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
마음으로만 걱정을 보낼 뿐 뭐 제가 딱히 해드릴 게 없어 죄송..

고통분담의 차원에서..
저는 집에서 응원 방귀로 대신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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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2008.07.11 13:03:08 *.248.16.2
제목이 웃겨서 제목 보자 마자 마구 웃어댔네요..^^ 그런데, 수술을 받은 뒷얘기일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구본형선생님께서는 정말 삶을 긍정적이고 즐겁게 받아들이시는 분 같습니다. 이 글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참, 일전에 사이트에 소개하셨던 '작은영토'로 떠납니다. 사실 지리산 오르는 계획은 거의 없구요^^, 장흥 들려 고기 먹고, 통영가서 회먹고..뭐 이런식이 계획뿐이지만 ㅋㅋ, 지리산 정기를 받아 한껏 'refresh'하고 오려구요. 구선생님께서 추천하셨던 곳이라 생각하니 더욱 기대가 됩니다. '지금 행복한 삶'을 우리 가족들한테도 전파하겠습니다.

얼른 쾌차하셔서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편안한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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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꽃
2008.07.11 17:28:38 *.7.192.111
갈증으로 우물을 찾아 이곳 저곳 찾아 헤매이다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라는 샘물을 만나 매일매일 감사하구 행복한데요!

선생님 건강 행복기원드리고요 언젠가는 이곳 식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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