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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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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2일 02시 36분 등록



촛불을 두 개 켜 놓고 글을 쓰고 있어요. 그러니까 약 한 시간 전, 집의 모든 불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정전이 아닌가 봐요. 밖에 나가보니 제 방만 불이 꺼져있거든요. 우체통을 뒤져보았더니 ‘전기 사용 계약 해지 알림’ 이라 크게 적힌 우편물이 와 있네요. 소소한 것을 챙기지 못하는 제 기질이 결국 일을 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죠. 샤워를 하기 시작했어요. 촛불 하나를 화장실에 켜 둔 채로 말이에요. 샴푸에 눈이 따가워 눈을 감았다가 잠시 비비고 떴어요. 이게 웬일일까요? 모락모락 나는 김에 펄럭거리는 촛불이 비쳐 오로라 같은 신비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고양이는 밖에서 울고, 거품은 귀 뒤를 타고 흐르는데, 저는 몇 분동안 입을 벌린 채 눈 앞의 광경을 넋 놓고 보고 있었어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눈이 건강하지 못해요. 대학 4학년 때 안약을 많이 넣어서 ‘녹내장(Glaucoma)’ 이라는 병을 얻었거든요. 시신경이 많이 손상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잘 보지 못해요. 녹내장은 나이가 들면 저절로 진행될 수도 있다고 하니, 노년을 맞이하면 실명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어요. 늘 그 순간이 두렵습니다. 지금까지 보아온 그 아름다운 자연은 어두운 암흑으로 바뀔 거에요. 컴컴한 어두움 속에서 살게 된다는 것은 때로 죽음보다 더한 공포였죠. 그런데 오늘 샤워를 하다 문득 깨달았어요.

아마도 불이 꺼질 때 마음의 촛불을 켜게 될 거에요. 볼 수 없으니 더 잘 듣게 되고, 더 세심하게 만지게 될 거에요. 사물의 실존에 더 근접하게 될 지도 모르죠.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더 잘 알게 되는 신의 세계도 있을 거에요. 등불이 너무 환해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될 거에요.

‘깨달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알레테이아(aletheia)’의 어원은 ‘등불을 끄다’라는 뜻이라죠? 등불을 꺼야 비로소 하늘의 별빛이 보이니까요. 우주의 별빛을 보게 될 거에요. 조금 불편해도, 조금 도움을 받아도, 새로운 오로라를 보며 살 수 있을 거에요. 그걸 알게 되었어요. 오늘따라 이 사람들의 말이 떠오릅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자주, 후회 속에서, 오래도록 닫혀진 문을 바라보며 아쉬워한다. 우리 앞에 또 하나의 문이 열려 있는 것도 알지 못한 채.” – 헬렌 켈러

“내 앞에서 길이 열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네. 그러나 내 뒤에는 수많은 길이 닫히고 있지. 이 역시 삶이 나를 준비된 길로 이끄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네.” - 파커 J. 팔머,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그래요. 그렇군요. 문이 닫히는 것도, 길이 닫히는 것도 그리고 불이 꺼지는 것도, 모두 신의 인도(引導)인가봐요. 새로운 것을 보게 하려는 우주의 손짓일거에요. 불을 끄고 희미한 촛불 속에서 샤워를 해 보세요.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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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5.12 14:39:26 *.36.210.11
그대 심정에 대해 늘 이해가 되어요. 하지만 다가올 지도 모를 불안한 그날을 미리 걱정하기보다 지금을 잘 살아가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 내가 가슴 쓰린 실패를 경험하며 깨달은 것이에요. 더 좋은 의학 기술과 과학이 눈 깜짝 할 사이에 발전하고 진화되며 변화되어 가고 있어요. 그러니 미리부터 걱정을 당기지는 말아요. 그보다 오늘을 마음껏 살고 누릴 수 있도록 애쓰면서 조금씩 여러 의미의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한 해 동안 이런 저런 방향과 모색을 통해 좀 더 본래의 자신을 향해 진솔한 자신과의 만남을 가졌던 것으로 보여요. 아마도 그것을 위해 노력한 것일지도 몰라요. 그것이 어떤 이는 침묵으로 어떤 이는 자아 성찰로 어떤 이는 투쟁으로 어떤 이는 눈물로 어떤 이는 이별로 어떤 이는 작은 상처로 어떤 이는 기쁨으로 남았을 지 몰라요. 그러나 그러한 시간을 통해 좀 더 자신에게 가까워졌던 것은 아닐까요? 그것이 바로 진솔한 성공적 시간을 살아낸 결과는 아닐까요? 우리의 과정과 우리의 결과는 바로 그것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한 모험과 도전의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나는 슬픔 속에서 피어나는 웃음과 꽃의 만발한 미소가 기쁨과 환희 속에서의 영광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기쁨 만이 성과나 성공은 아니에요. 우리 모두는 자연의 조화처럼 서로 다름과 차이를 좁혀가기 위해 인내하고 쓰고 함께 살아가고자 배우고 느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그대의 고민이 다른 나의 고민과 상통하고 그대와 나의 차이가 저마다의 인격과 존재감을 들어내며 그것으로서 우리의 간격을 좁혀 의미는 나누고 좋은 점은 배우고 특색은 나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이 이렇게 모여 따로 또 같이 함께하는 이유가 아니겠는지 생각해 봅니다.

오늘 그대의 글은 깊어가는 그대 내면의 성찰로 여겨지며 한결 가뿐해 보입니다. 언제나 현명하고 잘나기보다 우리 마음껏 있는 그대로를 살아가며 따로 또 같이 하는 시간의 어울림과 상생을 통해 자연친화적인 생명의 가지들처럼 조화로울 때(어느 것은 웃고, 어느 것은 울고, 어느 것은 담담하고, 어느 것은 찌그러지고, 어느 것은 빛나기도 하는...) 우리는 이 공간의 의미를 제대로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불이 꺼져도 이내 우리 자신의 길을 살아가게 될 우리 자신들의 당당한 모습이 되어 있다면 그만입니다. 그러기 위해 좋은 습관 하나, 한줄기 글 하나 더 노력함이요 그것으로서 일상을 오늘처럼 누리게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예 모여 함께 함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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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2008.05.12 20:28:02 *.252.102.67
어린왕자에서도 그랬지요. 중요한 것은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그래서 헬렌켈러가 한 말이 더 가슴에 와닿는 것 같아요.
실은 헬렌켈러의 그 말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라서 친구들에게 종종 선물하는 글귀지요. 외국친구들에게는 그 원문으로 책갈피를 만들어 선물했었는데 아래가 원문입니다. 번역과는 또 다른 맛이 나네요^^

"When one door of happiness closes, another opens; but often we look so long at the closed door that we do not see the one which has been opened for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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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8.05.21 07:25:01 *.218.202.52
게을러서 이제야 댓글을 남기네요. 써니누나. 어머니께서 위의 누나 댓글을 보시고 많이 공감하셨던 모양이에요. 말씀대로 의학기술의 도약이 있을 날이 오겠죠? 황우석은 실패했지만, 줄기세포가 개발되는 날이 올꺼에요. 희망은 정말 축복이네요.

앨리스님, 원어는 행복의 문(door of happiness) 이었군요. 항상 따뜻한 메일과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언젠가 뵙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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