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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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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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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일 08시 04분 등록

“용(龍)을 사냥하고 싶어하는 한 청년이 있었다네. 그 마음이 간절하여 그는 우선 사냥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그는 산으로 올라가 용을 사냥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도사 밑에서 열심히 공부했지. 모든 종류의 기술을 배우고 갈고 닦으니 10년이 마치 10일처럼 느껴졌지. 그러던 어느 날 도사는 그를 불러 ‘이제 하산해도 좋다’는 허락을 했다네. 부푼 가슴을 안고 그는 세상으로 내려왔지. 허나 그는 곧 알게 되었네. 세상에서 용이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는 사실을 말일세.”

대학시절,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님께서 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강렬하여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가 봅니다. 청년의 안타까운 심정이 마치 요즘의 젊은이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학교에서 열심히 교육을 받고, 시험을 보고, 영어 스터디를 하고, 온갖 종류의 자격증을 따고 나서야 겨우 직장을 잡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은 중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지요. 학교에서의 그러한 ‘준비’가 과연 필요한 것이었을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용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크게 낙담한 그가 어떻게 했는지 아는가? 그는 다시 산으로 올라갔지. 그리고 ‘용을 사냥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도사’가 되었다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학교로 돌아가거나, 더 높은 자격증을 향해 도전합니다. 박사 학위를 따거나 더 그럴듯한 사회적인 인증을 가지고 다시 산을 내려올 때 즈음, 그가 배운 전문 지식들이 일상에서 그리 유용하지 못함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가 공부한 것을 버리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안정적인 직장을 잡기 위해 그는 ‘가르치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학교에 대한 이 이야기가 지나친 비유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공교육의 체계가 ‘산업화’가 한창인 19세기에 세워진 것을 감안하면 그리 큰 비약이 아님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산업사회의 물결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문제를 ‘분해’해서 작은 요소로 풀게 하는 능력을 극대화시켰습니다. 분별(分別)의 지식이 이 시대의 핵심이었지요

지금의 우리는 새로운 통섭(Consilience)의 시대 입구에 서 있습니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책을 짓눌러 분별의 지식을 공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전문가가 의지해야 할 것은 사변적인 지식이 아닌,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 문 밖에서 사유할 줄 아는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학교 교육 과정이 학생 '스스로의 교육'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정말 알아야 할 것은 남이 가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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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효
2008.06.02 08:23:57 *.241.31.178
님의 표현대로 '지나친 표현'같군요. 아니 제 입장은 어울리지 않는 비유 같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랄까 우리가 죽기 전까지 맞닥뜨려야 할 여러 대상들이 아직까지 - 혹은 영원히 - 완전히 석연할 수는 없으므로, 즉 다시말해 '모르는 게 아직 많음'의 비유로 설명되어지는 게 좋을 듯 하네요. 전 문과대학 출신이지만 고교 시절 배웠던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학 등등이 쓸모없다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단 한 차례도 없거든요. 이야기로 남을 설득하는게 트렌드처럼 되어 버린 요즈음일수록 정확한 비유를 사용함이 관건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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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
2008.06.02 09:45:46 *.114.22.72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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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08.06.02 11:44:10 *.67.52.197
공교육이 각 개인의 재능을 살려 줄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이 스스로 교육을 다시 받고 있습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학창시절에 배운 몇십 과목들 저에게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공부를 좋아하고 지적호기심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맞을지 모르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마다 발달 수준이 다른데 초등6년 중고등학교6년 대학4년으로 나눠 이 속도에 맞지 않는 사람은 따라가기 힘듭니다. 제가 그렇구요 ^^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그 내용 일부 중에
옛 서당에 처음 들어가면 천지현황(天地玄黃) - 하늘은 위에 있어 그 빛이 검고 땅은 아래 있어서 그 빛이 누르다.- 를 배우는데
우리 중학교 영어 첫 수업시간에 배우는 것은
"I am a boy"를 배웁니다. 어느 것이 뜻이 더 높은지는 안봐도 알수 있습니다. 교육이 가져야 할 것은 기능적인 인간을 기르는게 아닙니다.
높은 뜻을 가질 수 있고 실천 할 수 있는 기상을 가진 사람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자격증 시험등을 봤는데 보고 나면 참 허무합니다. 그렇다고 딱히 해결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시류를 따라가기 급급합니다.
교육은 현실적인 생계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전인적인 사람이 되기위함이기도 합니다. 이 두가지를 어떻게 같이 끌고 갈 수 있을까 늘 고민합니다.
학생들 정말 불쌍합니다. 좀 놀면 안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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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오
2008.06.03 23:54:42 *.208.192.28
김신효님, 의견 감사합니다.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제 마음에 든 비유가 다른 사람에게도 절묘한 비유가 될 수 없음을 알겠습니다. 저는 무던한 사람이라 조금은 극단적이고 선동적인 비유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이번 글의 주제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비유였던 것 같습니다.

글을 다시 보니 급히 쓴 글이라 논리적으로 초점이 잘 맞지 않을 뿐더러, 오해의 소지가 다분합니다. 공교육이 학생들에게 쓸모없는 것들을 가르친다는 것을 말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석사, 박사 등의 고등교육으로 올라갈수록 지나치게 세분화되는 학문의 '분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가방끈이 길어질수록 전체에서 어디쯤 와있는지 알 수 없었던 제 학교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쓴 글입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살피지 않고 모든 문제를 아주 자세하게 수량화 한다면, 또 자꾸 세분화만을 시도한다면 우리의 지식은 갈수록 줄어들 수 밖에 없을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의 출발이었습니다.

오해를 줄이기 위해 이 글의 씨앗글이 되었던 법정스님의 글을 아래에 놓습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알고 있느냐, 이 말은 얼마나 복잡하게 분별하고 있느냐의 뜻이다. 안다는 것은 산스크리트어의 어원으로 보면 아는 것을 쪼갠 것, 즉 분별의 지식이다. 그래서 이것을 분별지(分別智)라고도 표현한다. 그런데 이 분별지는 인격과 직접 관계가 없다. 그저 아는 것을 뜻할 뿐이다. 일찍부터 인도 사람들은 이와 같은 지식을 ‘분별 망상(妄想)’이라고 해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 대신 분별을 넘어선 무분별지의 세계를 추구하고, 또한 거기에 도달하려고 애썼다. 여기서 말하는 무분별지는 시시콜콜하게 따지고 쪼개고 하는 분별 망상을 초월한 경지를 뜻한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사변적인 지식이 아니라 끝없는 빛, 즉 지혜라고 불교경전에서는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 법정, '서 있는 사람들'

혹 제 글이 김신효님의 믿음과 충돌하여 불쾌함을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이철민님, 김지현님.
부족한 글에 보충하여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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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효
2008.06.04 09:21:18 *.241.31.178
박승오님의 글의 논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변경연의 이름으로 정기적으로 나가는 칼럼(그 칼럼의 충실한 한 독자로서)임을 감안했을 때
비유로 든 이야기가 좀 핀트가 안맞는다 생각했을 따름이지요.
앎의 작용에 관한 담론인 인식론이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저는 잘 알지 못하나, '남이 버린 오물도 심지어는 내 밭의 곡식을 기르는 거름이 될 수도 있는' 사정을 이해하는, 또는 '내가 어릴 때 쏘았던 화살이 날아가 박힌 곳을 훗날 우연히 발견했을 때의 모골송연함 따위의 이야기에 감동하는, 얼치기 촌놈으로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불교는 제가 잘 몰라서 말씀드릴 게 없습니다.
성실한 답글에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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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08.06.04 13:48:37 *.67.52.206
청하 스님은 분별지를 넘어서 깨달았으면 본래 자리로 돌아와 대중을 위해 봉사해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혜가 있으면 지혜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배운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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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6.05 14:07:23 *.36.210.11
나는 이 칼럼에 매우 깊이 공감합니다. 승오야, 이 맛이야.

여행을 다녀온 후 너희들의 모습 정말 기대가 된다. 멋진 썸씽(?)이 일어날 것만 같아. ㅎㅎ 가려움을 알고 정확히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한사람의 깨달음과 갈급함의 이치로 천 명 만 명 수십 수백만 수천 수억 수십 억의 해갈을 도울 수 있을 거야. 하물며 너희 둘 이라면? 잘 쉬고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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