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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6일 07시 57분 등록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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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


 저는 마흔 살이 된다는 것이 단순히 숫자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을 갖고 있습니다. <마흔 세 살에 시작하다>라는 책에 나왔던 것처럼 사십 대 초반에 커다란 정신적 전환을 이뤄낸 아빠를 곁에서 보며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에게도 좋든 싫든 마흔 살쯤에는 지금까지의 삶이 제 몸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최소한 지금까지의 삶에서 느끼던 것과는 다른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올해 서른다섯, 삶의 여러 부분들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가장 큰 부분은 일입니다. 나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하게 될까? 지금의 직무가 나에게 잘 맞는가? 다른 일을 해보면 어떨까? 직무와 글쓰기를 결합해 보면 어떨까? 하는 다양한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져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것부터 도전해 보고 있습니다. 다행히 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배우는 사람입니다. 해보지 않았던 거라도 간접적으로라도 지식을 쌓을 수 있고, 결국 목표를 달성해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해야만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루키는 먼 북소리를 따라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렸다면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가냘프게 울리는 그 소리를 듣는 동안,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떠났고, 유럽에서 지내는 3년 동안 그는 가장 유명한 저서인 <노르웨이의 숲> <댄스 댄스 댄스>를 썼습니다. 그는 자신이 일본에 있었더라도 같은 소설을 썼을 거라고 하지만, 그 결과 분위기가 유럽적인 어떤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상품 기획 업무를 하다 보면 새로운 것을 만들 때 자신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시장이 어디 있고, 고객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나서야 상품 개발을 위한 투자와 연구 집행을 결정하지요. 그러다 보면 스스로 자신이 써보고 싶은 것을 써보고,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는 자유도는 좀 떨어지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내고, 전폭적인 투자까지 받는 것은 좀 두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과물의 최종 사용자를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루키의 이 글을 읽으면서 소설과 같은 어떤 종류의 글쓰기는 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밤에 하루키의 에세이 <먼 북소리>를 읽다 잠들었습니다. 이 책은 <마녀 체력>에서 잠시 인용되며 알게 된 책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북소리를 들은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자신으로도 괜찮아’, ‘세상은 멋진 것으로 가득 차 있어.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용기를 냈던 그 순간을 기억해. 상처받더라도 후회는 없을 거야’, ‘오래 외롭더라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힘을 빼고, 다른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들을 모아보니, 이야기의 메시지로 남겨도 좋을 것 같은 말들이 머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창작자는 기본적으로 독자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작품이란 만든 사람과 관찰자가 모여야 완성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창작의 과정과 표현은 개인적이고 고독합니다. 그런 면에서 상당히 이중적인 면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사적인 부분을 공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 줄지 어떨지 완전히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속에 있는 작은 예술가가 마음껏 자신의 기량을 뽐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삽질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땅을 파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먼 북소리를 따라가십시오.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해주고 잘 관찰해 보십시오. 그 시간을 즐겨보세요.

IP *.143.2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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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6 09:26:09 *.138.247.98

먼 북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뜁니다.
북소리를 듣고도 따라가지 않은 적이 많았습니다.
오늘을 먼북소리를 듣고 따라가는 시발점으로 삼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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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6 10:49:33 *.208.9.208

늘 마음을 나누는 편지에 감사드리고 있는데,

오늘의 편지는 특히 제게 더 깊게 다가와 댓글로 감사 인사 올립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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