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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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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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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8일 06시 54분 등록

조영남의 새 책 “어느날 사랑이”에 이런 얘기가 나오네요. 윤여정과 15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하던 40대 초반의 조영남이 졸업반 여대생을 만나는 장면인데요. 그토록 가슴떨리고 아름답게 보이던 여대생이, 윤여정과 이혼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조금도 예뻐보이지 않더라는 겁니다. 가질 수 있는 것에는 더 이상 선망을 품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조영남 특유의 솔직함에 실려 극명하게 드러난 인간심리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15년 결혼생활을 깬 외도의 허망함, 그만한 외도로 무너진 결혼생활이 다시 한 번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했습니다.

나는 사람을 깊이 사귀지 못하는 편입니다. 좀체로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하지요. 어쩌면 인간관계의 95프로는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는지도 모릅니다. 외롭지 않으려고, 혹은 사교성이나 비즈니스 차원에서 서로서로 우호적으로 살아가는 것일텐데, 과다하게 의미중심인 내 성격이 그걸 잘 못합니다. ^^ 그런데 어울림을 축소하다보니, 내 삶 자체가 상당히 위축되었습니다. 주로 혼자 놀다보니, 관계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된 것이지요. 대인관계지능은 물론 인간관계망, 사람살이에 대한 공유가 형편없이 취약합니다.

문제는 대학신입생인 딸도 나를 닮아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슴이 철렁합니다. 오랜 시행착오를 통해 ‘어울림’이야말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기쁨이요,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조영남의 경우처럼 한없이 허망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사람은 혼자서는 아름다울수도 행복할수도 없는 존재니까요.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없이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요즘 조금씩 어울리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자리에서나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나면 할 말이 없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아는 척도 하고, 너스레를 떨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세상 사람들 모두 동의에 굶주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善意라는 것이 그다지 대단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계속되지 않아도 얼마나 힘이 센지도 알게 되었구요. 그저 스치는 사이라고 해도, 고립감과 고통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한 번의 다가감, 한 번의 포옹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요. 요즘처럼 관계지향이 되다가는 조만간 관계중독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군요. ^^

회피와 중독의 양 극단 사이에 펼쳐져있는 ‘관계’의 스펙트럼 그 어디쯤에 존재하든, 당신이 ‘관계’에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성공은 ‘관계’의 성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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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웅
2007.11.08 22:30:13 *.253.1.106
한 선생님의 편지를 읽는 중 요즘 읽고 있던 고미숙의 ‘호모 쿵푸스’에 나오는 연암 박지원의 우정을 이야기 하는 부분이 제 머릿속에 오버랩 되네요. 원래 이 부분은 연암이 나이 차이가 있는 홍대용, 박제가와 즐겁게 우정을 나누는 것에 빗대어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원숙한 노인과 역동적인 젊은이 사이의 소통 방법에 대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 같은데 아래 부분도 함께 인용해 놓았더군요.

‘박지원의 우정론은 그가 쓴 ‘예덕선생전’의 다음 구절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대단한 사귐은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아도 되고, 두터운 벗은 서로 가까이 지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고, 그 사람의 덕을 보고 벗을 삼으면 되는 것이다. ……위로 천 년 전의 옛사람과 벗을 해도 사이가 먼 것이 아니요, 만 리나 떨어져 지내는 사람과 사귀어도 사이가 먼 것이 아니다.”’

이는 공자님이 말한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덕불고필유린)와 일맥상통 하는 내용인 것 같지요?

그리고 ‘덕불고필유린’ 하니까 또 이런 생각도 떠오르네요.

“한번 생각해보라. 10대와 60·70대가 함께, 지속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활동이 대체 무엇이 있을 수 있는지를. 어떤 스포츠, 어떤 취미활동도 불가능하다. 고로, 단연코 공부 밖에는 길이 없다!”

책에서 고미숙은 다양한 세대가 함께, 지속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활동의 최고봉으로 ‘공부’를 꼽고 있네요. 이것을 변경연 버전으로 바꿔보면 ‘공부’ 대신에 ‘꿈’을 넣어도 좋을 것 같지요?

그럼 여기서 ‘덕불고필유린’은 고미숙의 ‘공부’를 만나 “공부하는 자는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로 불릴 수 있는 ‘학불고필유린’이 되겠고, 이것이 변경연의 ‘꿈’을 만나게 된다면 ‘몽불고필유린’이 되겠네요. “꿈을 꾸는 자는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

또 이를 공부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쿵푸스(Homo Kungfus)’나 책 읽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부커스(Homo Bookus)’처럼 불러보면, 꿈꾸는 인간인 ‘호모 드리머스(Homo Dreamus)’나 이것의 라틴어 버전인 ‘호모 솜니윰스(Homo Somniums)’가 되겠네요.

휴, 댓글을 쓴다는 게 이상한 쪽으로 흐르면서 낙서 비슷한 게 되고 말았네요. 한 선생님의 편지는 언제나 와서 놀 수 있는 제 낙서 놀이터가 되어 주는 것 같아 너무 좋으네요. 편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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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11.09 09:28:32 *.209.106.87
나는 ‘호모 부커스(Homo Bookus)’ 딱이네요. ^^
책에서 얻는 것이 워낙 많네요.
이만큼 살아낸 생의 화두가 '관계'로 결론지어졌는데, 그역시 실제상황에서 정제된 것이 아니라, 책 속에서 발견한 것이라 어떨지요.

책에서 겨우 깨달은 것을 가지고 저자거리로 나가보려구요. 나와 딸과 그 비슷한 사람들을 돕고 싶네요. 위 글을 너무 설명조로 쓴 것같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신웅님의 낙서 놀이터가 되었다니, 내가 더 기쁘죠.

신웅님의 하루가 꿈과 공부와 이웃을 향해 가는 발걸음으로 활기차기를 바래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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