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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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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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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31일 06시 29분 등록

거제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나는 사천 비행장에서 저녁 8시 10분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 올 예정이었습니다. 체크 인을 끝내고 보딩 파스를 받아들고 나니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습니다. 조용히 아무도 없이 1 시간을 혼자서 보내야 합니다. 가방 속에는 책이 한 권 들어 있습니다. 의자에 앉아 그 책을 보면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책을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날 그 시간에 그곳에 있다는 현장감을 즐기기로 작정했습니다. 뭐 재미나는 일이 없을까 찾아보았습니다.

내 눈은 그 작은 공항의 여기저기를 훑고 지나갔습니다. 저기 한 쪽 구석에 작은 가게가 하나 있군요. 그리고 거기에 젊은 아주머니가 한 사람 있습니다. 나는 그 곳으로 가서 1000원 짜리 한 장을 내고, 500원 짜리 동전 두 개로 바꿔 달라고 했습니다. 동전통을 뒤지던 그 아주머니가 순간 난감한 얼굴로 나를 쳐다봅니다. 500원 짜리 동전 두 개가 없는 모양입니다. 나는 그때 그 아주머니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이 사람 귀찮게 구네. 약간 대머리긴 하지만 목소리도 좋고 생긴 것도 괜찮네. 자판기를 열면 500 원 짜리 동전이 숱하게 많으니까 조금 친절을 베풀어 줄까 ? 그러지 뭐. 할 일도 없는데. ” 그 아주머니는 열쇠를 찾아 쥐더니 가게 밖에 설치된 자판기를 열고 동전 2개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습니다. 음, 아주 친절한 일이 생겼군요.

‘다음엔 무엇을 할까 ? 저기 저 구석에 있는 의자가 되어 보자.’ 나는 TV 앞 세 번째 줄 가장 오른쪽 의자가 되어 보기로 했습니다. 금방 그 의자의 과거가 스쳐 지나갑니다. 그 의자가 내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2살입니다. 내 위에 모두 3천 7백명의 사람들이 앉았습니다. 그 중에서 1,231명은 여자였지요. 치마를 입은 여자는 730명이었구요. 내 위에 앉아 방귀를 뀐 사람은 모두 170명이었는데 그중 참기 어려울 만큼 독한 가스를 뿜어 댄 사람은 21명이었습니다. 정말 숨쉬기 어려웠어요. 아이들이 내 위에 콜라나 쥬스를 쏟아 놓은 경우도 13 번이나 됩니다. 청소하는 아줌마가 닦아 내기는 했지만 정말 끈적거려서 싫었어요. 난 내 위에 약간 새침때기의 참한 아가씨가 앉는 것이 제일 좋아요. 도톰한 엉덩이가 따끈따끈하고 부드러운데 베고 누우면 잠이 금방 올 것 같아요” 내가 고른 두 살 짜리 의자는 사춘기 소년이고 아마 매우 말이 많은 수다쟁이였던 모양입니다.

한 시간 동안 나는 공항의 한 가운데 앉아 아주머니도 되어 보고 의자도 되어 보고 자동문도 되어 보고 화장실 벽의 타일도 되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아주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보고 그것들이 느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갔습니다. 그 사람이 되어 본다든가 그 사물이 되어 보는 것은 내게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글을 쓰는 나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이 세상은 수없이 많은 숨겨진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언젠가 심심할 때,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어려울 때, 누군가 그리울 때 한번 시도해 보세요. 주술은 이겁니다. “내가바로너다. 네가바로나다 ”

공지사항 :

9월 15일 부터 17일 까지 2박 3일 동안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시작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홈페이지(www.bhgoo.com) 의 '프로그램 소개'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참고하여 등록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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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8.31 07:26:51 *.70.72.121
세상의 온갖 것들과 이야기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겠군요. 이야기 속에서 상상이 펼쳐지고 상상 속에거 줄거리가 엮어지는, 그래서 작가는 늘 심심할 틈이 없겠어요. 그리고 항시 열려있어야 하겠군요. 들을 준비, 말할 준비, 그릴 준비, 순간을 놓치지 않을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자면서도, 걷다가도 사색하고 꿈꾸고 노래하며 흥얼흥얼 일상을 재미나게 뒹굴게 되는 거로군요. 이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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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2007.08.31 13:33:28 *.248.64.178
마냥 행복해요.
내면에서 오는 만족을 느끼는 특별한 날입니다.
저도 따라해 봤습니다.
내가 그가 될 수있고 그가 내가 될 수있는 그 묘한 기분알 수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꿈꾸는 것을 현실처럼 하고 현실을 꿈처럼 부드럽게 만들 고싶은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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