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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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여섯에 유학을 떠나는 후배의 송별연에 갔었습니다. 마흔에 좋은 출판사 하나를 만들어 내더니 그렇게 시작한 출판사를 떠나 쉰 살을 준비하러 간다 합니다. 스스로 기획하고 스스로 만들어 가는 인생이 자유로워 보기 좋았습니다. 그래서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6년 전 마흔 살이 되어 이 친구는 동교동 기차 길 옆에 작은 출판사를 하나 차렸습니다. 그 해 여름 뜨거운 대낮에 그 출판사를 찾아 가는 데 마침 이 사람이 길 저편에서 걸어왔습니다. 약간 검은 피부에 눈이 매력적인 이 사람의 특징은 미간을 잘 찌푸리는 것입니다. 그때도 그렇게 미간을 찌푸리고 걷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마 그 사람도 그때 무슨 생각에 그렇게 골몰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분명 시작이 주는 고민의 한 자락을 잡고 그것을 풀고 싶어 그랬겠지요.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한 채 골똘하게 생각에 잠긴 채 걸어오기에 어디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반색을 하며 너무 더워 아이스께끼 사러간다 합니다. 우리는 그의 사무실로 들어섰습니다.
아직 한 권의 책도 내지 않은 작은 실험출판 사무실에는 몇 사람들이 모여 일하고 있었습니다. 패기와 불안이 묘하게 짓누르는 사무실이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며칠 후 내 원고를 이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나에게는 여섯 번 째 책이었습니다. 그 책은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라는 제목을 가지고 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출판사에서 그는 동료들과 함께 200 여권의 책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렇게 건강한 실험이 만들어 지는 마흔 살 6년을 보냈습니다.
술을 마시다 그에게 잠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살아보니 마흔 살 십년은 자신을 위해 살아도 좋다. 그러나 쉰 살 십년 속에는 늘 다른 사람이 들어 있어야 한다. 자신만을 위해 살면 허무하다. ”
쉰 살이 다 되어 그를 만나게 되면 틀림없이 지금 보다 더 아름다워져 있을 것입니다. 어제 보다 아름다워져 있는 사람을 보면 나는 인생에 대한 전의에 불탑니다. 당신은 몇 년 뒤에 어떤 아름다운 풍광을 계획하고 있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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