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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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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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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20일 09시 04분 등록
나는 내 편한 대로 걷고 내 맘에 드는 곳에서 멈춰 서고 싶다. 돌아다니는 삶이 내게 필요한 삶이다. 화창한 날씨에 아름다운 고장에서 서두르지 않고 맨발로 길을 나서서 한참 가다가 마침내 기분 좋은 것을 얻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모든 삶의 방식들 중에서 내 취향에 가장 맞는 것이다.
-루소


지난 주에 단출하게 가방을 싸고 기타를 둘러 매고 몽골로 떠났습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회사에 사표를 내고 결정한 여행이었습니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에너지는 바닥을 기었고 감성은 무뎌졌습니다. 사실 몽골로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정착하지 못하고 누가 나를 이끌어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언제라도 따스하게 반겨주는 어머니 같은 자연의 품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도가도 끝없이 펼쳐진 몽골의 초원은 원시적인 느낌이었습니다. 하늘은 유채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푸르고 푸르렀습니다. 고요히 불어오는 바람은 자유의 숨소리였습니다. 우리는 말을 타고 바람을 가르며 초원을 내달렸습니다. 산 언덕 아래에 모여서 유목민들과 노래 자랑을 하기도 했습니다. 초원 한 복판에 천막을 치고 양푼 비빔밥을 게걸스럽게 먹기도 했습니다. 구름이 걸쳐 있는 듯한 언덕까지 올라가 사방이 트인 전경을 보며 감탄하고 감탄했습니다. 밤에는 은하수와 별똥을 보면서 소원을 빌었고 새벽녘까지 모닥불을 피워 놓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습니다. 수염은 덥수룩해지고 피부는 시커멓게 변하여 어느새 몽골리안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싫지 않았습니다. 몽골이 너무 좋아졌습니다.

애초에 몽골의 삶의 방식은 나에게는 맞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유목민의 삶에 대한 편견과 무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곳에서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활의 편리함으로 삶의 모습을 재단한 나의 모습이 심히 부끄러웠습니다. 과연 어떤 삶이 더 가치 있는가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자기답게 살 수 있을까라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유목민으로서의 삶, 그것 또한 필요하고 아주 매력적이라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석학 쟈크 아탈리는 유목은 21세기의 필연적인 패러다임이라고 말하면서 ‘특정한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삶을 탐구하고 창조해온 인류의 보편적 가치’, 즉 노마디즘(nomadism, 유목주의)이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대륙을 호령하던 유목민의 기상이 정착문명에 의해 변방으로 밀려났지만 이제 변화의 시대에 유목적 생활방식은 다시 힘을 얻을 것입니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날 밤, 울란바토르 어느 바에서 맥주를 한잔하는데 갑자기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아쉬움이라기 보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한 떨림이 눈물을 부추깁니다. 그것은 일상과 일탈, 안주와 변화의 경계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숙명에 대한 깨달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이 무척 보고 싶어졌습니다.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일상은 예전과 다를 것입니다. 나는 ‘일상에서 유목하기’를 실험해보려고 합니다. 나는 일상에서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새로운 삶으로 이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치면 자유롭게 일상의 탈출을 감행할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미래의 인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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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8.21 12:25:56 *.75.15.205
그대의 편지를 읽으며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라 몇 자 옮겨 봅니다.
"뱅곤이 술을 좀 줄여야 해. 이제부터는 몸 관리를 하며 일을 해야지... " 당부의 말씀이실 테니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몽골에서의 한 주일 동안 그대를 보았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곳에 있는 동안에 빡빡한 일정과 적지 않은 술을 마셨지만, 기분이 좋아 그랬는지 가기 전 다소 무거운 마음이나 일상을 잠시 잊으며, 일단 가서는 모든 것 떨쳐버리고 자연주의자 루소처럼, 한마리 어린 당나귀처럼 말타기를 배우며 무언가 새로운 꿈과 사랑과 의미를 찾아 나서려는 그대의 모습 느껴졌더랬습니다.

원초적 자연이 그대로 펄펄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한 몽골의 끝도 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초원과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은 말 그대로 애틋한 자연으로의 회귀, 마치 어미의 자궁과도 같은 그리움이었습니다.

결코 넉넉치 않은 뭉근머리트의 게르에서의 숙박과 식사 그리고 낯선 이방인들과 친구가 되고 싶은 젊은 청춘의 원주민들과의 말 타기는 아름다움과 낭만과 알 수 없는 간극으로 인한 가늘한 연민으로 여운을 남깁니다. 최소한의 것들만을 가지고 자유롭게 초원을 누비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검은 살갗의 순박한 사람들과, 매끈하게 그러나 나면서부터 인공과 기계적 메카니즘에 혼융된 이국의 사람들과의 한바탕의 어울림은 서로에게 말을 아끼는 감동과 사색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공기가 맑아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일상의 깊은 시름들을 잠시나마 내려 놓을 수 있어서 그랬는지 정말이지 감쪽같이 그 밭은 헛기침이 새어 나오지 않는 그대를 보면서 안쓰러움이 일었습니다. 우리보다 하루 먼저 떠나 울란바토르 어느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울컥 치밀어 오르는 그 더운 가슴과 뜨거운 눈물 방울이 삶으로 향한 무거운 짐이거나 겁나는 옹졸함이 아닌 더 멋진 비상을 꿈꾸는 아기새의 통과의례와도 같은 각오일 것을 알기에 애잔한 마음 그지 없습니다. 허나 그대의 마침내 혼자 모는 말 타기처럼 스스럼 없을 한 발작 큰 걸음인 것을 압니다. 부디 징기스칸의 영혼처럼 그대 오병칸으로 거듭 태어남을 믿고 또 믿으며 우리 모두 같이 힘차게 응원합니다.

'제국의 무리와 온갖 초원의 생명들이여! 모두가 나를 믿고 따르라. ' 추추 호르땅 호르땅 오병칸의 새로운 신화를 위하여!를 힘차게 외치십시오. 그대의 영광을 길이 염원할 것이니... 오병칸! 오병칸! 변. 경! 변.경! 99999 ( 그대 떠난 뒤 관광봉고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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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08.22 09:01:09 *.227.22.57
한동안 칼럼에서도 힘든 기색이 돌더니 이번 글에선 완전히 살아나셨군요. 여행은 사람을 살아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기타를 둘러매고 몽고의 초원을 걷던 형의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집니다.

정말 좋은 여행이었지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지요?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몽고에서 받아온 에너지로 새롭게 시작하시는 일을 멋지게 성공시키시기 바랍니다. 화이팅!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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