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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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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5일 00시 06분 등록

방송작가의 대모 김수현작, “내 남자의 여자”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김수현 특유의 집요한 장치와 강한 캐릭터들이 버거워서 두 세 번 밖에 보지 않았지만, 통념상 ‘할머니’ 나이에 도달한 김수현의 감각이 더욱 날카로워진 것을 느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이화영으로 분장한 김희애의 감정몰입은 소름돋을만큼 대단했습니다.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TV 드라마에 흔치않은 팜므파탈 역이라 더욱 긴장했던 것같습니다. 기존의 단아하고 헌신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사랑 앞에는 친구도 도덕도 없고, 오직 자신의 욕망만이 살아 꿈틀거리는, 그러나 사랑의 허상 앞에서는 잠시도 견디지 못하는 솔직하고 외롭고 강렬한 인간 유형을 생생하게 살려냈습니다.


김수현은 실제 현실보다 드라마 속의 가상세계를 더욱 현실적으로 느낀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의 드라마가 그처럼 생생한 생명감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김희애 역시 마흔의 나이에 이런 역할이 주어질줄은 몰랐다며, 맘껏 미모를 뽐내고 새로운 역할에 혼신의 힘을 다 한 것이 역력합니다. 그들은 일 속에 신들린 듯 몰입하고, 일과 놀이를, 일과 존재를, 결국 일과 삶을 하나로 통합시킨듯합니다. 그들처럼 일 속에서 놀 수 있다면, 삶이 하나의 놀이터가 되지 않을까요?


타임지가 2006년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블로그나 유튜브(YouTube), 마이스페이스(MySpace) 등을 통해 미디어 영역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당신(You)'의 존재를 평가한 것이지요.


나는 이 기사를 개인주의 시대에 울려퍼지는 화려한 팡파레로 읽었습니다. 누구나 자기 취향에 따라 꾸밀 수 있는 블로그가 사회변혁의 추진력이고, 소수의 리더나 스타가 아니라, 張三李四의 개성과 감성이 최고라는 이야기니까요.


이 빛나는 개별성의 시대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도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나의 삶이란, 나의 혼이 들어있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김수현과 김희애처럼, 스스로 즐기며 남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당신은 이 한 세상, 무엇을 하며 놀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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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2007.07.05 08:50:11 *.45.98.41
"나의 삶이란, 나의 혼이 들어있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라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저는 제 일을 사랑하고 일을 즐기고 있지만, 그 안에 혼이 들어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 혼을 쏟을 만한 일은 현재 일을 마무리 하고 다시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회사에서 읽으니 더 가슴에 와닿는 오늘의 '마음을 나누는 편지'였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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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철
2007.07.05 09:17:57 *.243.5.20
오늘 하루는 포스트잇에 써서 제 노트북 앞에 붙여놓고 임하렵니다.

"나의 삶이란, 나의 혼이 들어있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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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7.05 12:01:04 *.209.113.6
앨리스님, 저번에 내 글이 어렵다고 해 준 뒤에 또 다른 분들이 같은 피드백을 해 주었어요. 그래서 나도 내 편지가 너무 길고, 지나치게 진지했구나... 하고 깨달았지요. 짧고 쉽게 그러면서 할 말을 끼워넣는 형태에 대해 연습할 거에요. 항시 관심보여주어서 고마워요.
몸과 마음이 가벼우면서도, 무언가 하나 건지는 하루가 되기를!

동철씨, 나도 컴 앞에 이 글귀를 써 붙여놓아야겠어요.
글이란게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잖아요.
뇌가 실제와 상상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지요, 그래서 구체적인 계획과 상상을 하는 사람이 꿈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아진대요.
맘껏 상상하고, 맘껏 느끼고, 오늘 목표까지 달성하는 오늘을 위하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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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흥 신웅
2007.07.06 02:35:03 *.47.112.98
‘노동이 무의미하다면, 삶 또한 별 의미가 없다’

한명석 선생님의 글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 그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의 경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서 ‘일 그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일하는 재미를 일 그 자체에서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반복적인 작업이잖아요. 반복은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들기 쉽겠고요. 그럼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의 결과’에서 일하는 재미를 찾아야 하는 건가요?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찾게 되면 일하는 게 재밌어지겠지요?

그럼 어느 순간부터는 ‘일은 먹고 사는 수단이 아니라 의미를 창출하는 행위’란 말처럼 자신이 하는 일이 즐거워지고, 덩달아 삶도 하루하루 신나겠지요? 니체가 자신의 책 <즐거운 지식>에서 언급한 것처럼요.

“모든 좋은 것들은 웃는다.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서는 자는 춤을 춘다.”

* 오늘 책을 읽다가 한명석 선생님의 편지가 생각나길래 이 책 저 책에서 본 문구와 함께 엮어봤어요. 이는 한 선생님께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댓글이 물음표 형식으로 써지길래 편하게 적어 본 거예요.

정리하면 오늘 <사자같이 젊은 놈들>을 읽다가 한 선생님의 편지가 떠올랐고 이것이 <프로페셔널의 조건>과 연결이 되었지요. 마지막 문장은 <나, 구본형의 변화이야기>에서 본 거구요. (아하, 글이란 이렇게 읽은 것들이 연결되면서 나오는 거군요.)

** 여기에 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문장이 섞여지면 또 새로운 버전이 나오겠네요.

‘어느 날 악마가 속삭였다. “네가 현재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온 생이 다시 한 번, 나아가 수없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거기에는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이 없을 것이다. 일체의 고통과 기쁨, 일체의 사념과 탄식, 너의 생애의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크고 작은 일이 다시금 되풀이될 것이다. 모조리 그대로의 순서로 되돌아온다. 너는 다시 한 번, 수없이 계속 이 삶이 반복되기를 원하느냐?”’

사람들을 걱정해서 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삶이 걱정스러웠던 걸까요? 니체는 자신이 마치 의사라도 된 것 마냥 사람들에게 처방전을 내놓지요. “삶의 방식을 바꾸기 전에 병은 낫지 않는다.” 고.

이 미래에서 온 괴이한 의사가 위 처방전으로 정말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계속 덧붙이니까 아주 재밌고 신나네요. 여기서 멈춰야지(여기까지가 한계이기에). 아주 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잘 노네요. 흐흐.

재밌는 놀이를 하게 해 준.. 재밌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 마지막으로 <사자같이···>에서 읽은 맘에 드는 문장 하나 남기고 사라집니다. 슝~

‘꿈의 시선으로 현실을 보면, 보이지 않던 것을 감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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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7.06 11:06:21 *.209.113.6
영화 '왕의 남자'의 모태가 된 연극 '이'에서, 연산군이 죽게된 장면에서 멈칫거리는 광대패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왜 멈추는거냐, 어서 계속하도록 하라.
죽으려니 놀고 싶구나"

현 경의 책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거야'에서 친구목사의 유언도,
"실컷 놀아라"
였지요.

이제 무엇을 가지고 놀 것인가, 하는 문제와
논다는 경지에까지 도달하기 위한 자기훈련과 집중의 시간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한 사람들이 연구소에 집결한 거구요.

이 광할하고 허허로운 우주에서,
신웅님과 내가 이만한 에너지를 교환하게 된 것을 자축합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소장님의 말씀에 도달하게 될 때까지 우리모두
go! go!

" 내 인생은 내가 원하는대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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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롱 신웅
2007.07.06 18:35:55 *.47.82.67
오호 !

보는 이에 따라 '마녀'로 불리기도, '창조적인 신학자'로 불리기도 한다는 그녀.

작가 소개에서 저는 이 부분이 아주 인상적으로 다가오네요.

"그는 학문, 사회운동, 영적 수련,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름' 사이의 다리를 놓으려는 문화통역사이자 '신학자 예술가'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녀가 스스로를 '현경'으로 부르게 된 이유도.

"한국 여성들이 벌이고 있는 호주제 폐지운동을 지지하기 위하여 저자는 이 책 출간(2002년 1월)을 계기로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어머니가 세 분이므로 그 성들을 이름 앞에 붙이면 '오강장정현경'이 되기 때문에 아예 더 평등한 방법으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을 다 빼기로 했다. 오늘부터 그녀의 이름은 '현경'이다." !

결국 그 운동이 결실을 맺게 되었네요. 호주제가 '2005년 3월 2일 국회 본회의 통과 후 2008년 1월 1일 폐지'된다고 하니까요. 이는 양성 평등이 실현되는 거라서 사회가 보다 건강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건데, 법 개정 당시에 고시생들은 투덜거렸다지요. 공부하는데 조금 혼선이 찾아왔으니까. 지나고 나서 보니 고시공부는 열심히 안 했지만 어쩌면 저도 그 일부 중에 한 명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인상적인 작가 한 명을 새로 발견한 기분이에요. 현경의 책에 호기심이 이는 걸요 !

저의 우문에 현답과 혜안까지 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흐흐.

* 아 ! '이름(별칭 또는 닉네임)을 바꾼다'고 하면 저는 이젠 으레 이 글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글은 이렇게 시작하지요.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들은 생일을 축하하지 않는다. 해마다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아무런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므로 전혀 축하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과거 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축하한다. 그날이 바로 새로 태어난 날이 된다. 그 사람들은 아이였을 때의 이름도 때가되면 버린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지어주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지혜가 늘고 삶의 목표가 뚜렷해지기 때문에 어렸을 때의 이름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게되기 때문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어렸을 때의 이름을 버리고 다른 이름을 선택한다. 그 사람들은 그러므로 일생 동안에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질 수 있다. 그 사람들에게 자신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과거는 그저 '자신 앞에 있던 시간'일 뿐이다." !

이 글은 알고 보니 구본형 선생님께서 2001년도에 동아일보에 '책 리뷰'로 연재한 칼럼의 하나더군요. '칼럼/기고문' 게시판에 있는 글인데 저는 최근에서야 알게 됐지 뭐예요. (칼럼 41번부터 59번까지. 모두 19권이길래 40번 칼럼의 책도 포함시키면 20권 ! ㅎㅎ)

* 구 선생님이 좋았다고 하는 책에 관심이 많은 저로써는 그 책들을 더 일찍 알지 못한 게 한으로 맺히던데. 그래서 혹시나 해서 저처럼 될 분들을 미연에 방지하는 의미에서 '기록'으로 남겨 놓습니다. 저처럼 구 선생님의 추천도서에 맘이 가는 분들에게는 '촉촉한 단비'와 같은 책들일지도 모르겠기에.

에헴, 그런데 아직 연구원 도서도 다 읽지 못한 제가 이렇게 욕심이 가득한 글을 남겨 놓아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그런가, 머리가 갸우뚱거리는 걸 어찌할 수 없네요.

쓰고 보니 이건 한 선생님에게만 하는 말도 아닌 것 같고 다른 사람들에게만 하는 말도 아닌 것 같은. 이건 댓글도 아니고 책 소개 글도 아닌 것이. 순간 '같기도'가 떠오르는군요. 아, 제가 욕심이 많이 부렸군요.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한 것 같네요. 다음부터는 많이많이 버리고 댓글을 달아야겠군요 !

* 이건 여담이지만(크크),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도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그런지 모든 연령층과 다양한 기호를 가진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영화를 만들어야 했기에, 영화 속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했다가 그냥 그저 그런 영화가 됐다고 저는 생각해 왔는데, 제가 그런 우를 범하고 말았네요. 그래서 그런가요,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사람들에게 짐을 더해 주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법정스님의 촌철살인과 같은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스님은 그와 같은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신 게 아닐 런지요.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에 보탬이 되어 주는 사람은 나의 벗이 될 수 있지만, 무엇을 자꾸만 갖다 주어 내 단순과 간소함을 깨는 사람은 벗이라 칭할 수 없다'. !

속세에 사는 우리들과 속세를 벗어나 홀로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스님의 삶의 방식은 서로 다르면서도 또 같아야 하겠지요? 이것이 모순 됨과 이중성을 절묘하게 하나로 범벅 시키는 구 선생님 특유의 매력과 비슷한 것이겠지요? 저는 구 선생님의 이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모순을 품고 살 수 있는 정신적 균형(구 선생님은 이를 '인문학적 감수성'이라고도 표현하더군요.)" 말이에요 !

저도 한 선생님의 말씀처럼 구소장님의 그 말에 열광합니다 ! 아마 최고의 경지를 표현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네요 ! "내 인생은 내가 원하는대로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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