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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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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0일 23시 36분 등록

정의4 사회적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지난주 편지에서 타자의 고통이 언젠가 나의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 자각을 서로 응집하여 그 응집된 힘을 힘차게 발휘될 때 사회적 정의라는 등불에 불이 켜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분노가 응집되고 발휘된다고 해서 꼭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고 예고하고 어떻게 해야 그것이 실현될까에 대한 내 견해를 이번 편지에서 전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먼저 숲을 예로 보겠습니다. 숲에도 수구(守舊)의 질서가 있습니다. 소나무들로만 가득 들어찬 숲은 소나무들이 기득을 가진 공간입니다. 소나무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지켜내기 위해 적극적인 방어전략을 구사합니다. 그 대표적인 전략의 하나가 생리적 타감작용(他感作用, allelopathy)입니다. 솔잎이 그 역할을 합니다. 소나무들은 솔잎을 발 아래로 떨궈 숲의 바닥(林床)을 덮습니다. 솔잎이 덮인 숲 바닥에 날아오거나 옮겨진 씨앗은 솔잎이 분비하는 화학적 물질에 의해 발아(發芽)가 억제됩니다. 소나무가 다른 식물의 발아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바닥에 떨어진 솔잎이 그 켜와 두께를 더해가면서 어느 순간 솔잎이 깊은 쪽부터 썩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또한 동물을 비롯한 어떤 외부적 간섭이나 작용이 발생하여 솔잎 투성이였던 바닥의 일부가 흙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때 그 자리에 옮겨지거나 날아온 씨앗이 발아의 기회를 얻습니다. 그 씨앗이 신갈나무라고 예를 들어보면 신갈나무는 소나무의 틈바구니에서 모자라는 빛을 극복하면서 힘겹게 자신의 하늘을 열어냅니다. 어느 순간부터 봄이 오면 꽃을 피우고 가을이 되면 자연적으로, 혹은 어치나 다람쥐같은 동물과 연대하여 도토리 열매를 퍼트려 나갑니다. 마침내 소나무들로 채워졌던 숲에 드디어 새로운 참나무들이 제 하늘을 열게 됩니다. 소나무는 빛을 잃으면 죽는 성질이 있습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지만 마침내 소나무의 시대는 청산되고 서서히 숲의 바닥을 지배하는 타감 물질들이 새로운 생명들의 성과와 낙엽들로 대체됩니다. 임상(林床)은 점점 풍성해집니다. 임상이 풍부하게 바뀌면 숲은 순차적으로 더 다양한 생명들로 채워집니다. 풍부한 양분의 조건을 선호하는 더 많고 다양한 활엽수들과 풀들의 시대가 도래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회도 이러한 이치를 따라 변화하며 풍요로워지는 역사를 이루어왔습니다. 노예제와 봉건의 시대의 낡고 부조리한 질서가 그렇게 무너졌고 새로운 시스템이 들어섰습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 역시 먼저 부정의의 온상을 털어내고 새로운 온상을 만들어야 정의의 기반이 마련될 것입니다. 시스템을 바꾸고 그 시스템의 중요 영역을 맡을 사람들을 가능한 송두리째 바꿔야 합니다. 가능한 송두리째 여야 하는 이유는 사과가 썩어가는 것을 상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썩은 부위가 도려내지지 않고 남아 있으면 다음날에 다시 어느 부분에서 또 썩어 들어가기 때문이지요.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을 몰아낸 자리를 새로 맡아낼 사람들은 최소한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 타인의 아픔에 함께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들, 타인의 노여움을 경청할 줄 아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유능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만인의 열망이 자유롭게 발현되고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나가는 것입니다. 임상을 바꿔내는 것이지요. 정의롭고 유능한 사람들이 정의가 실현되는 작은 증거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자주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봉건의 임상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임상을 이룬 사람들은 다시는 봉건의 체제로 회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듯, 우리의 경우 80년 중반의 뜨거운 변화를 이루어내고 경험한 사람들은 이제 유신 이전의 시대로 회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취의 경험이 중요합니다. 소나무의 숲을 돌파하고 들어간 나무들이 하늘을 열어내는 성취를 이뤄야 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새로운 숲을 이룰 각자가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각자가 주인으로 만나 이루어내는 세상을 열 때 정의는 더욱 넓고 깊어질 것입니다. 주인이 되어 자기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삶을 부당하게 지배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내 주인 자리를 누군가가 빼앗는 것을 참을 수 없듯, 누군가의 주인된 삶의 자리를 빼앗는 것 역시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에 몸서리를 치고 있습니다. 그 통절한 반성과 자각이 응집되고 터져 나와 마침내 빽빽하고 조밀한 소나무의 하늘 곳곳을 열어내야 하는 지점에 당신과 내가 서있습니다. 당신과 내가 손을 잡고 저 어두운 임상으로 들어설 시간인 것입니다. 당신과 내가 주인임을 선언하며 일어서야 하는 시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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