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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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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5일 01시 58분 등록

 

알다시피 플래그쉽(flagship)은 본래 함대에서 깃발을 달고 있는 함선으로 통상 사령관이 타고 있는 배를 일컫는 말입니다. 사령관이 타고 있으니 다른 함선들에 견주어 대단히 중요한 배인 셈입니다. 전투에서 플래그쉽이 타격을 입을 경우 지휘통제에 혼란이 오게 되고 결국 함대는 큰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 말이 경영으로 넘어와서는 주력상품을 뜻하고 가게를 뜻하는 스토어와 결합해서는(flagship store) 상점들의 본점 또는 주력 상점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플래그 스토어 역시 사업의 거점 확보와 확장, 브랜드 가치 제고 등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함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같은 차원에서 농촌이나 산촌 마을에도 플래그쉽 피플(flagship people)이 있습니다. 농촌이나 산촌의 마을 공동체가 오랫동안 가꾸고 지켜온 가치 있는 경험과 문화, 그리고 정신을 계승하고 창조적으로 재생산하여 대를 이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중요도 측면에서 나는 그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여우숲이 있는 우리 사오랑마을에도 플래그쉽 피플이 있습니다. 목수인 형과 흙벽돌 제작소 사장인 동생 형제가 있는데, 나는 그들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형제는 유년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할머니 품에서 자랐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형은 목조주택을 짓는 건축회사에서 일하며 도시에서 이십 대를 보냈습니다. 동생은 읍내에 있는 지적공사에서 측량 분야를 담당하였습니다. 내가 이곳에 자리를 잡으려고 하던 즈음일 것입니다. 형은 도시의 직장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동네 목수가 되었습니다. 동생도 직장을 버리고 형의 귀향에 합류하였습니다. 동생은 사업자를 내고 사장이 되었습니다. 황토에 짚을 썰어 넣고 벽돌 틀에 넣어 전통 흙 벽돌을 생산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둘은 틈틈이 농사를 지으며 자신들의 재능을 펼치는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땅에는 아버지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곳에 비닐 하우스를 짓고 그 안에서 벽돌을 찍습니다. 흙내음이라는 상호를 달고 전통을 지키는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아버지 무덤 바로 옆에 바로 그 흙벽돌과 목수의 기술을 녹인 사무실 겸 숙소도 예쁘게 지었습니다. 둘은 첫 일로 귀향한 동네 형님의 집을 지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대소사나 마실을 오가다가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솜씨가 꼼꼼하고 맡은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 성실함을 물씬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마침 손님방인 자자산방을 지으려던 참이었는데, 주저 없이 형제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자산방은 내가 직접 지은 백오산방의 투박함보다 몇 배는 세련된 모습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작년에는 그들의 땀과 기술과 노고가 온전히 녹아 든 정보화마을 교육장도 만들어냈습니다. 마을 공동체를 위한 일이라고 벽돌 값과 품값을 대폭 할인하고 재능과 정신을 기부하던 그들의 훈훈한 마음을 나는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형제는 지금까지 반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여우숲의 건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건물의 흙벽에는 그들이 작년 봄과 여름내 찍어낸 벽돌이 그들의 노동으로 한 켜 한 켜 쌓여 있습니다. 그들의 땀은 숲학교 2층의 숙소 천정에도 녹아 있고, 생태탐방로 구석구석에도 녹아 있습니다.

 

고향으로 귀환한 이 두 사람을 우리 마을의 플래그 피플이라 칭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들이 바로 이 농촌에서 먹고 살고 장가들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면 우리 마을의 미래에는 희망이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바른 정신을 품고 귀환한 두 청년이 즐거움을 추구하며 자기답게 살지 못한다면 누가 농촌으로 귀환할 수 있고, 어떻게 농촌이 재생산되고 지속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은퇴자금을 가진 예비 노인이나, 노동과 농사 없이도 농촌에서 살아갈 수 있는 많은 자본을 가진 사람만이 돌아올 수 있을 텐데그것을 어떻게 농촌의 눈부신 미래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 여우숲에 오시는 어느 날, 운이 좋으면 수줍음 많은 이 플래그쉽 피플 형제와 만나고, 그들이 지은 황톳집에 묵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만 나눌 수 있다면 그들이 운행하는 쾌속 고무보트를 얻어 타는 기쁨도 덤으로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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