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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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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6일 00시 14분 등록

 

아버지의 박봉으로 오남매를 건사하기 어려웠던 탓에 어머니는 하숙도 치시고, 구멍가게도 경영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늘 바쁘셨고 하루하루 할 일도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부모님 품을 떠나지 않았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 종종 집안일을 돕도록 하셨습니다.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일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따금 부엌일도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이를테면 김에 기름을 발라 굽는 일, 마늘을 까거나 파를 다듬는 일, 깨를 볶는 일

 

그리고 종종 야단을 맞았습니다. 어머니가 시키신 대부분의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였습니다. 특히 깨를 볶는데 고루 볶지 못해서 태운다고 가장 많이 야단을 맞은 기억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야단을 치시면서 깨를 볶던 나의 주걱을 얼른 빼앗아 이렇게 하는 것이라며 잠시 휘휘 젓다가 다시 내게 건네주곤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손놀림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별로 힘이 들어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태우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손을 놀리다보면 나의 팔은 금새 뻐근해졌고 뻣뻣하기까지 해서 깨가 프라이팬 밖으로 튀는 경우도 다반사였습니다.

 

어머니는 동작이 굼뜬듯하면서도 하루에 정말 많은 일을 척척 해내셨습니다. 한편 아버지는 장작을 그렇게 패셨습니다. 큰 힘들이지 않고도 나무를 쩍쩍 쪼개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마치 나무가 도끼를 무서워해서 스스로 발라당 쪼개지는 것처럼 늘 시원한 도끼질을 아침마다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도끼를 처음 잡은 것은 초등학교 5학 년 때입니다. 아버지가 형과 힘을 합쳐 아침마다 조금씩 장작을 패놓고 학교에 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형은 매사에 탁월했습니다. 도끼질 또한 그랬습니다. 아버지와 형이 부러워서 학교가 끝난 뒤 홀로 도끼질을 하다가 도끼로 발등을 찍어보는 경험을 한 것이 그때였습니다. 지금 나는 그때 경험 덕분으로 장작을 패서 구들방에 불 지피고 사는 일을 어렵지 않게 여길 수 있습니다.

 

이만큼 나이가 들고서야 비로소 물오른 삶이란 어머니가 프라이팬에 깨를 볶는 것과 다르지 않아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장작을 패던 모습 역시 장작을 패는 일에 물이 오른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듯 모든 물오른 삶의 모습들은 부드럽습니다. 그것은 마치 멋진 춤을 추는 모습과도 같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춤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동작을 잘 익혀서 구분 동작을 하나하나 충실하게 연기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면 그 춤은 아직 아름답다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물 오른 삶은 새가 나는 것과 같은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날개 짓 한번 한번을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몸이 바람을 읽고 바람 위에 몸통을 싣지 못한다면 새는 그렇게 자유롭게 창공을 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 숲을 읽되 숲을 느끼지 못한다면, 숲을 느끼되 숲의 일원이 되지 못한다면 숲과 사는 나의 삶 역시 물오른 삶이 되지는 못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비 참 많이 오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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