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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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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22일 10시 43분 등록

naege.jpg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눈이 유난히 반짝이고, 손이 부드러우며 아기냄새가 나는 사람입니다.
영혼이 맑고 투명하여 저를 좋은 사람으로 비추어 주는 마술 거울 같은 사람입니다.

 

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사랑하기를, 그리고 사랑 받기를 바래왔습니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작은 방안에서 베개에 고개를 묻고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지요. 그래서 고양이를 키우기도 하고,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 옛사랑의 번호를 누르기도 했습니다. 가슴에 서성거리는 모든 이의 발자국을 좇아 억지로 인연을 만들려 하기도 했습니다. 사랑이 오면 외로움이 해갈될 것이라 믿었던 모양입니다.

 

허나 사랑이 시작되니 더욱 외롭습니다. 외로워서 보고 싶고, 보고 싶으니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쓸쓸합니다. 마음은 자꾸 혼자 먼저 달려나가고, 아직 오지 않은 그녀를 기다리며 가슴을 졸이다 심각하게 우울해지곤 합니다. 베개에 고개를 묻는 날은 더 많아지겠지요. 왜 이렇게 연약한지 모르겠습니다. 왜 늘 외로운지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저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모든 인류가 참가하고 있는 끔찍한 여행에 저도 함께 승선한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외로워서 언어와 문자를 만들고, 도시를 건설하고, 기업을 하고, 인터넷으로 연결하고이 복잡하고 거대한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외로움은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집요한 에너지였음을 몰랐습니다.

 

돌아보면 외로울 때 무언가를 했습니다. 외로워서 책을 읽었고 글을 썼으며, 의미 있는 영화를 보았고, 그리운 이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고독이 저를 깊이 생각하게 했고, 앞서 행동하게 했고, 성숙을 향해 한 걸음 내딛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청춘의 외로움은 저를 망가뜨리려는 적의 손아귀가 아닌, 일으켜 세워 사람과 공명하도록 하는 신의 손길이었습니다. 모이고 뭉쳐 떨어진 씨앗들은 서로의 양분을 빼앗아 자라지 못하지만, 외로이 홀로 떨어져 나온 씨앗은 큰 나무가 될 수 있음을 잊었습니다.

 

기꺼이 외로워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외롭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외로움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이의 외로움을 위로하고, 나아가 세상의 외로움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에게로 가야겠습니다.

훗날 당신의 외로움을 힘껏 껴안아줄 수 있도록 말입니다.

 

 

 






IP *.208.19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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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unny
2008.09.22 16:31:41 *.34.208.82
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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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8.09.23 00:53:31 *.178.177.73
외로움을 밖에서 채우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밖에서 채워지는 외로움 탈피는 일시적입니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도 굳이 시간 때우기 용의 누구를 찾지 않고, 승오의 글에서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았습니다. 혼자서도 행복하리라 마음먹으며. 그리운 누구에게 연락을 해 안부를 묻고, 즐겁고 기뻤던 아니면 슬프고 아팠던 과거의 자락을 되새겼습니다. 마음에 드는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외로웠습니다. 그런데, 좀 쓸쓸하긴 했지만 공허하지는 않았습니다. 외로움을 밖에서 채우려고 바둥거리다 금새 풀이 죽던 예전의 허전한 느낌과는 달랐습니다. 나에게로 깊이 침잠하였고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시원했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듯도 했습니다. 알듯 말듯한 생각의 끝을 잡고 거슬러 가려고도 하였습니다. 이제 외로움과는 다른 이름을 붙여줘야 될 것 같습니다.

혼자서도 행복하리라는 다짐은 계속해서 유효합니다. 하지만 이 구절을 대할 때의 느낌은 전과 다릅니다. 혼자 스스로도 행복하다는 것은 꼭 심심하지 않다거나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뜻에 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독을 안고 즐기고 내면에 충실하다는 뜻도 아우를 겁니다. 그러고보면 나는 참으로 스스로는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와 있던 아니던 혼자서 행복하면 그만일 뿐이라는 이야기는 물론 아닙니다. 스스로의 행복과 누구와의 행복 역시 종류가 다릅니다. 그러나 그 둘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서로 채워주고 승화합니다. 정확이 기억은 안나지만, 혼자서도 행복해야 누구와 함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칼릴 지브란의 어느 문구의 내용이 떠오릅니다.

승오의 글을 읽으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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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벗되고픈이
2008.09.23 15:38:38 *.120.92.124
히로나카 헤이스케씨가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 loneness(고독)와 loneliness(외로움)은 뜻이 상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명확히 서로 대립하는 것이다.
- loneliness(외로움)는 loneness(고독)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인간의 감정을 나타낸 말이다.
- loneness(고독)를 잃었기 때문에 loneliness(외로움)가 생긴다.
- 적어도 loneness(고독)를 확고히 갖고 있으면, 좋아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 어떤 삶과 어떻게 접하더라도 loneliness(외로움)를 느끼지 않는다.
- 편견에서 벗어나 친구들이 가진 중요한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배우기 위해서도 자기 자신의 loneness(고독)를 지켜야 한다.

글을 읽고나니 예전에 의미있게 다가왔던 위의 글이 생각나서 적어보았습니다.

사랑이 찾아왔다니 축복할 일입니다.
맘껏 정성을 다하여 후회없이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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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09.25 15:42:45 *.169.188.48
박승오님.

축하드려요.

혹시 그 봄소풍때 풍선에 고양이 보다 나은 친구를 달라고 했던 것은 아닌가 싶군요.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한편으로 또 외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 만나고 사랑해야 하나 봅니다.

"It's silly to look for a well in such a large desert," I said, but even so, we started walking. - Little pr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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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09.26 05:45:15 *.220.176.145
"Where are the people?" asked the little prince finally.
"It's a little lonely in the desert."
"It's also lonely with people," said the snake.

- Little pr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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