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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4일 02시 13분 등록
당신은 어떤 나무이고 싶습니까?

이제 아홉 살 된 딸 녀석과 함께 고추 밭의 잡초를 뽑던 어느 날의 일입니다. 녀석이 제게 물었습니다. 그 대화 한 토막입니다.
“아빠, 속리산의 정2품송 알지? 세조가 행차할 때 스스로 가지를 들어올려 임금행차를 열어주었고 그것으로 벼슬을 받았다는…”
“그럼, 알지. 아빠 고향 근처에 있는 나무인걸.”
“그 정2품송은 정말 멋지게 생겼던데, 우리 밭 뒤에 있는 저 소나무는 왜 저렇게 못생겼어?”

아이들은 질문이 많습니다. 때로는 어른을 능가하고 당황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애비는 대답해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잘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대답이 녀석의 세계관에 박힐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호미질을 하며 잠시 진지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녀석의 질문에 뭐라 답을 해야 할는지…

대답대신 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혜린아. 나무 모양이 같은 것이 있더냐? 같은 고추나무여도 이 나무와 저 나무가 모두 모양이 다르지 않니? 소나무도 그렇게 모양이 다른 것 아닐까? 그런데 아빠는 네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세 그루의 소나무가 생각난다.”
“소나무 세 그루? 어떤 소나무.”
“지난 주 우리가 경복궁에 들러 보았던 일월오봉산도가 있는 근정전 생각나지? 그 근정전의 기둥으로 쓰인 반듯하고 굵직한 소나무 한 그루와 저기 있는 못생긴 소나무 한 그루. 그리고 네가 이야기하는 정2품송… 과연 어떤 나무가 멋진 나무일까?”
“그게 무슨 말이야?”
“음… 그러니까… 정2품송은 멋진 모양을 하고 있으나 친구도 없이 홀로 서있어야 하고, 또 이미 수령이 다했음에도 주사를 맞으며 받침대에 의존해 살아야 하는 운명이잖아. 한편 근정전의 소나무는 곧고 예쁘게 자랐으나 누군가의 도끼에 맞아, 살고 싶은 생명을 다하지 못하고 궁궐의 목재로 잡혀간 운명이잖아. 다른 한편 저기 못생긴 소나무는 누구도 바라봐 주지 않지만, 제 멋대로 핍박 없이 살고 있잖니? 과연 어느 나무가 더 행복한 나무일까?”
“아빠는 어떤 나무가 행복한 나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녀석의 마지막 질문에 대답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그 답을 아직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떠세요? 세 그루 나무 중에 당신은 어떤 나무이고 싶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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