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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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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6일 06시 41분 등록

봄바람 거칠게 불어 참지 못하고 바람에 실려 상하이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제주도 다녀오듯 간단히 다녀왔습니다. 늘 그렇듯 상하이의 날씨는 습하고 어둡고 희미했습니다. 그러나 봄은 한국보다 먼저와 꽃은 화사하고 먼저 폈다 꽃 진 나무에는 연두색 푸른 잎이 싱싱했습니다.

오후에 나는 일천 칠백만 상해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원 중의 하나인 홍커우 공원에 들어섰습니다. 그곳에는 모든 중국인들의 사랑을 모아 만들어진 루쉰의 동상과 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의사가 되려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절망하고 다시 절망을 딛고 민족을 깨우기 위해 작가가 된 중국인들의 영웅 바로 그 루쉰 말입니다. 그의 묘소가 있는 곳은 일제가 상하이사변을 만들어 상해를 점령한 후 전승기념식을 하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1932년 4월 29일 그때 그 자리에 영원히 잊지 못할 한 한국인이 역사에 등장합니다. 그는 당시 25살 꽃다운 청년이었습니다. 강보에 싸인 두 아들을 가진 새파랗게 젊은 아비였습니다.

아침 11시 40분 일본 국가가 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일장기를 향하여 부동자세를 취할 때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 이 청년이 들고 있던 도시락이 단상을 향해 던져졌습니다. 세상을 뒤엎는 폭음과 함께 점령군 사령관 시라카와가 쓰러지고 일본군 수뇌부들이 그 자리에 엎어졌습니다.

청년은 그 자리에서 잡혔고,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순국했습니다. 홍커우 공원에는 그 날의 역사가 돌에 새겨져 루쉰의 동상과 함께 나란히 서 있습니다. 김구선생은 이날 아침 이 청년과 함께 아침밥을 드셨는데, ‘마치 농부가 밭으로 나가가기 전에 밥을 그득 먹는 것과 같았다’며 그 태연자약함을 칭찬했습니다.

숲이 우거진 공원의 심장부에는 ‘매정’(梅亭)이라고 현판이 붙어있는 아름다운 한국식 정자가 서있고 그 안에는 이 청년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 기념관을 관리하는 한 젊은 중국여인이 서투른 한국어로 이 청년을 소개하는 것을 남다른 감동으로 들었습니다.

청년이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를 서툴지만 또렷또렷하게 읽어가는 이국 여인의 어투에서 그 당시 좌절한 중국인들에게 투지와 의기를 안겨준 한 한국 청년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때 ‘중국의 100만 군대가 하지 못한 일을 한국의 한 청년이 해냈다’고 칭송해 마지않았으니까요.

사람들은 농담 삼아 세계의 건설장비들의 1/3이 상하이에 와 있다고 합니다. 21세기에는 ‘얼른 중국어를 배워 상하이로 달려가야한다’ 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칠 만큼 천지개벽을 하듯 변해버린 상하이의 심장에서 영원히 아름다운 25살의 한국인 청년 윤봉길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4월이 시작 하자마자 ‘매헌’이라 불리는 이 청년을 보고 왔습니다. 꽃 같은 청년 얼굴 보고 왔습니다.

조만간 시간을 내어 잠시 상하이에 한 번 다녀오세요. 처음도 좋고 두 번째도 좋고 세 번째도 좋습니다. 세계 건축물들의 갤러리가 되어 버린 듯 21세기 최고의 도시 중 하나로 부상해가는 거대한 상하이 속에서 나는 한국의 흔적과 자취 그리고 가능성을 보고 왔습니다. '충분히 해볼 수 있다’는 힘을 느끼고 돌아 왔습니다.

여행은 우리를 용감하게 합니다. 지혜롭게 하고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하고 대안을 찾아 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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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2007.04.06 09:10:20 *.133.120.2
구본형 선생님, '여행은 우리를 용감하게 한다'는 말씀에 절대 공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여행은 그것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우리를 꿈꾸게 하는 것 같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핑계로 여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지만, 예전에 맛보았던 것을 생각하며 언젠가 저의 일상을 잠시 쉬게 되면 돌아볼 세계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 베이징으로 출장을 가는데요, 상하이에 들리는 여정을 알아봐야겠습니다. 홍커우 공원에 꼭 가보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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