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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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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0일 05시 58분 등록

나이가 들어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쉰 살이 넘어 시작한 아주 작은 개인대학은 이제 세 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신입생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입생은 언제나 열 명 남짓했습니다. 내 홈페이지는 지금 봄꽃과 함께 그들의 향기로 가득합니다.

‘지금의 자신에게 분노하고, 자신과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 그리하여 삶을 한번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은 학벌과 나이, 성별과 직업에 관계없이 응모하라고 말해 두었습니다. 멋모르고 가르침을 위한 ’시작을 시작‘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치중했습니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 나는 ‘무엇’을 가르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들이 자신의 관심사와 내면을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내면의 요구와 관심을 알게 되면 결국 그들은 자신을 위해 가장 이로운 일을 하게 될 것이고, 자기 한 몸만큼 세상을 위해 아름다운 한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조금 흐르면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답해 보려 했습니다. 서로 배우게 할 생각입니다. 이 사람들 끼리 서로 ‘스승과 친구’가 되어 먼 길을 가게 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어제의 나와의 경쟁’, 이것이 가장 훌륭한 배움의 방법이며, 서로 격려하고 마음을 써 줄 수 있는 배경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수련하고 수양하는 파트너이며 서로의 선생인 것입니다.

요즘 들어 ‘누가’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에 막혀 있습니다. 느닷없는 질문으로 생각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게 스승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은 내게 역사학(‘무엇)을 대학의 커리큘럼을 통해 교실에서(어떻게) 가르치셨지요. 그것은 내가 다른 선생님에게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정말 감동시킨 것은 그 분의 삶에 대한 자세와 그 내면의 풍광입니다. 선생이 누구인가는 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대목입니다. ’교육의 기술은 진짜 선생님이 나타날 때 까지만 유효한 것‘입니다.

좋은 선생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 가장 기초적인 바탕은 자신의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여야 합니다.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무엇’을 가르칠 지 압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학생들과 반드시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감정적 절연 상태에서는 지식이 스며들게 할 수 없습니다. 체화되고 운용되게 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서로 좋아하여 찾게 되면 훌륭한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결’이 가장 좋은 교수법입니다. 지식을 가지고 있고 정서적으로 학생과 연결되어 있는 선생은 좋은 선생입니다.

좋은 선생과 훌륭한 선생 사이에는 높은 산이 하나 있습니다. 훌륭한 선생은 학생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일이 지극히 힘든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선생의 삶 자체가 가장 훌륭한 영감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아무 것도 모르고 너무 쉽게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음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스승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갈림길에서 늘 스승에게 길을 물어 내면의 빛을 충당해 왔기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 커다란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고되기도 합니다. 퍼커 파머의 책을 읽다가 그곳에 인용된 릴케의 시를 보았습니다. 우리의 내면, 그 다이나믹한 풍광이 그려집니다.

아, 절연되지 않기를
그 어떤 사소한 간격에 의해서도
별들의 법칙으로부터 절연되지 않기를
내면 - 그것은 무엇인가 ?
그것은 광대무변한 하늘
새들이 힘차게 솟구치고
귀향의 바람(風)으로 출렁이는
저 높고 그윽한 하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아, 절연되지 않기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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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4.20 10:25:29 *.221.217.213
일과 놀이를 완전히 통합시키고, 그 안에서 유유자적 즐기시는 줄 알았는데, '고되다'는 표현에서 멈칫합니다.

'정서적 연결' 없이는 어떤 소통도 어렵다는 것을 알 것같습니다. 연결없이는 어떤 좋은 말도 잔소리요, 마이동풍이지요.

소장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내부에서 이끌어냈다는 느낌입니다. 저도 요즘은 좀 더 긴 시간을 제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에 씁니다. 전에는 그저 헤매는데서 그쳤다면, 요즘은 수정하고 프로그램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전적으로 소장님 덕분입니다. ^^

사량도에서 촌음도 버리지 않고 향유하시는 모습을 뵈며, 혹시 벌써 죽음을 인식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마치 9박10일 휴가나온 이등병처럼, 단 5분도 아까워하며 느끼고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또 한 수 배웠지요.

충분히 '영감'을 주고 계십니다.
원하는대로 살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드리려고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좋은 주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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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2007.04.20 11:03:08 *.192.187.148
고되다는 뜻은 농부의그것처럼 엎드려 일하다 허리를 펴고 굽힌 무릎을 펼때의 통증 같은 것인데, 그게 뻐근한 즐거움인 것은 틀림없어요. 즐거움은 늘 좀 뻐근해요. 즐거움이 자신을 각인 시키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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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4.20 11:43:22 *.167.96.66
항상 바닷가에 살면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생활속에 있었기에 넓고 푸른 바다가 좋은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넘실거리는 파도가, 푸른 쪽빛의 수평선이, 밤이면 들려오는 뱃고동소리가 그렇게도 정겹게 들립니다.
지금의 연구원은 정말 훌륭한 대학의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교수는 자신이며, 자신속에 잠재한 무한한 자기만의 지식의 발견입니다. 그리고 같이가는 친구들입니다. 간혹 저같이 그들을 응원하는 스포더지 같은 이들도 그들을 도우는 한목이겠지요.

저는 그들의 글을 읽으며 순수한 그들의 맘을 읽었고, 자신을 찾으려는 그들의 노력을 보았습니다. 고독하지 않으려고 포호하는 그들의 힘찬 발걸음 소릴 들었습니다.

"童蒙 吉"
< 교육에는 순수함이 제일 큰 덕목이며, 이를 찾겠금 함이 크고 큰 가르침이다. >

- 선생님! 건강하시고 매사에 성취 있으시길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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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2007.04.20 18:01:53 *.128.229.88
봄비 내려 고즈넉한데 산에는 이제야 산 벚꽃 한참입니다. 비와도 벚꽃은 어둡지 않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좀 떨어진 바닷가 어디에서 짚불 꼼장어에 소주한 잔 하면 좋은 날이네요. 긴 글에 짧게 답합니다. 선생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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