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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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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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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4일 07시 30분 등록

며칠전 오후에 오랫동안 몸져누워 있는 친구를 보러 갔습니다. 갑자기 쓰러져 2년 가까이 그렇게 누워 있습니다. 잠시 두 눈을 떠 나를 보는 데 아이 같은 눈입니다. 총명한 사람이 말도 못하고 누워서 터득한 수양인가 여겨졌습니다. 피부도 아이 같이 맑고 부드러워 졌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벌떡 일어나 뚜벅뚜벅 강의장으로 걸어 들어가면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토해낼 지 궁금해 졌습니다. 긴 침묵의 시간동안 이 재주 많은 학자가 와선을 통해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알고 싶었습니다.

그가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아주 말을 많이 했습니다. 아프기 전에는 술집에서 그가 재미있는 말을 많이 하고 나는 듣는 편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좋은 말로 가득 보답을 해야 하나 봅니다.

고대 병원에서 북악 스카이웨이를 타고 집으로 가다 성북동에 살고 있는 젊은 부부가 보고 싶어 졌습니다. 그들은 내 연구원일 때 만나 서로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습니다. 길상사 다원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오월이 시작하는 저녁나절 그들을 기다리며 나는 길상사 ‘침묵의 방’에 앉아 있었습니다. 창호지 창밖으로 하루가 지고 있었습니다. 방은 천천히 사라지는 빛으로 부드러워 지고 어둠이 어루만지듯이 다가옵니다. 방안에 남은 향내는 아직 사라지지 않아 은은합니다. 빈 공간이 주는 조촐함이 정겹습니다. ‘침묵의 방’, 그것은 아마 나 같은 속인에게는 자신과의 대화의 방, 내 내면을 비추는 거울 방, 아니면 내 아픈 친구의 침대 같은 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처님 오시기 전이라 대웅전 앞에는 등이 질서 정연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나무에도 연등이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처럼 달려 있습니다. 석가탄신일 즈음하여 길상사에 가 연등을 보면 기분이 좋아 집니다.

마당 한 쪽에 서있는 성모 마리아처럼 조각된 부처님을 한 번 보면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 집니다. 도그마와 배타성이 녹아내리며 피 묻은 갑옷을 벗고 칼을 놓고 문득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는 전사처럼 잠시 마음의 평안과 삶의 그리움으로 가득해 집니다.

젊은 부부와 저녁을 먹었습니다. 젊은 엄마가 가슴을 풀어 아이에게 젖을 먹입니다. 젖을 먹고 난 아이가 날 보고 웃는데 그 놈이 부처 같았습니다. 얼마나 예쁘고 웅장한지 모릅니다. 그 작은 아이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경이로운 것들이 쑥쑥 커나가고 있을까요.

어두워져 다시 북악 스카이웨이를 타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는 데 봄 길이 예쁘기 그지 없습니다. 구불구불 아름다운 길을 따라 내리며 참 좋은 밤이라 느꼈습니다. 이 좋은 밤, 나무와 꽃들 사이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가득 안고 이 길을 가고 있구나. 이것이 인생이구나 하는 부드러운 감정이 밀려 들어 이윽고 편안함으로 가슴이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집에 와 책을 보았습니다. 졸음이 몰려 들어 손에 든 책이 떨어 질 때 까지 보았습니다. 아직 책을 보며 밤을 새울 수 있어 좋습니다. 밤새워 볼 책이 있어 얼마나 좋은 지 모릅니다. 오늘은 참 좋은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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