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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0일 18시 23분 등록

와락게스트하우스.jpg


아무래도 이번엔 쉬이 물러나지 않을 모양이다. 목욕, 청소, 요가, 산책, 글쓰기, 책읽기 등등 이 반갑지 않은 손님을 달래기 위해 마련해 두었던 갖가지 비법들을 다 써 봐도 그때뿐이다. 이제 정말 지친다.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이제 저 할 만큼 했잖아요. 이제 그만 저를 놓아주셔도 되잖아요. 설마 저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거예요? 저 이젠 이렇게는 못살겠어요. 조마조마해서 살 수가 없어요. 이렇게 불쑥 나타나 일상을 쑥대밭을 만들어버리시면 제가 뭘 할 수가 있겠어요. 제발, 저를 좀 살려주세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제발 속 시원히 말해주세요. 설마 이렇게 시름시름 제 피를 말려 죽이는 게 목적은 아니시잖아요. 저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제 눈 똑바로 봐요. 똑바로!!”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너야말로 이번엔 절대 도망쳐선 안 돼. 나도 이번엔 작정을 하고 왔으니까. 할 만큼 다 했다구 했니? 네가 도대체 뭘 했는데? 그래, 알아. 너는 나를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 없었지. 그래서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어.

 

그리고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하기 시작했지. 나를 치유한다는 명목으로. 준비도 되지 않은 나를 발가벗겨서 이리 들추고 저리 들추고 하면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처방들을 들이댔어. 당황한 내게 너는 마치 큰 선심이라도 쓰는 양 이렇게 해주는 것도 딱 10년만이라고 생색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들을 쏟아내곤 했어. 그래도 나는 네가 고마웠어. 그렇게라도 돌아봐주고 살펴주는 네가.”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제부터 틈만 나면 전화다. 내 상태를 살피시려는 눈치다. 걱정하실까봐 애써 쾌활한 척하며 전화를 받는다. 엄마는 포기하실 줄을 모른다. 아침 7시 반에 또 엄마다.

 

책으로 가득 찬 골방이었다. 사무실에서 입던 옷 그대로 이불도 깔지 않고 누운 눈동자는 멍하니 초점이 없다. 흐려진 시야로 빨강과 검정이 기하학적 무늬를 이루는 엄마의 쉬폰 자켓의 실루엣이 들어온다. 모로 돌아 눕자 마주 보이는 책장 한 칸에 엄마의 옷가지들이 가지런히 접혀있다.

 

아이들이 할머니에게서 난다고 한 냄새가 이런 건가. 쓸고 닦은 흔적이 가득한 방 안에 오줌 지린내가 은밀히 스며 있다. 마른 침을 넘길 때마다 고막이 얼얼하다. 엄마와 이모가 들어오시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는다. 현관에 벗어놓은 신발을 보셨는지 엄마는 방문을 살짝 열어 보다가 다시 닫고 나가신다. 연이어 문이 열렸다 닫힌다.

 

언니, 미옥이가 왜 저런다요?”

 

글씨 말이다. 뭐시 맘 먹은 대로 잘 안 되는지 집에만 오면 정신이 다 빠져서 빈 푸대자루처럼 누워만 있으니 내가 복장이 터진 당께. 오늘은 또 뭔 일이 있어 대낮부터 집에 와 있는지. 저것이 저러고 있으니 내 몸이 아무리 아파도 애들 못 보겠단 소리를 어찌 한다냐?”

 

엄마와 이모의 이야기는 계속되지만 내가 들은 건 여기까지다. 잠도 아니고 깸도 아닌 어딘가로 빨려들 듯 미끄러져 내려간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아무도 없는 사무실. 컴퓨터 화면위에서 껌뻑대는 커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여인. 얼른 해놓고 집에 가야하는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엔 혹시나 했는데. 복직해서 받은 두 번째 승진명령지에도 내 이름은 없다. 인사과에서 장기휴직자 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돌 때부터였을까. 아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나 명백한 4년의 공백. 하루하루 따라가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승진이라니 언감생심. 마음을 비우자고 그리 다짐을 했건만 막상 닥치고 보니 이 어지러운 마음은 또 뭔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그 때 휴직을 하지 말고 어떻게든 버텨야 했던 걸까? 아니야. 버텨보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기억 안나니? 내겐 피할 수 없는 시간이었잖아. 그러니까 제발 힘 좀 빼고 상황을 편하게 받아들여 보면 안 되겠니? 월급 통장에 찍히는 숫자만 생각하자. 다 알면서 그거 하나 보고 다시 들어온 거잖아. 그거라도 보장되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너무나 잘 알잖아. 그까짓 거 자존심이 뭐 대수라고. 못하면 못한다고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왜 자꾸만 있는 척, 할 수 있는 척을 해서 신세를 볶아. 바보같이. 결국 한시가 가까워서야 겨우 일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다.

 

깜깜한 복도를 따라 걸을 때마다 센서등이 켜졌다 꺼진다. 몽유병자처럼 주차장에 덩그러니 세워진 차를 찾아 들어간다. 긴장을 놓지 못하는 신경이 파르르 위태롭다. 두 세 시간 눈 붙이고 다시 돌아와야 할 사무실. 깨어있는 아이들 얼굴 본 게 언제인지. 아픈 몸으로 아이 둘 돌보시느라 힘든 엄마랑 이야기를 나눈 기억도 가물가물. 나날이 몸과 맘은 너덜너덜 만신창이.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버티고 있는 걸까? 아니 나는 언제까지 이 생활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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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간소식] 『오티움』 문요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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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티움ótĭum'은 라틴어로 '내 영혼을 기쁘게 하는 능동적 휴식'을 말합니다저자는 몇년 간운동, , 공예, 사진, 글쓰기, 그림, 가드닝, 악기연주, 명상, 봉사 등 능동적 여가활동을 즐기는 약 40 여명의 사람들을 심층인터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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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력自力의 기쁨' , 오티움으로 사는 건강한 이들은 자기세계로 초대합니다

http://www.bhgoo.com/2011/86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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