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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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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7일 18시 06분 등록

욕지 이야기(2)


욕지도 선창가 고깃집(2021년, 지금은 자장면 집으로 바뀌어 있었다)에서 삼겹살을 먹으며 봤던 TV에 김영삼, 박명수, IMF가 나왔던 것이다. 손님은 단 둘이었고, TV 소리를 빼면 적막했다. 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TV를 보고 있었지만 우리 쪽을 힐끔 쳐다보는 소리가 휙휙 들릴 지경이었다. 고깃집을 나서는 길에 마지막 배 시간을 물었고 아주머니는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막배 끊긴지 오래지. 날씨가 이래가 내일도 뜨것나.‘ 

 

(지난 주에 이어)


낭패다. 입술이 순간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온갖 얘기를 나누며 허리를 꺾고 웃었는데 갑자기 서로를 마주보질 못한다. 내 외투에 찔러 넣었던 그녀의 왼손이 내 오른손을 슬며시 놓으며 빠져 나간다. 욕지도 동항리 골목길 안쪽 어딘가를 누비며 어렵사리 헤매며 찾은 삼성장 여관, 고깃집 아주머니가 너희 같은 일들 여럿 겪었다는 듯 일러준 여관을 골목 끄트머리에서 찾았지만, 둘은 선뜻 들어서지 못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나는 방 하나를 받고 열쇠를 보여주며 여전히 여관 밖에 서 있는 여자친구에게 다가갔다. 몸은 추워서 떨리는지 내 눈 앞, 젊은 여성으로 인해 떨리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날 밤, 장판이 데인 자국을 경계로 이쪽과 저쪽에 누웠다. 한 겨울이었지만, 뜨거운 여관 바닥만큼이나 내 심장은 삽시간에 끓었고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릴까 두려웠다. 잘 수 없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동물과 인간을 왔다갔다 하는 나를 내가 붙들어야만 했다. 손도 잡지 못한 채 날이 밝았다.

 

오래도록, 이 역사적인 밤은 우리 가족에게 회자될 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지난 밤 서로가 목구멍으로 침 삼키던 소리마저 들릴세라 삼엄했던 시간을 깡그리 잊고 걷는다. 자부랑깨(자부포의 욕지도 현지 말) 길을 걷고 신선한 욕지도의 공기를 흠뻑 마시며 좋다 좋다를 연발하면서 바닷가 몰려든 고기를 봤다가 양 팔을 펼쳤다가 뛰었다가 걸었다가, 나를 앞서 걷는 그때 그 시절 저 명랑하고 발랄한 여인, 아, 저 여인이 오늘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지 않았다며 다그친다.

 

빛이 사라진 직후, 환장하는 색의 향연

 

욕지도를 한 번 알고 나면 잊지 못한다. 아마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을 테지만, 한 번 가본 사람은 없을 테다. 그 ‘사건’ 이후 욕지도의 매력에 빠져, 또는 평생의 배우자를 욕지 섬 전체가 중매해 준 인연으로 매년 욕지도를 찾았다. 그날, 마지막 배를 물끄러미 떠나보낸 그녀와 백년가약을 맺은 후 이듬해 여름, 돌을 막 넘긴 갓 난 아이를 안고 통영항에서 배에 올랐고, 어떤 해는 여름 휴가로 욕지도에 처박혀 7일을 머물며 섬의 구석구석 다니기도 했다. 회사에서 팀장이 되고 난 뒤 모든 팀원을 이끌고 욕지도에 가 워크샵을 핑계로 해녀촌 식당의 소라 물회를 박을 냈고, 서울 친구들이 남해 바다를 궁금해 할 땐 여지없이 불러내려 욕지도 출렁다리 위에 세워 놓았다. 그들의 입에서는 와, 와, 와. 입을 다물지 못하는 감탄사의 연발이 작열할 때, 욕지도는 이미 내 고향이었다. 내 고향 부산 영도와 면적도 비슷하고 특유의 갯내도 유사해 나는 욕지도를 어느 새 고향처럼 여기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지난 날 운명의 고깃집은 자장면 집으로 변했고, 역사적인 ‘삼성장’은 빛 바랜 간판조차 남아 있지 않은 대신 수많은 펜션들이 들어섰고, 그 아침 신선했던 공기와 함께 자부랑깨 마을을 걸었던 그녀는 어느새 웃으면 눈가에 비닐랩처럼 주름 가지만, 욕지 일주도로로 기우는 황혼은 여전히 그날을 기억하듯 환장하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세상의 빛이 막 사라진 직후 노을, 붉게 그리고 노랗게 바스라지는 빛이 아름다운 건 살아있는 것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고 또 사람은 죽는다. 이보다 명징한 사실은 없다. 당연하고 확실한 세계에서 우리는 고민할 필요가 없어 보이지만 그 확실함 속에 숨은 아주 오래된 우리 자신은 언젠가 사라진다는 사실로 인해 황홀한 것이다. 살아있다는 사실, 욕지도가 온 몸으로 보여준 그 빛으로 인해 보잘것없는 삶과 죽음에도 두려움 없는 당당함으로 살 수 있다고 나는 믿게 된다. 불멸의 이름을 남기려는 명예욕도 삶의 고통을 잊으려는 도피도, 쉽게 살면 될 것을 어려운 사유를 해가며 유식을 티내려는 과시욕도 필요 없는 것이다. 욕지欲知, 그것은 서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태어난 자로서 지녀야 할 삶을 대하는 자세다. 앎에 대한 욕망은 먹고 싸는 생명체로서의 확실함 너머에 조건을 의미로 만들려는 인간의 발버둥이다. 몸부림은 금방 사라지고 또 다른 기억으로 대체되겠지만 오래 전 자신을 자신이게 한 그 기억들, 이를 테면 싱그러웠던 그 날 그때 아내의 해맑은 웃음, 욕지도 찬란한 석양, 삼덕항 부서지는 물보라, 바다를 치닿는 맹렬한 배의 선수, 배 선미에 홀로 서서 밥벌이를 생각하다 흘렸던 눈물. 잊지 마라, 그때 우리는 비로소 존재한다는 동사動詞를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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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0 05:57:38 *.134.131.154

함께 아름답고 귀한 생각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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