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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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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19일 09시 21분 등록

[내 삶의 단어장


2호선, 그 가득하고도 텅빈

 

서울을 오가던 때, 오래 만나지 못했던 이들을 마주치는 상상을 했다. 터미널에 도착해 길을 건너려 할 때마다 횡단보도를 튕겨나가는 무수한 사람들에 질려 있으면서도 지하철에 안착하고 나면 곧 그랬다. 서울의 거리는 요일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넘쳐났다. 여백의 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아는 얼굴 하나 마주친 일 없는 한 해였다.

굳이 누군가를 마주친다면 지극히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거나 너무나 지랄맞은 운명이거나, 생각했다. 떠남과 되돌아옴 사이에 10여 년이라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 더 그래 보였다. 누군가를 마주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었는지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절절한 소망이었는지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다. 그저, 무수한 인파 속의 나의 익명을 그렇게 달래본 것일지도 모른다.

문이 열렸습니다.

문이 닫힙니다.

누군가를 마주치는 일에 대한 생각을 멈춘 것은 누군가를 마주치고나서였다. 봄이 끝나갈 무렵의 붐비는 2호선에서였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 정거장에는 햇빛이 쏟아진다. “행복 찾는 나그네의 눈동자는 불타올라야 하지만 지치고 답답한 몸은 그럴 기미를 상실해 버렸다. 전깃불은 쏟아지는 게 아니니까 내가 불타오를 동력이 없는 게 확실하다. 지상을 잠시 들려 스친 햇빛에 의지하기엔 지하철은 명사에 맞도록 철저했다. 궤도를 이탈하는 것보다 이름을 벗어나는 것이 더 큰일이라는 듯 지상보다 지하를 비추는 빛에 더 익숙했다.

가끔 우주 정거장에 도착하기를 바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요구라는 걸 아는 내 입은 조용했고 지하철은 고유 명사를 획득하기를 거부했다. 수식어의 도움을 받는 것이 고유 명사를 획득하는 방법으로 최상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차피 입 다물기로 했다면 방법 따윈 잊어 먹어야 하는 것이다. 수식어가 붙는 것은 위험부담을 여러 겹 껴안는 것이라서 그저 명사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 편안한 삶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보통명사로 사는 것이 익명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등식만 견뎌낼 수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탈선한’, ‘고장난’, ‘사고난이라는 수식어를 두른 지하철에 탑승하고 있는, 있던 승객, 이란 단어의 해당자가 되기를 굳이 바란다면 모를까 온갖 수식어를 치렁치렁 달고픈 유혹이야 이겨냄이 마땅했다.

정차할 때마다 무수한 인파가 밀려들어왔다. 땅덩이를 빼앗긴 사람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자리를 이동해야 했다. 그럴수록 마주하게 되는 시커먼 머리통들은 하나같이 낯설고 무서웠다. 발을 밟고도 밀쳐놓고도 말도 표정도 없는 머리통 하나, , . 은하철도 999는 늘 비어 있었다. 그 휑한 열차 칸엔 메텔과 철이만이 차장의 정중한 안내를 받으며 우주를 향해 가고 있었다. 우주 정거장을 향하는 열차는 아니더라도 철이와 메텔이 타던 열차칸의 정적이 간절해지는 순간이었다. 역시 서울인가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그 시점에 낯익은 얼굴 하나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표정있는 머리통으로 돌변해 그에게 다가갔다. 발걸음을 움직이던 나를 위해 길을 비켜주는 이들도 없었다. 나의 과한 반가움의 몸짓은 밀려들어오는 무심한 인파에 묻혀 버렸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다행이었다. 수많은 머리통 사이로 그의 얼굴이 조각조각 드러날 때에야 그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난 어떻게 그를 부른 걸까. 문득,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기에 그가 나를 돌아보지 않았으리라는 타당한 결론을 맺었다. 그가 내게로 와 꽃이 될 수 없던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었다. 그저 난, 손만 약간 들어 올린 채 ? 저기라 외쳤던 거였다. 내 외침을 외면한 그로 인안 무안함과 누군가와의 마주침에 의도치 않게 터진 과한 행동에 당혹스러웠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을 위해 행동의 진위와 평정을 찾으려 해봤다.

흔들리며 조각으로 드러난 그의 얼굴을 하나로 모으며 역시 그의 얼굴이 낯익다는 확신이 들자 그의 이름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이름을 모르고서야 그를 다시 아는 체 할 수는 없었다. 그와 나와의 연결고리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던 까닭에 정차할 때마다 멀어지도록 그와 나의 거리를 만들어주는 인파에 감사했다. 이들이 나를 막아주지 않았다면 나의 외마디에서 이어졌을 그와 나의 대화가 얼마나 어색하게 흘러갔을까.

누구신가요, 저를 아세요?

, 아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꾸벅).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아는 사람으로 착각한 상황에서의 모범대화를 그리며 목적지를 맞아 내리는 그를 보았다. 내내 품고 있던 시선으로 그를 뒤따른 그제야 그의 얼굴이 낯익은 까닭을 알았다. 그가 아니라 그녀라고 해야 했다. 내 쪽으로 비켜가는 그의 모습을 본 후에야 긴 머리 끝자락을 살짝 묶은 머리끈이 보일 때에야 그는 나와 안면이 없는 그녀로 사라져갔다.

그녀를 뒤따라가진 않았다.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누군가의 얼굴이 겹쳐진다고 해서, 마냥 뒤따라 확인할 만큼 난 삶에 열정적이지 않았다. 그녀가 사라진 뒤로 다시 내 주위를 도는 공허의 무거움에 짓눌려 있느라 내려야 할 곳에 발을 내리지 못할 만큼 목적지에 대한 강박도 없었다. 아무도 내리지 않는 역에서 의무인 양 내렸다. 하수구를 통과하지 못한 찌꺼기처럼 남아 지하를 떠돌았다. 지하철이 정차하고 다시 떠나는 속에서 나는 한참을 서성거렸다.

어떤 식으로든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사람은 있다. 관계맺음 없이 살아올 수는 없었다. 어느 순간, 거기까지인 관계가 있었다. 단절의 틀을 내리면 관계는 이어질 수 있다. 자연스럽게 그 틀을 내리도록 하는데 우연과 낯섦이 버무린 만남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선택이 힘들수록 선택의 순간을 유예하고픈 욕구가 강해진다. 타인에게 수없는 질문을 해대는 것도 그 욕구의 발현일 것이다.

봄의 끝자락 붐비는 곳에서 바쁜 수많은 사람들 틈 속에서 내가 느낀 공허는 무심함과 익명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안다고 생각한 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함, 더 나아가 관계를 단절하고픈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음에서 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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