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해야만 먹는 분식집이 있다고?

마음없는 복지가보다 마음있는 장사꾼이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전 진짜 그런 곳을 만났습니다. 떡볶이 파는 아주 평범한 분식집인데, 제가 갔던 모든 맛집 가운데서 최고로 꼽고 싶습니다. 그 이유를 알려드릴게요.

지난 화요일 우연히 길음역 근처를 지나는데 같이 동행한 언니가 근처에 재밌는 가게가 있다며 가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떡볶이를 파는 분식집인데 튀김도 주고 빙수도 주고 뭘 자꾸 준다고 했습니다. 아주 유명해서 예약을 하지 않으면 못 간다는군요. 에이 뭔 떡볶이를 예약까지 해서 먹어, 저는 시큰둥 했지만, 근처까지 왔으니 한번 가보자고 해서 결국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곳은 ‘빙수야’라는 분식집이었습니다.    

‘빙수야’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40분, 막 오픈했는지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장님과 젊은 직원 한 명만 있었죠. 겉으로 보기엔 탁자가 4개뿐인 작고 평범한 분식집이었습니다. 이곳은 철저히 예약제로 운영되어 예약한 사람만 먹을 수 있습니다. 대신 포장은 가능합니다. 저희는 예약은 안했지만, 자리가 비어서 혹시나 지금 먹을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역시 안된다네요. 2시부터 예약손님이 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시까진 아직 20분이 남았기에, 그때까지만 먹고 가겠다고 협상을 시도했습니다. 사장님은 20분안에 먹는 건 불가능하다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하지만 우린 20분이면 다 먹는다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빙수 한그릇, 떡볶이 한 그릇을 먹는데 20분이면 충분하지! 하지만 사장님이 택도 없다는 표정으로 두 팔을 허공에 마구 휘저으며 절대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그러면 그때까지만 먹고가요."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얏호!

그냥 알아서 드립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여길 예약없이 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요. 알고보니 거의 로또 맞는 수준이더군요. 전화예약을 받지 않아 방문예약해야 합니다. 전날 밤 10시 이후에 예약노트가 오픈되는데, 직접 와서 본인의 이름과 연락처를 노트에 적어야 합니다. 게다가 하루 50팀만 받기 때문에 늦게 오면 국물도 없습니다. 덕분에 예약경쟁이 아주 치열하다고 합니다. 19시간을 기다린 사람도 있다고요.

아무튼 감사히 들어갔습니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떡볶이와 동글이. 동글이는 '모둠튀김'을 말하는데 둥근 그릇에 나와 동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앉으면 묻지도 않고 알아서 음식이 나옵니다. ‘오마카세’처럼 주인장이 알아서 내오는 시스템입니다. 앉자마다 '기다리기 지루하다'며 따끈한 어묵우동 두 그릇이 나왔습니다. 곧이어 시뻘건 떡볶이가 국그릇 한 가득 나왔고, 달달한 꽃빵도 나왔습니다. 떡볶이가 매우니 같이 먹으로가 딸기빙수도 내어 줍니다. 그런데 빙수가 그릇이 아니라 무려 생맥주 2000cc 피쳐에 나옵니다. 원래 빙수집이었는데, 딸기빙수 맛이 제대로였습니다. 직접 절여 만든 홈메이드 딸기청을 듬뿍 넣고, 진한 바닐라아이스크림 얹어서 맛있었습니다. 테이블가득 음식이 깔렸는데, 이 중에서 돈내고 먹는 건 3천원짜리 떡볶이 밖에 없습니다. 모두 서비스입니다.

양도 많긴 했지만, 먹으면서 마음도 함께 불러왔습니다. 아직 끝난게 아닙니다. 하이라이트는 '동글이'입니다. 곧이어 쟁반 한 가득 나온  ‘동글이’에 모두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웨지감자, 떡갈비, 김말이, 감자스틱, 오뎅, 핫도그 등 갖가지 튀김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렸습니다. 먹을 엄두조차 감히 나지 않을 정도의 양입니다. 살다살다 이리 많이 주는 튀김은 처음봤습니다. 양이 하도 푸짐해서 아무리 먹어도  먹은 티도 안납니다. 그나마 간신히 우동과 빙수를 축낼 수 있었는데... 방심한 사이 사장님이 오시더니 빙수에 초코볼을 우르르 쏟아놓고 가셨습니다.  방심하면 큰일납니다. 사장님이 와서 우동이며, 빙수며, 떡볶이가 자꾸 리필해줍니다. 살면서 이런 곳은 처음이었습니다. 그간 배운 자본주의 공식이 깡그리 무시되는 곳이었습니다.

객단가고 나발이고, 사장이 만족할때까지 줍니다

매장에서 쓰는 용어 중에 ‘객단가’가 있습니다. 고객이 1회 구매시 결제하는 평균금액으로, 매출을 높이기 위해 객단가를 높이려고 노력합니다. 더 비싸게 받거나 더 많이 파는 식이죠. 그런데 이곳은 그런 객단가 공식이 깡그리 무시됩니다. 몇 명이 오든 객단가가 테이블당 12,000원로 정해져 있는데다, 사장님 자체가 객단가 따위 무시하고 주고싶은대로 다 줍니다. 시키지 않은 음식도 자꾸 나오고, 무엇이든 무한리필이 됩니다. 왜 자꾸 주시냐고 했더니 사장님 왈, “고객이 아니라 '사장'이 만족할때까지 드립니다 ㅎㅎㅎ.”

어떤 손님은 일부러 망하려고 이렇게 하시느냐고 묻자, 사장님은 “우리가 많이 주는 게 아니라 다른 곳이 적게 주는 것”이란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면 장사가 아니라 봉사하는 수준입니다. 이거 팔수록 손해나는게 아닐까 손님이 걱정할 정도인데, 그래서인지 빙수야를 검색하면 '빙수야적자'가 연관검색어로 뜹니다. 간혹 돈 많은 재벌이 심심해서 차린 분식집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돈이 아니라 손님이 행복한거 보려고 장사하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2호점, 3호점까지 나온거 보면 운영은 되는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셋이 배터지게 먹고 12,000원 나왔습니다. 이것도 작년까지만 해도 10,000원이었는데 그나마 오른 겁니다. (당시 ‘만원 내고 사육당한다는 분식집’으로 유명했죠)  갈 때 먹으라고 따로 ‘추억의 불량식품’을 군것질거리로 한가득 챙겨주십니다. 이 정도면 돈내는게 미안한 게 아니라 돈 내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입니다. 어떤 손님은 너무 미안해서 빙수값, 우동값까지 다 내고 뭐라 하기전에 뛰쳐나온다고 합니다. 따로 음료수를 드리고 오는 손님들도 있었고요. 어떤 손님이 “잘 먹었습니다. 많이 파세요” 하고 나왔더니, 사장님은, “아니야 그런말 하지마. 지금도 힘들어 죽겠어”라고 하셨답니다. 기본적으로 재밌는 분입니다. 이곳의 후기를 보면 사장님을 두고, 성인군자를 봤다 오늘 천사를 봤다 등등의 말을 하는데, 떡볶이 팔면서 이런 평을 받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냥 떡볶이나 먹자해서 갔는데 배터지게 먹고,  마음까지 부자가 돼서 나왔습니다. 남은 튀김과 떡볶이를 싸왔는데 양이 너무 많이 일주일은 먹을 것 같습니다. 음식을 먹고 이렇게까지 감동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빙수야', 이곳을 서울 한달살이의 맛집 원픽으로 꼽습니다.  특히마음이 허하거나 정이 고픈 분들에게 강추입니다. 단 미리 예약해야 한다는 거. 예약하려면 직접 전날에 가서 적어야 합니다. 처음 가면 그 양에 기가 질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