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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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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9일 19시 25분 등록

캐나다 록키산맥 캐스캐이드 등반기

 

그러니까 스무 세 살 적, 오래 전 얘기다. 그날 아침에 유난히 산새가 써라운드로 울어댔다. 유월의 Banff(캐나다 서부 British Columbia 주 산악도시)는 아직 설경을 품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눈을 품은 캐스캐이드(Mt. Cascade, 3,000m, Canada British Columbia Banff시에 위치) 아득하게 보인다. 일어나자 마자 객기가 발동하여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물었다. ‘이 도시, 서부 캐나다 rockies에서 가장 높은 산이 어딘가?’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은 작은 동양인을 가소로운 듯 한번 힐끗 쳐다보곤 나를 창가로 데려간다. ‘저기, 보이니? 바로 저기란다. 높아, 아주 높지. 너 같은 사람은 감히 범접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우쭐대며 꼭 자신의 인 양 손가락질을 해댄다. 어쩌겠는가, 순한 양처럼 고개만 천천히 끄덕였다. 아름다운 도시에서 세상 모르게 쉬려고 했었는데 너의 대사가 내 승부욕을 건드렸어,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내 한번 올라주마.’

 

저 산을 오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내가 물었다. 게스트 하우스 주인은 조금은 귀찮은 듯 진짜 가려는 건 아니지? 붉은 곰에 먹힐 수도 있어. 나도 한번도 오르지 못한 곳이야.’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자꾸 딴소리만 해댄다. 그래서 어디로 가면 산의 초입으로 붙을 수 있냐고! 짜샤! 됐고, 곧 바로 짐을 챙겨 인근 관광안내소로 향했다.

 

“Cascade를 오르려 한다. 얼마나 걸리며, 지형이 어떤지 알고 싶다. 혹시 구비된 지도가 있는가?”

안내소 안내원은 내가 묻는 말에 친절하게 답은 하지만 눈초리는 역시 곱지 않다. 입산 신청을 굳이 받아야 한단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괜한 말을 물어 오기가 생겼고 오기를 실천에 옮기자니 걸리는 게 많았다. ‘산을 오르는데 뭐 이리 제약이 많은가?’ 날려 써서 던지 듯 신청서를 접수하니 우리로 치자면 국립공원관리공단 레인저 사무소에 들어가 산행경력, 준비된 장비, 비상간식 등 등산에 필요한 것들을 얼마나 구비하고 있는지 심문하듯 체크했고 쓰레기 등의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주면서 너 혼자냐? 갈 수 있겠냐?’를 묻는다. , . 돈 워리. 안내소를 나왔다. 그러나, 안내소를 나와서 갑자기 막막했다. 저 친구들이 낯선 이방인에게 괜한 걱정을 하진 않을 텐데, 뭔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저 밑에서 올라왔다. 동네 뒷산이 아님에는 확실했다. 산 꼭대기까지는 3천미터였던 것이다.

 

산의 초입까지는 멀었고 아침에 일어나 느꼈던 아득함이 이제는 실제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두려움을 억누르고 큰 배낭을 매고 밝게 웃어 보이며 길가에서 엄지 손가락을 들고 내리기를 여러 번, 히치 하이킹으로 차 한대를 얻어 탄다. 그 차 주인과 나눈 대화는 기억나진 않지만 행운을 빌어 주었던 유일한 Canadian이었던 것 같다. 드디어 도착한 초입에서 배낭을 짊어 지었는데 어디선가 횅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람은 없었고 이제 더는 움직이지 않는 스키장 녹슨 슬로프 옆으로 난 길을 홀로 들어선다. 왠지 모를 을씨년스러운 울창한 숲 속을 사방을 보아가며 조심스레 걷기 시작했다.

 

한번도 오르지 못한 낯선 이국의 큰 산을 23살 청년의 객기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었던지 쓸쓸함, 외로움, 두려움이 섞인 묘한 기분을 없애보려 애써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댄다. 미친 짓이었다. 곰을 부르는 짓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다행히 오르는 길에 곰이 나타나진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려올 때 보았네. 하산 길 바로 옆, 땅을 파는데 집중하고 있는 큰 불곰을 보았네. 그 곰을 나를 째려봤고 저녁꺼리로 괜찮은지 가늠했겠지. 그 앞에서 뛰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땅 파다 가끔씩 땅과 나를 오가며 째려보는 그 녀석 때문에 나는 오줌 쌀 뻔 했다네.)

 

오르는 길은 길고 가팔랐고 지루했다. 한 참을 올랐을까 Cascade 북사면의 거벽과 히말라야 고산의 플라토를 연상케 하는 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아무도 없는 절대 침묵의 공간이었다. 오후 햇살이 느긋하게 내려앉은 그 아늑한 초원을 가로지르며 생각했다. ‘이 원시의 땅을 내가 감히 걸어가도 되는 걸까.’ 알 수 없는 우주적 연기(緣起)가 나를 인도하여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만 아무도 없는 이 거대한 짐승의 등껍질 위를 걷고 있는 미물은 마냥 엎드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한참을 가로지른 초원 끝에는 큰 거벽이 버티고 있었다. 언젠가 산악 잡지에서 보았던 자누 북벽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자누 북벽, 그렇다. 내 꿈의 벽이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알피니스트들이 탐내는 목표이며 등로주의 마지막 과제로 불리던 바로 그 자누 북벽 말이다. 우리 잠시 옆으로 세어 보자. 자누 북벽은 난공불락의 미답봉 이었다. 1990년 이후 히말라야 거벽 등반에서 독보적인 역할을 담당하던 러시아 산악인들은 송골매가 목표에 들어온 쥐를 노리듯 그 벽을 벼른다. 알렉산더 오딘초프라는 21세기 라인홀트 메스너라는 걸출한 사내가 온 몸을 사위며 던진 과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며 만들어 내는 등로주의의 그 과제를 최초로 접근하며 결국, 2004.05.24 자누 북벽을 직등한다.

 

당시로 가보자. 알렉산더 루츠킨과 드리트리 피블레코는 7,400m 허공의 바다 위의 배처럼 구름 속에 솟아 있다. 영하 40도 이하의 추위 속에서 이미 한 대원은 피로가 가중되어 망막이 터져 나갔고 다른 대원들도 낙석을 맞아 다리와 얼굴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 하산했다. 심지어 한 대원은 루프를 등반하다 죽임 직전의 엄청난 추락으로 갈비뼈가 부러졌고 또 한 대원은 폐수종까지 발병해 실패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오딘초프는 이것은 정상이 아니라 전쟁이라 생각하고 죽는 힘을 다해 대원들을 지휘하며 아직 총을 들 수 있는 사람, , 쥬마(로프에 걸어 몸을 당길 수 있는 등산 장비)를 끌어 당길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위로 보냈다. 이 등반은 러시아 산악인들이 15년간 히말라야에서 경험해온 마지막 결실과도 같은 등반이었다. 결국 이들은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자누에 서고 만다. 그 해 바로 이 자누 등반은 당당히 황금피켈상을 수여 받는다. (산악인 박정헌의 글에서 관련 내용과 자료를 인용함)

 

파미르 알타이 산맥의 피크 수직 4810m, 악수서벽과 노르웨이 1200m 트롤베겐, 베핀 아일랜드의 그레이트 세일 피크, 히말라야의 바기라기티 3, 자누 북벽, 창가방 북벽, 메루 북벽, 눕체 남동 필라, 에베레스트 남서벽과 북벽, 안나푸르나 남벽. 그 자리 그 때, 내 앞에 선 거벽에서 눈을 감고 나는 상상했다. 저 벽들의 정상에서 눈이 덕지덕지 뭍은 옷과 마치 웃는 듯 거칠게 호흡하고 있는 정상에서 세어나가지 않게 지르는 외마디 포효.

 

다시 Cascade 정상부를 눈으로 확인하고 이제는 풀과 나무가 없는 설사면 길을 조심스레 재촉한다. 정상에 다다르는 기분이 들 즈음 눈 앞에는 광활한 Canadian Rockies의 준봉들이 펼쳐진다. 매서운 바람에 내 푸른색 배낭의 끈들이 때리는 소리만 요란하다. 걸음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때쯤, 대형 커니스(눈이 쌓여 벽 위로 솟은 눈벽)를 서너 개 지나니 거짓말처럼 시야가 트인다. 아침 일찍 오른 산은 꽤 늦은 오후, 봉우리의 정상마다 신의 손이 내려 앉아 있듯 축복받은 경치로 나를 사로 잡는다. 두어 평 남짓한 Cascade의 정상에서 30여분 발을 뻗고 홀로 앉아 황홀경을 만끽한다. 내려가며 곰 만나 오줌 쌀 일만 남았다는 사실을 더없이 여유로웠던 그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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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7 23:36:09 *.134.131.135

마치 신과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은...  

몰입하고 있어서 산이고 자신이고 구분이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네요 ! 

위대하다는 것은 그런 것이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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