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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8일 05시 07분 등록

세계 신화가 지니는 공통의 주제는 궁극의 중심에 이르려는 인간 정신의 욕구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군요?”

 

아니지, 그게 아니오. 살아 있음의 경험을 찾는 것이지요

 

세계적인 비교종교학자 조셉캠벨과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스의 대담을 엮어 만든 책 신화의 힘(Power of Myth)에서 이 구절을 발견했을 때를 기억한다. 하품을 한 것도 아니고, 슬픔을 느낀 것도 아니었는데 눈꼬리에서 자꾸만 눈물이 졸졸 흘러내렸다. 영문을 알 길이 없었지만 호흡이 깊어지며 온 몸 구석구석의 긴장이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바로 이 느낌이 캠벨이 말한 바로 그 살아 있음의 경험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때부터였을 거다. ‘나랑 아무 상관없는 오래된 신들의 이야기’, 좀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같은 뜬금없는 옛날이야기로만 알고 있던 신화가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틈만 나며 책장을 열고 그들의 모험 속으로 빠져들었다. 궁극의 중심을 찾아가는 영웅들과 울고 웃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분명히 살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책장을 덮고 난 다음의 일상이었다.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얻은 지혜와 힘으로 새로운 삶을 열어내는 주인공들과는 달리 이야기 밖의 내 삶은 좀처럼 달라지지가 않았다. 아니 이야기 속에서 살아 있는 경험이 늘어갈수록 이야기 밖의 삶은 더 말라 비틀어져가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책에 빠져 사느라 돌보지 못한 몸이 자꾸만 경고 신호를 보내왔다. 육체를 가진 인간인 내가 감히 의 경지를 넘본 벌을 받는 것 같기도 했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위대한남의 이야기를 머리로 대신 사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아니 더 이상은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신화를 포기하고 인간으로 다시 돌아와 처음 한 선택이 요가였다. 당연히 살아 있음의 경험따위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든 살고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신도 영웅도 등장하지 않는 좁은 매트 위에서 살아 있음의 바로 그 경험, 정화의 눈물과 평화가 온 몸으로 퍼져나가는 그 느낌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자주.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미술사학자이자 요기니인 프랑스 여인 클레망틴 에르피쿰은 저서 요가, 몸으로 신화를 그리다에서 신화가 그러하듯, 요가는 우리가 내면을 들여다 볼 때 도움을 주며, 우리를 성숙하게 변화시킨다.”, “요가수행은 놀라운 신화적 세계와 인간을 잇는 통로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답한다. 다시 말해 요가 역시 신화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인 중심에 이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지향하고 있으며, 요가 수행은 궁극적 중심’, 즉 우리안의 신성을 깨워내는 과정에 다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가, 몸으로 신화를 그리다는 요가 아사나의 모티브가 되는 인도 신화를 인간의 자기실현 과정을 담고 있는 보편적 신화적 주제인 창조 신화, 영웅 신화, 신성혼 신화의 골격으로 잘 정리해 놓은 전형적인 신화 책 중의 하나다. 하지만 독자는 작가가 해석한 신화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던 수동적인 독서와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신화와 함께 소개된 아사나를 수련함으로써 신화 속 주인공의 깨달음을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험할 기회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의 대표적 대서사시 라마야나속 비상한 힘과 용기를 가진 힘센 원숭이 신 하누만의 전설적인 큰 도약을 기리는 하누만아사나를 살펴보자. 라마와 시타의 사랑이야기로 알려진 라마야나는 비슈누 신의 화신인 라마 왕세자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라마는 왕궁에서 벌어진 술수로 인해 왕위 계승자에서 밀려나 아내 시타, 동생 락스마나와 함께 숲에서 고행자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형제가 집을 비운 틈을 타 랑카(현재의 쓰리랑카)의 사악한 왕 라바나가 시타를 납치해 자신의 왕궁으로 데려 간다.


하누만아사나.jpg

 

형제들은 여기저기 그녀를 찾아다니다 원숭이의 왕 수그리바와 그의 장군 하누만의 도움을 청했다. 원숭이족은 라마를 돕기로 약속하고 최선을 다하지만, 인도최남단에 도달한 그들은 너무도 넒은 바다 앞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모래 위에 주저앉고 만다. 하누만 역시 자신의 엄청난 능력을 잊어버린 듯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이때 하누만의 능력을 기억하고 있던 곰의 왕 잠바반이 하누만에게 다가가 그의 귀에 속삭였다.

 

하누만, 너는 바람의 아들이다. 너도 바람의 신처럼 숨을 들이쉬어 네 몸을 숨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너는 세상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다. 하누만, 일어나 바다를 건너라!”

 

이 말에 하누만은 기억을 되찾았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바다 위로 높이 솟아 올라 시타를 구출해 내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다. 하누만아사나는 그의 전설적인 큰 도약을 기리는 자세다.

 

이야기 속에서는 누군가의 속삭임으로 인해 자신의 잊혀진 재능을 기억해낸 하누만이 초능력을 발휘해 단걸음에 바다를 건넌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의 하누만아사나는 완전히 체득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고난이도의 아사나에 속한다. 그리고 완전히 체득되었다고 해도 충분한 준비동작 없이 무리하게 진행할 경우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은 아사나 중의 하나다.

 

이러한 이유로 원숭이 자세는 요가의 길에서 헌신과 겸손의 중요성을 알린다. 힌두 신화에서 원숭이는 어디로 불지 모르는 바람처럼 통제하기 어려워서, 정제되지 않은 생명의 에너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원숭이로서 하누만은 이러한 특징을 가지지만, 바람의 신의 아들인 하누만은 이를 다스린다. 원숭이 자세를 수련하며 요기는 헌신과 겸손의 마음을 가지고 보폭을 넓히는 연습을 하게 된다. 이 훈련은 우리가 소중한 이들에게 정성을 다해, 그러나 조바심을 내지 않고 헌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렇게 신화를 그리며 매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을 통해 신화 속 주인공들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미덕들은 구체적인 감각으로 몸에 단단히 저장된다. ‘하누만의 위대한 도약이라는 드라마틱한 표현의 행간에 숨겨진 땀과 기다림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야기와는 달리 맹숭맹숭하고 지루하게만 여겨지던 일상이 빛을 되찾는다. 몸을 단련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신체적인 효과는 오히려 보너스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러고 보면 요가는 라마야나속 곰의 왕 잠바반처럼 우리 안의 내재된 잠재력을 일깨워주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하누만처럼 위대한 도약을 이루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신화를 읽던 삶에서 신화를 사는 삶으로. 천천히, 그러나 깊은 충만함으로


이전글 : '요가'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블로그 : 내 삶에 변화가 찾아올 때

이미지 : 하누만아사나, 원숭이 신 하누만의 '위대한 도약'

 

* 참고 문헌

<신화의 힘>, 조셉 캠벨/빌 모이어스 대담, 이윤기 옮김, 이끌리오, 2002

<요가, 몸으로 신화를 그리다>, 클레망틴 에르피쿰, 류은소라 옮김, 미래의 창. 2020

<요가 디피카>, B.K.S. 아헹가, 현천 옮김, 요가, 1997

<심리학자는 왜 차크라를 공부할까>, 박미라, 나무를 심는 사람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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