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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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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3일 18시 52분 등록

(다음 주 휴가로 미리 올립니다)

절망의 메커니즘

 

만년설에 대한 동경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입사 6개월 된 사회 초년생으로 직장 안에서 많은 일들과 관계들을 배워나갈 때였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았다. 회사의 허락은 안중에도 없었고 가족들의 만류도 개의치 않았다. 허락을 받지 못한다면 그저 혼자 떠나면 된다 생각했던 천둥벌거숭이였다. 세상은 쉬웠다.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라 믿었고 나는 자신감에 도취되어 원정대 첫 훈련에 운명처럼 따라 나섰다.

 

내 발목을 잘라라

그 날은 그리도 추웠다. 빙벽을 찾아 거친 사면을 올랐다. 두꺼운 장갑에도 추위는 손가락 끝을 파고들었다. 신경을 곤두세워 사나운 경사를 올랐고 입김이 얼굴을 뒤덮었을 때 나는 마침내 크고 푸른 빙벽과 마주했다. 히말라야 원정을 위한 첫 훈련이 시작됐다. 오르기 전, 쏟아질 듯 나를 노려보는 거대한 빙벽에 왼손을 붙이고 잠시 눈을 감고, 나를 올려 달라 기도했다. 간 밤, 꿈에, 커다란 빙벽의 중턱에서 떨어지는 악몽을 꾸었었다. 떨어지며 양팔과 두 발을 휘저었고 땅에 떨어질 찰나에 덮었던 이불을 움켜쥐었고끄응하며 뒤척였었다.

 

빙벽을 오르는 내 몸은 굳어 있었다. 아이젠과 피켈이 제대로 먹혔음에도 연신 발길질과 스윙을 해댔다. 굳은 동작이 먼저인지 떨어져 가는 전완근의 힘과 악력이 먼저인지 알지 못했다. 등반 동작의 메커니즘은 이미 무너졌다. 첫 번째 스크류 확보물을 어렵게 설치한 다음 약간의 안정을 되찾았지만 리드미컬한 모션을 다시 찾기에는 늦었다. 두 번의 스텝을 이어가다 느닷없이 어제 꿈과 약속한 것 마냥 나는 추락, 자유낙하 했다. 시간이 꽤 지난 듯 한데 나는 아직 떨어지고 있었다. 세상은 고요했다. 지상으로부터 7m지점을 오를 때 땅으로 추락했다.

 

떨어지고 난 다음의 상황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나는 빙벽에서 떨어졌고 떨어졌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고 이 모든 것을 인지할 수 없다는 걸 인지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 아프지 않았다. 선배님들은 빙벽 앞에 널 부러진 나를 안고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을 치며 끌어냈다. 고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입 모양이 컸고 침이 튀었던 걸로 봐서 고함치는 듯 했다. 지구 자전 소리의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굉음을 인간은 듣지 못한다. 꼭 그것처럼 추락 직후 짧은 시간 동안 내 고통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의 반경 밖에 있었다. 출동한 119 구조대는 두 시간 뒤, 들것과 응급구조 장비, 비상약 등을 짊어지고 도착했다. 그리고 잠시 뒤, 범위 밖에 있던 고통이 자장(磁場)안으로 들어왔다. 역치를 잠시 넘어섰다 돌아온 고통은 혼을 빼놓았다. 통증의 수은주가 벌겋게 팽창했고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목덜미를 길게 뻗어 뒤통수를 땅에 처박았다. 희번득 눈을 뒤집고는 하늘을 보았다가 땅을 보았다가 했다. 다리를 부여잡으려 했으나 발목뼈가 제 멋대로 튀어나와 꺾여 있는 걸 봤다. 으깨진 왼쪽 발목에 크게 튀어나온 뼈의 윤곽을 보았다. 크게 잘못 되었음을 직감했다. 화면은 순식간에 점으로 수렴됐고 곧 바로 사라졌고 나는 기절했다.

 

구조대에 실려 인근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진통제를 주사한 뒤 곧바로 큰 병원으로 가는 응급차에 다시 실려졌다. 실려 가는 중에 진통제도 듣질 않았는지 통증은 극한을 향해갔다. 통증보다 더 큰 통증은 조각난 뼈들 사이로 들어가 그것을 상상하고 부서진 뼈들의 상황을 스스로 가늠하는 일이었다. 단지 상상일 뿐이지만 고통을 능가하는 고통이 폭풍처럼 몰려온다. 공포였다. 아픈 발목에 상상의 고통이 더해졌다. 나는 고통을 잊으려 왼쪽 발목을 스스로 자르고 싶었다. 구급차에 동승했던 선배님께 소리치며 내 발목을 잘라 달라며 비명을 질렀다.

 

끊어진 뼈 조각난 꿈

그 날 도착한 병원에서 의사는 내 왼쪽 발목을 진단한 후절단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내가 본 것은 조각난 발목이 아니라 x-ray로 비친 절망의 모습이었다. 흐릿한 가운데 정교하게 뻗어 나간 발목 뼈마디 위쪽에는 좁쌀만 한 뼈들이 산산이 깨져 붕 떠 있었다. 의사는 발목 언저리 복숭아 뼈가 맥주캔 찌그러지듯 으깨져서 육안으로 확인된 것만 27조각이 났다 했다. 발목을 연결해 주는 정강이 뼈 하단, 아킬레스건이 잇고 있는 뼈가 끊어져 살을 뚫고 나왔다 했다. 수술은 불가피하고 그 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말하며 수술이 잘 되도 제대로 걷기는 힘들 거라 했고 잘 안될 경우엔 절단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하며 밋밋하게 수술동의서를 내밀었다.

 

곧 수술에 들어갔고 외과 집도의와 마취과 의사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수술계획을 내 발목에 유성매직을 그어가며 논의했다. 팔뚝만한 마취주사를 척추에 찔러 넣었다. 하반신 마취만을 했던 터라 내 눈과 귀는 열려있었다. 그들의 말이 또렷이 들렸고 큰 연꽃을 엎어놓은 듯한 서치라이트는 강렬했다. 그들이 하는 말에는절단 ‘Cutting’이 난무했다. 정말로 자른단 말인가, 갑자기 두려움이 치밀어 올라 개소리 하지 마라며 고함치고 싶었지만 목구멍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억울함과 분함, 자괴감, 후회가 한데 뒤섞인다. 수술대에서 얼굴을 모로 돌렸으나 감은 눈 사이를 눈물이 비집고 나왔다.

 

수술하는 동안, 망치로 무엇을 바수는지 발목 근처를 연신 두드려댔고 그럴 때면 속수무책으로 내 몸도 따라 흔들렸다. 드릴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미세하게 돌아가는 고성능 절단기는 내 뼈의 마디마디를 잘랐다. 누군가 수술모습을 촬영하는 것 같았고 끊어내고 찢어내는 중에 그들은 돌아가며 자장면을 먹었다. 도륙 수준의 6시간 긴 수술이 마무리되고 나는 반병신이 되어 병동으로 내팽겨 쳐졌다. 다리는 무릎 위까지 붕대로 칭칭 감겼다. 다리를 자르는 사태까진 일어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품었던 흰 산을 향한 내 꿈은 날아갔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 내 할머니는 나를 부여잡고 통곡했고 먹어야 산다 하시며 집에서 병동으로 매일 먹을 것을 들고 날랐다. 아버지와 형님은 두 번 다시 산에 가면 나머지 발목도 분질러 놓을 거라 엄포를 놓았다. 병문안 오시는 친지, 지인들은 이만하길 천만 다행이다 하며 돌아가신 내 어머니가 나를 살렸다 했다. , 약속이나 한 듯 나에게 다신 산에 가지 않기로 맹세를 받고 돌아가곤 했다.

 

절망의 메커니즘

산에 가면 안 되는 거였다. 자신의 꿈을 좇는다는 것은 이리도 허망한 것이었다. 결국,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이었다. 주는 것이나 먹어야 했고 먹고 살기에도 바쁜 세상이었다. 꿈은 팔자 좋은 사람들의 인생놀이에 지나지 않았음을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진즉에 주제파악 했어야 했다. 그저 애면글면 살아가야 했었다. 발목이 산산이 부러진 이후로 흰 산에 대한 떨림은 떨림으로 그쳤다. 내 다리에 뼈가 끊어짐과 동시에 나를 우주와 연결시켜 주는 꿈이라는 네트워크도 끊어져 버렸다.

 

부러진 발목으로 산은커녕 회사도 제대로 다니기 힘든 상황에 놓였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동료가 식판에 밥과 반찬을 아침 점심으로 받아 주었고 나는 그것을 먹었다. 그들은 멀쩡했으므로 가끔 그들의 말없는 호의를 동정과 경멸로 오인하기도 했다. 통근버스 계단을 목발로 오르는 순간부터 자리에 앉기까지 빠르지 못한 내 동선과 움직임을 사람들은 고개를 통로로 내고 빤히 지켜보았다. 한발로 불안하게 뛰어서 회사 팀장님께 다가갔고 불안한 자세로 업무 보고를 했다. 어설프게 다니며 자빠지거나 넘어지는 욕이라도 보일까 회사에서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 큰맘 먹고 화장실에 틀어박히면 역한 냄새를 맡으면서도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었다. 하나뿐인 누나의 결혼식에 목발을 짚고 나타나 가족사진을 찍었다. 친지들은 혀를 찼다. 샤워를 앉아서 해야 했고 발가락 끝만 나와 있는 캐스트(깁스)는 항상 더러웠다. 캐스트 밖으로 노출된 발가락은 추워서 시퍼렇게 변했지만 나는 가만 두었다.

 

보기 싫은 목발은 사무실 책상 한 편에 불행한 나처럼 항상 넘어져 있었다. 거치적거리는 목발이 저주스러웠고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미웠다. 커다란 망치가 뒤통수를 치고 갔다. 지난날엔 일상이던 것이 모두 낯설어졌다. 낯선 일상이 나를 밀치고 갈 때 마다 귀엔 이명이 울렸다. 머리를 움켜잡고 지새운 밤이 헤아릴 수 없다. 몸은 빙벽에서 땅에 떨어졌으나 마음은 더 깊은 나락으로 빠졌다. 누군가 내 뒤에서 말하는 것 같다. 추하다. 나는 가두어졌다.

 

한 달여 병상 생활을 마무리하고 퇴원할 때 의사는 깁스에 볼펜을 두드려가며 말했다. ‘두 번 다시 산에 가는 순간, 당신의 왼쪽다리는 영원히 회복하지 못한다. 발목을 쓰는 모든 운동은 중단해야 한다.’ 갈기 같은 머리로 이 산, 저 산 헤매며 다니던 사람에게 집에 틀어 박혀 살아라 했다. 꽃이 피면 산에 가서 바위를 오르고 눈이 오면 빙벽에 몸을 세우던 사람에게 다리를 쓰지 마라 했다. 나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내 발목은 프랑켄슈타인처럼 기괴한 수술자국으로 끔찍했고 까치발 걸음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희망 있음을 믿지 않았다. 절망이 지속되어 이미 생활이 되어 있었고 오늘은 어김없이 어제가 지배했다. 전두엽이 덜어내진 사람처럼 초점 없는 눈빛으로 매일을 받아들였다. 부러진 다리, 집고 선 짝 다리는 그래서 바르게 선 다리들을 그리워했고 더러는 시기했고 더러는 값싼 질투도 서슴지 않았다. 어느 순간 조용히 그것이 내 삶이라 여기게 되었다. 부러진 내 발목은 아랑곳없이 원정대는 히말라야로 출정했다. 그들이 김해공항을 떠난 토요일 아침, 그들을 배웅하고 절뚝거리며 다시 사무실로 출근하는 내 모습은 추했다.

 

사람은 뼈가 부러져 죽는 것이 아니라 절망에 죽는다. 절망은 지옥의 말이다. 언제나 오는 오늘로 인해 세상은 희망을 말하지만 그 오늘이 지금의 오늘이 아니라 허황된 내일의 오늘, 지나간 어제의 오늘이 될 때 우리는 절망의 보균자가 된다. ‘바로 지금 여기를 살지 않는 오늘은 모두 허송이다. 다리가 부러졌든 희망이 사라졌든 간에 나는 역사상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살았어야 했다. 과거가 늘 오늘을 지배했으므로 절망의 바이러스가 서식하기 좋은 숙주가 되었고 목발을 짚고 다니는 모든 곳이 지옥으로 감염되어 갔다. 이것이 절망의 실체였고 절망의 날들이 내 삶을 지배해 간 메커니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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