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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김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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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9일 08시 32분 등록


아침마다 근처 인왕산 둘레길로 산책을 나간다. 산책을 하면서 빼놓지 않고 하는 게 있는데 그 중 하나가 ‘1분간 웃기’다. 산책길을 가다보면 중간쯤에 야트마한 언덕이 하나 나온다. 인적이 드문데다 서울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을 보유하고 있는 명당자리다. 매일 그곳에 올라 서울시내를 내려다보며 시원하게 한바탕 웃고 내려오곤 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미친놈마냥 그냥 웃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생각들을 떠올리며 비웃게(?) 됐다. 나를 겁먹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 비웃고, 나를 화나고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도 비웃고, 내가 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생각도, 끊임없이 떠오르는 잡념들도 크게 비웃었다. “푸하하하하~ 뭐 그런 생각을!” 뱃심까지 끌어올려 껄껄 웃다 보면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스스로를 비웃는 그 1분의 시간이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는 힘을 주었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주었다. 


책을 내면서 학교나 기관에서 강의할 일이 꽤 많아졌다. 한때 이런 강의 자리가 매우 부담스러웠다. 사람들이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걱정되었고, 내가 잘해낼까 긴장되기도 했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애쓰다 보니, 강의를 하고나면 언제나 탈진상태였다. 강의를 한다는 건 매번 부담스럽고 힘들었다.  

 

어느 날 강의가 왜 그렇게 부담스러운지 생각해봤다. 결국 ‘내’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떻게 보일지, 내 말이 어떻게 보일지, 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서였다.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특별한지 보여주고 싶었던지라, 부담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아침마다 1분 웃는 시간에  그 생각들을 몇 번이나 비웃었는지 모른다. 비웃으면 희한하게 생각이 가벼워진다. 마음이 가벼워진 자리에 이런 고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부담감을 낮추고 청중에게 더 진실되게 다가가고 더 도움이 되게 할 수 있을까?’ 

 

하루는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다가 ‘노바디의 여행’이라는 구절을 보았다. 노바디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뜻으로 ‘섬바디(특별한 존재)’의 반댓말이다. 김영하는 자신이 누구인지 내세우지 않고 노바디로 존재할 때 오히려 여행이 깊어진다고 이야기했다. 그를 읽으며 이 개념을 강의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섬바디가 되려고 그토록 애를 썼는데 반대로 나는 노바디고 청중이 섬바디라면 어떨까. 

 ‘내’가 아니라, 강의를 듣는 ‘청중’을 중심에 둔다면, 그들이 진정 주인공이라면 어떨까?‘

 

강의할 때 그토록 부담을 느끼는 건 나를 내세우는 마음, 섬바디가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사실 나보다 중요한 건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그를 듣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 둘을 위해 존재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강의를  ‘노바디의 메시지’라고 다시 이름 붙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어떻게 보일지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강의에 대한 부담감이 절반이상 뚝 뜰어졌고,  대신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이번엔 누가 올까, 그들과 어떤 호흡을 가지게 될까?' 궁리하며 전달할 메시지를 가다듬었다. 내가 아니라 매번 다른 ‘청중’ 들을 만나고 그들과 호흡하는 과정에 집중하게 되니 강의가 즐거웠고, 청중의 반응도 더 좋아졌다. 부담되기만 하던 강의가 어느 순간부터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오랫동안 ‘섬바디-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였었다. 물론 지금도 그 열망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가끔 아무것도 아닌 존재, 하찮은 존재가 되는 것도 괜찮지 않나’, 생각이 든다. 구글 엔지니어에서 명상가로 거듭난 ‘차드 멍 탄’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자신감’이 태산만큼 커지면서 동시에 하찮은 모래알만큼 작아질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자신감은 스스로를 크게도 만들고 먼지처럼 작게도 만드는 유연함에 바탕을 둔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강한 사람이 ‘매사에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요즘은 진짜 강한 자는 자신을 태산처럼 추켜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태산 같은 자존심을 지니면서도 스스로를 낮추고 비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당함과 하찮음을 동시에 지닐 수 있는. 스스로를 비웃는 1분의 시간 덕분에 이런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되어 즐겁다. 


 

“모든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비극작가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예술을 자신의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을 때, 즉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해 비웃을 수 있을 때, 그때서야 그는 비로소 자신의 위대함의 마지막 절정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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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2 12:12:24 *.121.2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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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6 09:20:29 *.181.106.109

안녕하세요? 예전에 코경원에서 봤던 그 김글리가 맞습니다. 누구신지 궁금하네요. 댓글 달아주시고, 또 부러 아는 체 해주셔서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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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3 09:24:16 *.124.161.34
어제 읽고, 오늘 다시 읽어보며 자신감의 참의미를 되새겨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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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6 09:24:02 *.181.106.109

강하고 당당한 게 자신감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자신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물처럼 유연한 사람들이더군요. 보잘것 없는 존재여도 괜찮고, 태산같은 존재에도 편안함을 느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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