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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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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9일 23시 09분 등록
지난 편지에서  지금 들고 있는 사과가 아닌 사과 속의 씨앗, 그러니까 '진짜 나'에 대해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나에 대한 탐구는 저에게도 끝나지 않는 질문입니다. '가장 나다운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 너무 많은 것들이 모여서 나라는 관념을 이루기 때문에 가장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선뜻 생각해내기는 쉽지 않죠.
사실 나와 나 사이에는 나와 타인과의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것 만큼이나 큰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내가 정말 나다워질 수 있는가를 아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두 문장은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가 한 말로 알려져 있으나, 제가 믿고 있는 바이기도 합니다.

저의 평상시 모습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빠의 모습? 회사에서 몰입해서 일하는 개발자의 모습?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아마추어 작가로서의 모습? 모두가 그럴 듯 했습니다. 정답은 아니더라도 하나의 답으로 확신하고 남은 생을 살아가봄직한 것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외부로 드러나는 삶의 표피에 가깝습니다. 솔직히 가면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의 저의 내면을 덮고 있는 페르조나들입니다. 가장 나답다는 확신을 가지기에는 2% 부족했습니다.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에 따르면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의견을 존중하는 무리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사회적 자아가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 각각의 무리를 대할 때 자신의 다른 면을 드러냅니다. 자식을 대할 때는 부모, 그리고 핏줄이라는 절대성이 대입됩니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직원이라는 조직체의 일부로서의 사회적 자아가 존재합니다. 작가 역시 독자 없이는 홀로 설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다운 모습'을 찾을수 있을지언정 '나를 가장 나답게 해주는 무엇인가'를 찾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조금 더 근원적인 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순간 떠오른 답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가장 나다운 건 혼자 있을 때 아냐?"

빙고! 저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고독'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전 혼자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냥 쉽게 말하면 전 많이 내향적입니다. 하지만 저의 외면을 형성하고 있는 페르조나들때문에 제가 내향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내향성 자체가 나다운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장 나다운 모습, 나다운 행동에 있어 내향성이라는 기질은 가장 큰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솔직히 내향적인 인간유형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살기 힘든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회성 좋은 외향적인 인간들의 생각입니다. 근래 내향적인 인간의 우월성(?)을 다루는 책들이 간간히 나오고 있기는 하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외향적 인간들이 주류이며 승자입니다. 행복의 반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적인 요인인데, 바로 그것이 외향성이라는 연구결과는 정설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전히 외향성을 키우는 것이 성공과 행복의 열쇠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내향성은 부정적으로 간주되기 쉽습니다. 내향적인 사람은 남에게 자기 의견을 잘 드러내지 않고, 표현이 서툴고 더디죠.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억울한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조심하고 주의하는 성격이 부정적인 성향으로 매도당할 때도 있습니다. 소극적인 배려가 잘 드러나지 않기도 합니다. 자기 딴에는 배려한다고 하지만,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수도 있는 거죠. 하지만 내향적인 사람의 배려에는 깊이가 있습니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나에게 비추어 남을 대하는 황금률을 가진 유형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보면, 내향적 인간과 외향적 인간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의 독단적인 판단입니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큰 액션으로 자리를 양보합니다.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아주머니들이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때 이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국의 아주머니들은 나이가 들면서 사회적 외향성이 커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리를 양보할 때 액션이 작습니다. 보통 그냥 슬며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왠걸 뒤쪽에 서 있던 다른 아저씨가 냉큼 엉덩이를 자리에 던져 넣습니다.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에 당황하게 되죠. 하지만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어났던 내향적 인간은 별 얘기를 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가서 엉거주춤 서있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인것 같습니다. 자리양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합니다. 

오래전 퇴근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전철에 들어왔습니다. 제 쪽으로 향하는 걸 보고 아이 엄마와 눈을 맞추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제 쪽으로 오는 속도와 거리에 한치의 오차없이 계산된 타이밍이었습니다. "OO야, 저기 앉자"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말했다. 자리에 다가오는 아이를 보고 다른 빈 곳으로 서있기 위해 움직이는 제게 아주머니의 눈인사가 전해졌습니다.
'고마워요^^'
'뭘요^^'
저의 작은 눈의 미소가 대답했습니다. 단추구멍같이 작은 눈이라서 잘 안 보였겠지만, 느낄수는 있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나름 자연스럽습니다. 무슨 자리 하나 양보하면서 별 생각을 다 하냐고요? 하지만 이런게 가장 나다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외향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닿습니다. 많은 분야에 영향을 미칩니다. 외향성은 넓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향성은 깊이를 만듭니다. 깊으면 결국 타인에게도 닿습니다. 또한 그 깊이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닿습니다. 성찰의 깊이만큼 가장 나다운 것을 찾을 가능성 역시 커지게 됩니다. 내향성이 나다움이라는 것의 뼈대를 이루고, 다시 그 내향성으로 인해 나를 더욱 잘 알게 됩니다. 결국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고 영화계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말한 바 있습니다. 이 명언은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대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오해하지 맙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은 내가 잘 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은 '내가 그것을 잘 할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 바탕은 내향성이 될수도 있고, 외향성이 될수도 있습니다. 또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다른 무엇인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와 내면의 가능성을 찾아야 합니다. 그 출발점은 자신의 기질과 성향입니다. 자신의 기질과 성향, 그리고 살아온 환경이 만난 것이 바로 나의 스토리입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모든 것을 사랑하고, 그곳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 그것이 가장 나다워질수 있는 최선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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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0 19:51:06 *.169.227.25

진 흙 가지고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만들 수는 없지만 반면에  아무도 원석을 목에 걸지는 않습니다.

저의 짦은 생각으로 내향적이냐  외향적이냐나,  성격성향이나  재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그것이 무엇이든 좋아하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수 있는 열정과 의지가 있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만 가지 재주 가진 놈이 밥 빌어먹는다' 고 장인이셨던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인지 모르지만 저도 거의 반 백 년을 이 일에 매달렸고 재능에 의존하는 선수들이 단명 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전 '재능'있는 선수보다는 '성실 과 끈기'있는 선수를 더 많이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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