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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22년 5월 1일 14시 43분 등록

어린 시절, 가난했던 우리 집은 가훈이 없었다. 농사일을 하느라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고생하는 부모님을 상대로 왜 우리 집엔 가훈조차도 없는 것인지 따져 묻지도 못했다, 먹고 살기도 빠듯하여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집 구석에 가훈은 사치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작은 액자에 근면 성실또는 하면 된다이런 내용의 가훈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몹시도 부러워했었다. 친구들 집엔 돈도 있었고 웃음도 있었고 철학도 있었기 때문이리라.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게 흘렀고, 나도 이제 두 딸을 둔 아빠가 되었다. 어린 시절 친구 집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가훈을 우리 집에도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봄이 되니 싹트기 시작했다. 어떤 걸로 가훈을 삼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우연히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고등학교 급훈을 보게 되었다. 몇 가지만 소개하면 이런 식이다.





 

오늘 흘린 침은 내일 흘릴 눈물


이거 꼬라 볼 시간 있으면 영어 단어 외워


그 얼굴에 공부까지 못하면 안습이다


스스로 깨면 병아리, 남이 깨면 후라이






 

맞다. 나에게도 내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칙이 있었지? 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사랑하는 단어인 해학이다. 이 유래가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인지는 몰라도 저 옛날 옛적에 지체 높은 양반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가난한 서민들의 욕망이 담겨 있는 유머고 몸짓이고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해학은 남을 비방하거나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팍팍하고 비참한 현실을 웃음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넘어진 자리에서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무릎을 세우고 다시 일어나 살아갈 힘을 얻고자 하는데 있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 바로 이거다. 해학이 담긴 가훈을 만들어 보자라고 결심했다. 우리 집에는 하나의 규칙이 있다. 나와 중학교 1학년인 큰 딸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인 작은 딸은 하나의 약속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루 1시간만 스마트폰 사용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날은 두 딸 모두 1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 동안 스마트폰 시청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도 10 20분 정도 약속한 시간을 넘겨서 스마트폰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래도 힘들게 공부하고 운동하는 아이들을 위해 모른 척 했지만 이번엔 뭐라고 따끔하게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두 딸을 불러 놓고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대가로 미리 정해 놓은 벌칙을 적용하려고 했다.






벌칙은 만원을 아빠에게 헌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 딸들은 이 만원을 뺏기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납득이 가는 것이 두 딸들은 어려서부터 습관을 실천해오고 있고 보상으로 습관을 성공하면 하루에 1천원씩 받아서 그 돈으로 저축도 하고 주식도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돈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가치 있는 일인지 잘 안다. 그렇게 노력해서 번 돈을 뺏기려니 불현듯 억울함이 확 올라왔을 것이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나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때 큰 딸이 아빠, 쌀국수 가게 하느라 힘들죠? 허리랑 엉덩이 발로 밟아줄 테니 수고비로 만원 주시면 안돼요?” 이 말을 듣고 옆에 있던 둘째 딸이 아빠, 저도 아빠 엉덩이 밟아 줄게요 전 어리니까 9천원만 받을게요~” 이러는 것이다






난 이 대목에서 빵 터졌다. 웃겼다. 팽팽했던 긴장감은 사방으로 삽시간에 흔적도 안 남기고 흩어져버렸다.






우리 집 가훈은 웃으면 복이 와요로 정했다. 다소 식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열심히 일만 하는 기계는 언젠가는 마모가 된다. 그래서 마모 되는 시기를 연장시키기 위해 윤활유를 넣는다. 팍팍한 세상에 유머가 윤활유 역할을 한다면 인간관계도 그만큼 연장된다고 믿는다.






놀라운 사실은 유머 감각은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것이다. 먹잇감을 구하기 힘든 추운 겨울, 늑대 두 마리가 배고픔을 못 이기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서로 싸움을 시작한다. 긴장감이 늑대 무리 전체로 퍼져 나간다. 그때 늑대의 리더가 이 싸움에 개입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늑대의 리더가 두 늑대를 힘으로 제압할 줄 알았는데 우두머리가 선택한 개입방법은 다름아닌 장난이었다. 우두머리는 싸우고 있는 늑대 중에 힘이 센 늑대에게 장난을 건다. 장난을 통해 동료로 향했던 공격성과 난폭함을 잊게 만든다. 이처럼 유머는 늑대의 리더에게도 필요한 덕목이다. 그래서 싸움에 능하지만 난폭한 늑대는 리더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이처럼 유머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난폭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일순간에 무장해제 시키는 탁월한 힘이 있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동기부여가인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성공의 85%는 인간관계에 달려있으며 훌륭한 인간관계를 만드는 핵심이 바로웃음이라고 강조했다.






웃음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너무나 많다. 미국 인디아나주 볼 메모리얼 병원에서는 외래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웃음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의 양을 줄여주고 우리 몸에 유익한 호르몬을 많이 분비하게 하여 '하루 15초 웃으면 이틀을 더 오래 산다.'고 밝혔다. 미국의 존스홉킨스 병원은 '웃음은 내적 조깅’'이라는 서양 속담을 인용해 웃음의 효과를 소개했다. 웃음이 내적 조깅이라니 무슨 의미일까? 웃음은 감기를 예방케 하고 치료도 해준다. 웃음은 암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 웃으면 살도 빠진다. 웃음은 상대방에 대한 의심을 녹이며, 편견의 벽을 허물며 편안함을 준다. 이렇게 웃음은 조깅처럼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리라.






이런 이유로 나는 우리 집 가훈을 웃으면 복이 와요로 정했던 것이다. 이런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있는데 그는 바로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신화학자인 조셉 캠밸이다. 그의 저서 신화와 인생엔 음악처럼 내 귀를 잡아 당긴 문장이 있다.






"여러분이 현재 처한 상황을 희극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여러분은 영적인 거리를 얻게 된다. 결국 유머감각이 여러분을 구원하리라" 얼마나 멋진 말인가? 유머 감각이 우리를 구원한다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유머감각이 인간의 공격심리를 즐거운 언어로써 승화시키는 삶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적으로 살벌하게 치고 박고 싸우는 상처투성이 상황을 적절한 유머 한 마디가 분위기를 평화롭게 만들어 상대를 향한 총 뿌리를 거두게 만든다면 이것이 구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흔히들 우리는 밖에서 상처받은 일 때문에 화풀이를 소중한 가족에게 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예전에 그런 적이 많았었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아내가 청소를 부탁하거나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보채면 버럭 화를 내고는 했다. 반성을 많이 했다. 그리고 이제 거꾸로 해보면 어떨까 한다. 집에서만이라도 갈등 상황이 오면 화를 내는 대신에 유머 감각을 총동원하여 가족에게 웃음을 준다면 마음의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가화만사성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술술 풀린다. 반대로 집안 일로 화가 나고 불안하다면 밖에서 하는 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좋건 싫건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할 가족, 그 가족 구성원과 화목하게 지내는 일이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공의 85%는 인간관계에 달려있으며 훌륭한 인간관계를 만드는 핵심이 바로웃음이라고 말한브라이언 트레이시의 말처럼 나는 우선 가족과의 인간관계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 가훈을 웃으면 복이 와요로 결정했다.  






드디어 우리 집에도 철학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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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2 17:20:44 *.169.227.25

축하해요 ! 멋진 가족 철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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