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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0일 20시 31분 등록

화요편지

종종의 종종덕질

함께라면 어디라도, '다음 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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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파주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 거대한 식물원 안에 자리한 멋진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와 수다를 즐기고, 파주의 그 유명한 출판단지 내에 있는 특별한 갤러리를 방문하는 완벽한 주말 나들이 코스였습니다. 갤러리야 어디에든 있지만, 출판문화단지답게 동화책의 원화만을 선별해서 전시하는 갤러리를 지인분이 운영하신다 하여 호기심과 기대를 안고 방문했지요. 약속한 관람 일정을 앞두고 조금 시간이 남아 갤러리 옆에 있는 널찍한 서점에 들어갔는데, 아주 독특한 그림책 한 권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표지가 너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하나 정성들인 작품 전시를 보는 듯한 멋진 그림책들 사이에 너무 대충 그린 낙서 같은 표지가 눈에 띄어서요그리고 단숨에 읽은 동화책의 내용에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참 동안 발을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전미화 작가가 쓰고 그린 그림책 다음 달에는입니다.

 

아이는 봉고차에서 삽니다. 아빠는 이제 회사에 가지 않고 공사장에 나가요. 어느 깜깜한 밤, 짐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누가 볼 새라 차를 타고 집을 떠나온 아빠와 아이는 그 후 모든 것을 차에서 해결합니다. 아빠가 일하러 가면, 아이는 차 안에 홀로 남아 그림도 그리고 낮잠도 잡니다. 힘든 하루 일을 마치고 차로 돌아온 아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며다음 달에는 학교에 보내줄께라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다음 달에도 그 다음 달에도 아이는 차 안에서 아빠만 기다립니다. 그렇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 눈물이 마를 새 없는 울보 아빠지만, 자라나는 아이를 위해 매일 우유를 구해 먹이고 같이 책도 읽습니다. 그리고 작은 봉고차문을 열고 나가면 아담하고 예쁜 공원이 앞마당이 되는 그런 날도 있어요. 그러면 아이는 아빠와 함께 차 안에 갇혀 있던 화분을 들고나와 햇볕을 쬐어주고, 길고양이에게 밥도 줘요.

 

그렇게 아이는 의젓하게 아빠를 기다려 주고, 아빠는 매일매일 눈물을 보이지만 좁은 차 안이 아이가 아는 세상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소중한 일상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렇게 서로를 꼭 붙잡고 달팽이껍질 같은 봉고차를 의지해 살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는 울보 아빠가 눈물로 약속한 그 날을 맞게 되지요.

 

내용은 이리 단순한데 말입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 느낌을 어찌 설명할까요. 주인공인 아이가 직접 쓴 그림 일기 같은 그림과 글이 한 장 한 장 펼쳐질 때마다, 가슴 속 깊이 숨겨둔 우물에 큼직한 돌덩이가 풍덩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차가 집인 주인공들의 영화와 드라마가 떠올랐어요.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마드랜드에서 남편과 직장과 집을 한꺼번에 잃고 차에서 생활하는 유목민이 된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쓸쓸한 뒷모습, 지금 한참 인기몰이 중인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등장하는 이병헌의 헝클어진 머리가 생각났습니다. 집도 절도 없이 늘 트럭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이병헌은 좁은 트럭 안 좌석 등받이에 눌려 늘 삐친 머리를 하고 다니는 쓸쓸한 사내지요. 두 사람 다 차가 집이에요. 한 명은 가족이 없고, 또 한 명은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와 의절하고 산 지 수십년이 되었어요. 이렇게 차에서 사는 사람이란 혼자이거나 버려진 신세로, 외부와 단절된 채 차 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고 달리는 고독한 존재들이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다음 달에는에 나오는 두 사람은 그렇지 않아요. 엄마는 어디에 있는지 왜 없는지 설명도 없이, 서로가 서로의 전부인 아빠와 아이의 작은 봉고차는 쓸쓸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동화책이 아니라 수백페이지의 장편소설로도 모자랄 것 같은 사연을 품은 두 사람의 차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늘 살피는 아빠의 사랑과 울보 아빠를 감싸 안은 아이의 애정으로 부족함 없이 아늑합니다.  

 

인생의 본질은 막막함이라고, 누군가 그랬죠. 예상치 못한 불행, 가차없는 현실 앞에서 주저앉아도 다시 일어나는 힘, 버티는 힘은 대체 어디에서 올까요. ‘다음 달에는이라는 주문 같은 약속을 지켜주려는 맘 약한 아빠의 등불 같은 애정, 벽돌집보다 단단한 서로의 집이 되어주는 아빠와 아이의 연대가 바로 그런 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의 일기체 같은 단순한 문장과 낡은 갱지에 목탄으로 그려낸 낙서 같은 그림이 어리지만 단단한 마음을 오롯이 전해주는 책, ‘다음 달에는을 꼭 만나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이 애틋한 부자와 함께 듣고 싶은 곡을 소개해드리면서 오늘의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Blackbird singing in the dead of night
검은지빠귀가 깊은 밤 노래를 불러요
Take these broken wings and learn to fly
이 망가진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나는 법을 배워요
All your life
당신 생애 내내
You were only waiting for this moment to arise
이 날아오르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잖아요.

Black birds fly. Black birds fly.

검은새가 날아요. 검은새가 이제 날아요.

 

Beatles Black Bird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an4Xw8Xy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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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3 17:12:48 *.169.227.25

극과 극은 통하는...  그래서 아주 기뻐도 울고 아주 슬퍼도 웃는... 

모든 것은 '바라보는 자의 마음에 있다.' 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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