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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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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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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2일 23시 16분 등록

오늘도 내일도 제삿날

 



  장례가 끝나고 난 뒤 수많은 감정 중에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있었다. 세상에 다행이라니. 한 생명의 마지막 순간이 언제인지 명확히 알지도 못한 채 한밤중 닥친 소식에 망연하던 정신은 어디 가고 장례가 끝났다고 다행이라니. 슬프게도 다행이었다.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때의 장례식에서 나는 그러했다. 장례식 내내 슬픔을 느끼기보다는 전투적이었고 그래서인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아프기도 했다. 슬픔과 허전함은 좀더 지난 후에 흘러들어왔다. 돌아보면 장례 전까지 매일을 긴장 상태에 있었다. 두 명의 어머니가 병원에 계신 엄마에게 이입되어 있던 까닭이다. 어머니와 시어머니 모두 요양병원에 계신 나의 엄마는 매일을 시어머니를 방문했다. 물론 아버지와 번갈아 가시긴 했지만, 꼬박 식사가 나오는데도 미음이며 죽을 끓여 가는 것은 엄마의 몫이었고 할머니 상태를 묻는 시누이들의 잦은 전화에 답하고 나면 우리 엄마한테도 가야 되는데라는 말을 읊조리셨다. 매일을 찾아뵙기 위해 살고 있는 지역 병원으로 할머니를 모셔왔지만, 지역이 다르다고 외할머니가 그렇게 멀리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할머니랑 외할머니랑 같은 날 돌아가시면 어떡해?”

   아버지는 할머니 장례식에 어머니는 외할머니 장례식에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 말이었다. 그러나, 당연히 엄마는 시어머니 장례에 가야한다는 말이 돌아왔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작은 어머니, 작은 며느리였다. 작은 며느리는 실제로 그런 집을 본 적이 있다며 그 집은 각자 자기 부모님 장례에 가기로 했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그런 집을 보았다는 얘기의 결말이 왜 우리 엄마는 자신의 엄마 장례식이 아닌 남편의 어머니 장례식에 가야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일까.

  “큰며느리니까.”

  그 집은 다행히 작은 며느리라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작은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 순간 또다시 더할 수 없는 경계를, 벽을 느끼고 말았다. 엄마는 아무런 말씀도 하시지 않았지만, 나중에 그런 거다라고 읊조리셨다. 커다란 돌덩이가 들어앉고 무수한 돌멩이가 날아오는 기분이 들진대 울엄마는 어땠을까.

  그러니, 할머니 장례식 순간순간 외할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물론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한국의 가부장제 문화는 장례 기간에도 슬퍼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럴싸하게 경계짓는 아들과 며느리, 며느리와 시누이의 역할, 그 속에서 언뜻언뜻 드러나는 묘한 힘의 작용, 한 가정에서도 사람과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역할역할로 줄 세워지며 그 역할로 인해 마구마구 할 수 있는 말이 정해지는 이들이 있고, 그 역할로 인해 할 수 없는 말과 묵묵히 들어야 하는 말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좋게 들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마냥 곱게, 좋게 듣기엔 찜찜한 말들이 며느리들에게는 가해진다. 속상하자면 한도 끝도 없고 그렇다고 듣지 않았다고 하기엔 한으로 쌓일 말들을 며느리는 담고 있다.

  물론 전혀 새삼스럽지도 않다. 우주를 향해 누리호가 발사되고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힘겨움을 견뎌내고 기후환경변화로 인해 인류가 멸망하리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2023년에도 별로 달라지는 상황은 없다.

  며칠 전 병원에서 퇴원한 엄마는 오른팔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데 모레 있을 시부모 제사로 인해 전전긍긍 상태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제사 지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제사의 미덕이 아닌 건지, 제사는 어김없이 진행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며느리의 목소리는 제외한 아들들과 딸들의 합의로 이루어진 것인데, 가끔 나는 이 근본없는 가족 질서와 규약을 보며 조소하곤 한다. 더 정확히는 조소하고있다. 결국 반편생을 큰며느리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 큰며느리의 어설픈 보조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며느라기라는 책에선 모두가 힘겨운 표정을 짓는 가운데 쇼파에 앉은 아버지만이 그대로인 모습이 그려진다. 그 어떤 불편한 표정도 없다.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존재, 그 존재로 인해 이 사회가 이렇게 유지되고 있다는 현실을 며느라기그림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불편하고 속상하고 부당함을 느끼는 모두가 밖으로 나간 상황에서도 쇼파에 드러누운, ‘아버지라는 존재. 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고부갈등만이 부각되고 있지만 이런 문제의 중심은 아버지라는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이 땅의 며느리들은 시어머니, 시누이, 남편, 며느리들 서로 간의 감정적인 소모전으로만 치닫고 있다. 무어 그리 큰 권력이라고 떡 버틴 로 인해 행복하지 않은 삶들이 이어져야 된단 말인가.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고 딸에게 그런 식으로 살지 말라고 말해놓고 돌아서서 며느리에게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변화.

  “그런 거다

  같은 며느리에게서 며느리 역할론이 나왔을 때 느껴야 했던 자조가 더 컸던 것은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기에, 그 힘겨움을 가장 잘 알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기대했던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도록 며느리의 힘겨움이 토로되지만 변화가 없던 것은 그 상황에서 얼른 벗어나고픈 욕구가 강한 나머지 에게만 집중해서일까. 각자가 살아남는 방법밖에 달리 없었기에 같이 힘겨움을 나누고 방법을 고민하지만 그 전투력은 또한 실상에서 유용하게 활용되지 못하기도 하기에, 그런 걸까.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도 힘겨운 큰며느리의 삶을 사는 엄마를 보면서 수년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 슬프다.

  “며느리들은 모두가 힘겨워하면서도 함께하지 않는다. 불편하고 찜찜한 무언가를 느끼면서도 결코 문제를 보려하지 않는 그림이 그려진다. 똑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공감은 없이 나 혼자만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안간힘 쓰고 있다. 왜 이렇게 문제를 느끼고 있으면서도 서로 힘겹다 말한마디, 연대할 말조차 잃어버리고 있는가. 가족이라면서. 큰며느리는 이 가정에 들어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가. 의무와 책임이 크다면 큰며느리의 권리는 도대체, 무엇일까.

  더 많은 가족이 모이면 모일수록 가족 내에서의 근본적인 변화 방법을 모색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 되었다.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한들 한순간 무너져 버리기도 한다. 가족들 스스로가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가족만으로는 해결이 힘들다는 것을,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느낀다. 그런데 이 변화를 위해 가부장제의 확장된 틀인 사회의 역할을 생각하고 있으면 희망보다 자조가 먼저 치솟는다. 미투나 여성혐오에 대한 사회의 반응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기 때문이다.

  딱히 바꾼 일도 없는데 지친다. 너무나 오래도록 감정이입이 되어서 쉬이 지쳐버리게도 된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감정이입이 되다 보면 쇼파에 누운 아버지도 언젠가는 쇼파에서 내려오는 일이 생기고, 많은 가족들이 쇼파에서 멀어져 집 밖을 배회하지 않는 날이 오게 될까. 한 가정의 모습은 한 나라의 모습과도 오버랩되기도 한다.

  돌아가신 이를 기리는 제삿날이 오면 묘하게 불편해지는 마음과 어찌할 수 없는 성질머리로 몇날 며칠을 몹쓸 자손이 되어 보지만, 결국엔 엄마의 마음이나마 편케 해드리는 것으로 귀결되는 제삿날을 무수히 겪으면서 반복되는 것은 자조(自嘲)뿐이었다. 돌아서면 다가오는 제삿날마다 궁극적으로 바꾸기를 원한 것은 제삿날이 아닌 제사의 방식, 돌아가신 이에 대한 애도의 방식이지만 그건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로 비춰지고 만다. 그럼에도 나는 제삿날 즈음이면 늘 같은 말을 반복하고 늘 같은 패배를 겪는다. 며칠 후면 또 한없는 자조의 늪에서 헤맬 것이 틀림없는데, 그건 어김없이 자조의 날, 제삿날이 도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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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3 20:54:02 *.217.15.30

 “며느리들은 모두가 힘겨워하면서도 함께하지 않는다. 격하게 공감되고 '누군가의 며느리는 누군가의 딸' 일텐데 라는 생각도 이런 글들을 접할 때 떠오르게 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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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5 15:04:54 *.247.147.64

휴...에움님의 어머님의 일이지만 또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네요. 애도의 방식이라는 개념에서 차차 바뀌어 가는 것이 있으면 좋겠어요. .. 안그래도 누구에게나 엄마라는 존재는 소중한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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