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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3일 20시 27분 등록

얼마 전에 구독하는 애니메이션 OTT 채널에서 10년쯤 전에 나왔던 작품을 추천해 줘서 다시 정주행을 했습니다. 분명 그 당시에는 가장 새롭고 재미있는 작품이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이제는 시대에 맞지 않는 표현이나 전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작품을 시작으로 더 옛날, 반 정도밖에 이해할 수 없던 애니메이션들도 다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애니메이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셀 작화, 심오하고 어두운 세기말 분위기, 그 안에서도 찾으려고 노력하던 무언가 같은 것이 쏟아져 나오면서, 오히려 그 시대에 살던 때에는 알아챌 수 없던, 지나간 시대의 편린을 마주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요즘 글을 쓰면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에 대한 대답을 찾는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일상의 사소한 일에 대해 쓰면서도 거기에 어떤 메시지나 이야기를 담는 것이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습니다. 일상의 안온함이라는 익숙함에 나 자신은 숨어버린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문학작품이나 에세이에서 작가가 자신의 가장 깊은 속마음을 낱낱이, 그리고 정확하게 적어내려간 부분을 만나면 당황하거나 부끄러움을 느끼곤 합니다. 오히려 예전에는 ‘그래, 이렇게까지 파고들어야 자기 자신을 통해 세상을 본다고 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마음속에 덮어둔 문제를 들춰내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것 같습니다. 작가의 문장을 따라가며 내 안의 문제를 읽어나가다가 책을 덮으면 다시 그것을 잊어버리기를 반복합니다.


아마 그런 글은 ‘무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나간 사건과 시절을 다시 되살려내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아주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익숙한 정보 플랫폼에는 이해하기 쉽고, 자랑할만하며, 멋진 것이 아니면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노력 대비 글이 공유될 수 있는 영역이 너무 적다고 느껴집니다. 또 내가 쓴 것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과 생각을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반응을 해야 하는 것도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그러면서 표현하기를, 생각하기를 멈춘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작년 말부터 몸이 계속 좋지 않아 독서와 글쓰기에 예전만큼 많은 시간을 쏟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러는 과정에서 서서히 자기 자신과 멀어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다른 이야기가 길었습니다만, 오래된 애니메이션을 보게 된 것은 그 애니를 보던 때로 돌아가는 효과도 있었기 때문에, 나의 내면 읽기에 대한 당시의 노력과 시대정신을 되짚어 본 것으로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예로, 당시에 제가 좋아해서 기꺼이 많은 시간을 쏟았던 만화들에서 제가 왜 순간적인 재미 외의 만족을 찾지 못했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는 것은 상당히 일반성을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즐기는 것 이상의 의미는 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만화는 만화로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아주 어렸을 때는 알면서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춘기로, 중2병으로, 감정의 질풍노도로 저도 모르는 사이 흘러들어 갔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실이라는 세상을 견고하고 안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도 또래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표현과 다양성의 고려라는 입장에서는 20년 전보다 많은 작품들이 이런 부분을 신경 쓰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사회가 발전해 온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이야기로서의 완결성이나 전체적인 완성도는 그때의 감성이 훨씬 더 수준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최근 조카가 제가 어릴 때 봤던 만화를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이 아이도 먼 훗날 어른이 되어 같은 만화를 다시 볼 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래된 것이 계속 소비된다는 것은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는 훌륭한 매개체이자 즐거움이니까요.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책, 드라마, 영화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예전에 좋아했던 것을 다시 한번 정주행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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