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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6일 09시 21분 등록
유튜브로 촉발되어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쇼츠, 넷플릭스 등으로 활황중인 영상언어의 범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흐름입니다. 오래전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가  TV와 라디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가벼운 책은 이제 그 자리를 TV나 라디오와 같은 대중매체에 넘겨야 한다고 얘기했을때나 지금이나 사실 별 달라진 것은 없어 보입니다. 사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미술이라는 것은 사진이 나오면서 없어져야 했겠죠. 라디오는 TV가 나오면서 없어져야 했을테고요.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각자 진화를 거듭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가장 큰 위기론이 나오는 것은 역시 책과 독서입니다. 가장 레거시(legacy)이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책의 위기라는 이야기에 대해 살짝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그리 걱정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영상이 책을 대체하려면 고도의 편집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인 독서와 같이 생각할 여지를 만들어주는 영상컨텐츠는 만들기 어렵습니다. 책의 독자는 사색을 위해 잠깐 읽던 책에서 창문으로 시선을 옮겨 바깥풍경을 음미하며 자유로운 사색을 할 수 있지만, 시청자들이 의도적으로 pause키를 눌러서 사색상태에 진입하게 하는 영상컨텐츠는 없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멈출 필요가 없으니까요. 무차별적으로 눈으로 들이닥치는 영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뇌에 충분한 자극이 전달됩니다.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번쩍번쩍하는 것만 보면 본능적으로 눈을 돌립니다. 텔레비젼은 바보상자라고 불리우는데, 사실 바보는 아닙니다. 굳이 바보, 천재 중 분류를 하자면 천재에 가깝습니다. 즉각적인 피드백을 주기 때문입니다. 다음 장면에 대해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바로 나옵니다.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텔레비젼을 보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 때문에 바보상자로 불리우는 것이지 텔레비젼은 천재입니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고의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영상신호처리는 원래 DSP(Digital Signal Processr)라는 기계가 해야 하는 건데, 현대인의 뇌는 밀려 드는 영상신호처리만으로 이미 과부하 상태입니다.

그럼 디지털 매체를 통해 볼 수 있는 텍스트들은 어떨까요? 전자책이나 웹 상의 글 말입니다. 인터넷 전문가 제이콥 닐슨이란 사람이 인터넷 이용자들이 어떻게 웹에 올라와 있는 글들을 읽는지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연구 결과는 어땠을까요? 인터넷 이용자들은 어떻게 웹의 글을 읽고 있을까요? 결과는 어이없게도 "읽지 않는다"였습니다.  웹상의 글들은 모두 하이퍼텍스트죠. 정보전달을 주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링크가 많습니다. 이런 하이퍼텍스트의 해독은 독자의 인지적 부하를 증가시킵니다. 사용자들이 읽는 대상을 깊이 이해하고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관련하여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발췌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최근 출판된 학술적 역사서이든 200년 된 빅토리아 시대 소설이든, 종이책이 전자 기기로 옮겨져 인터넷과 연결될 때 이는 웹 사이트와 같은 존재로 변한다. 단어들은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의 산만함으로 포장된다. 링크 등 디지털 기능들은 독자들을 이곳저곳으로 몰고 간다.... 종이책의 선형성은 책이 독자들에게 권장하는 고요한 집중과 함께 파괴되었다."

같은 텍스트라도 디지털 매체를 통한 읽기와 종이책을 읽는 것은 경험적인 것 뿐만 아니라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저역시 왜 그럴까 항상 궁금한 부분이었는데요. 이 분야를 20년동안 깊이 연구한 노르웨이의 대학교수 아네 망엔의 설명을 이렇습니다. 독서는 우리에게 특정 방식의 읽기를 훈련시키는데 그건 바로 오랜 시간 한 가지에 집중하는 선형적 방식의 읽기입니다. 하지만 화면을 통한 읽기는 이와는 다른 방식입니다. 정신없이 넘기면서 초점을 옮기는 방식의 읽기가 뇌에 훈련됩니다. 다시 말해 대충 흟어보는 것이죠.

그래서 고전이라는 것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몇몇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한 마디로 유튜브가 없어서 그 재미없는 고전이라는 것들이 유명해졌다는 겁니다. 뉴욕대 교수 클레이 셔키는 우리의 오랜 문학적 관습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환경에서 생활하는 데 따른 부작용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고전이라는 것은 나올 일이 없겠죠.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읽기 쉽지 않은 고전입니다(저도 안 읽어봤습니다. 도서관에서 펼쳤다가 그냥 바로 덮었습니다). 오죽하면 동생인 로베르 프루스트가 그 책을 읽을 시간을 얻으려면 중병이 들거나 다리가 부러져야만 한다고 말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 아무도 중병이 들거나 다리가 부러져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같은 책을 보지 않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시간과의 싸움은 필승이죠.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담론>에서 신영복 선생은 이렇게 썼던 내용으로 대답을 갈음하겠습니다.

"영상서사 양식은 그 압도적 전달력에도 불구하고 인식 주체를 소외시킨다는 점에서, 그리고 인식주체를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회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사철의 추상력과 시서화악의 상상력, 영상서사의 압도적 전달력을 소중하게 계승하되 이것이 갖고 있는 결정적 장단점을 유연하게 배합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합니다."

개개인이 배양할 수 있는 추상력, 상상력, 그리고 논리력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남은 한주도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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