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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3일 18시 47분 등록

지난 주 금요일에 감동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바로 충남 서천에서 온 책 <아홉 빛깔 무지개>와 모시떡입니다. <아홉 빛깔 무지개>는 서천여자중학교의 인문 책 쓰기 동아리 ‘다독다독 글샘’의 글 모음집입니다. 2019년 한 해 동안 동아리 학생 아홉 명이 쓴 시와 수필, 합동 소설이 담겨 있습니다. 


 

“작가님 사시는 곳이 파주인 것 같은데, 이곳이 너무 멀고 또 작은 곳이라서 오시기 힘드시지 않을까 해서 메일을 보낼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지난 5월 서천여중의 신애정 선생님으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총 160명의 중학생이 다니는 충남의 작은 중학교에 '인문 책 쓰기 동아리'가 있고, 아홉 명의 학생이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동아리 학생들을 포함하여 1~3학년 30여명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연을 요청하셨습니다. 서천까지 가기 쉽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배려 가득한 강연 요청 메일을 받으니 가고 싶어졌습니다. 마음이 통한다면 어디든 못 가겠습니까?  

 

“아이들이 작가님 멀리 파주에서까지 자기들을 위해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감과 감사함을 갖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날 똘망진 눈을 가진 아이들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엄마의 글쓰기>를 출간하고서 엄마들을 위한 글쓰기 강연을 여러 번 했지만, 중학생 아이들을 위한 글쓰기 강연은 생각만 해도 긴장이 됐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던 큰아이의 조언을 바탕으로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7월, 잔잔한 벽돌에 기와를 얹어 단아한 멋이 나는 서천여자중학교에서 서른 명의 예비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초여름의 나른한 오후 7, 8교시 90분 연강, 글쓰기 실습 시간에는 ‘슥삭슥삭’ 연필 닳는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엎드려 자는 아이 하나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쓰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강연을 마칠 무렵 서천여중 아이들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중학생을 위한 글을 쓰고 있는데 2019년에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책이 출간되면 가장 먼저 서천여중의 책 쓰기 동아리로 보내겠다고 말입니다.  

 

“아이들에게 강의 어땠냐고 물어봤는데 물어보는 아이들마다 너무 좋았다고 얘기하네요. 글쓰기에 도움을 많이 받을 것 같다고도 하구요. 작가님께서 저희 아이들 수준에 맞게 내용을 풍부하게 준비해 주셔서 아이들이 잘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권정생 선생님의 이야기, 그리고 들려주신 동화, 10분 글쓰기 너무나도 유익하게 잘 들었습니다.” 

 

2019년 12월 17일 <중1 독서 습관>이 출간되자마자 서천여중으로 보냈습니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지요. 그리고 지난 주 2020년 1월 10일 서천여중 책 쓰기 동아리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아아... 이 아이들 또한 꾸준히 글을 쓰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강연 요청부터 피드백까지 꼼꼼하게 챙겨주신 동아리 담당 신애정 선생님은 머리말에서 ‘이 책이, 그리고 동아리원으로 활동했던 일이, 학생들이 분신과도 같이 여기는 롱패딩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기억이었으면 한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눈물이 왜 짤까 했는데
그건 눈물이 아니라 파도였나보다 

 

그래서 마음이 요동칠 때마다
흘러넘치고 

 

바라만 보아도
빠질 것만 같았나보다 

 

그래서
너의 눈에는 바다가 보였나보다  

- 노O진, 눈물 

 

과학 시간에 ‘지구 표면의 70%는 물이고, 그 중 97% 정도가 바닷물이다’라고 배운 시인은 사람이 작은 지구일지도 모른다고 가정하여 사람의 눈이 바다이고 눈물이 바닷물이자 파도라고 상상한 것입니다. 기발한 비유지요?  

 

가장 평범한 ‘나’
학교에 가니 화려한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부러운 ‘나’ 

 

화장을 하고
옷을 사고
치마를 줄이고
욕을 하고 

 

어느 날 거울을 보면
‘나’는 사라지고
불편한 화장, 어울리지 않는 욕을 한
가짜 ‘나’가 보인다.

- 박O은, 가짜 ‘나’

 

중학생이 되어 달라진 자신을 마주하며 진짜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출구를 향해 끝없이 걸어간다.

 

여린 날개로 하늘 높이 날기 위해
날갯짓을 준비한다. 

 

어둠을 이겨내고
출구를 향해 끝까지 달려가라. 

 

고난을 떨쳐내고
하늘 높이 힘차게 날아가라. 

- 이O인, 열여섯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 연상되지 않나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열여섯의 열정이 느껴집니다.  

 

세월호 희생자의 입장에서 또 세월호 유가족 중 희생자의 부모님의 마음으로 시를 쓴 신O서, 힘들 때 힘내라는 말이 오히려 상대를 망칠 수 있다고 천천히 생각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으라고 말을 해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시를 쓴 김O지. 그냥 작가가 아닌 해외 유명 영화 제작사의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을 수필로 담은 김O혜. 실제 청소년들의 친구관계에 대한 문제를 바탕으로 합동 소설을 쓴 박O연, 이O리, 이O인, 이O은.
 

<아홉 빛깔 무지개>를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일렁였습니다. 진짜 ‘나’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겪은 이가 되어 시를 쓰고, 학교 무대에 서기 위해 꿈을 꾸고 연습을 하며, 친구 관계에 관해 함께 소설을 쓰는 아이들. 이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복기하니 그저 그 자리에 함께 했다는 이유로 행복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너희가 이제껏 연습했던 것 중 지금이 제일 좋았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너무 많이 넘어지느라 멍이든 내 무릎에겐 반창고 같은 말이었다. 다행이다.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노O진의 수필 속 한 구절을 인용하여 한마디를 보탭니다.
“너희가 이제껏 쓴 글 중에서 지금이 제일 좋았어!”
생애 첫 책을 출간한 서천여중의 아홉 작가님들께 힘껏 박수를 보냅니다. 


김정은(toniek@naver.com) 드림


*      *      *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습니다 시리즈를 좋아하는 분만 초대합니다.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습니다,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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