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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7일 04시 45분 등록


흰 밥에 고깃국이 놓인 상차림이 부잣집의 상징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건강이나 맛을 위해서도 흰 밥 보다는 검은 쌀이나 현미가 섞인 잡곡밥을 많이 먹지요. 빵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에야 통밀이나 통곡물로 만든 검은 빵이 건강한 빵으로 흰 빵보다 비싸게 팔리지만, 불과 몇 십년 전만해도 검은 빵은 흰 빵을 살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반면에 흰 빵은 부자들의 전유물이었지요. 빵의 색깔이 계급이나 부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건 빵의 역사와 거의 일치합니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빵을 만들던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오디세우스가 없던 오디세우스의 궁전에서 매일 같이 파티를 하던 사람들이 먹는 빵을 만들기 위해 어린 노예 소녀는 밤새 무릎이 닳도록 맷돌질을 했었지요. 밀을 가루로 만드는 일은 이처럼 매우 고단한 작업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일만은 아닙니다. 제분에 풍차를 이용하기 시작한 건 12세기 부터입니다. 그 때까지 밀 알곡을 희고 고운 가루로 만들기 위해서는 맷돌에 갈고 체로 치는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해야 했습니다. 또한 흰 밀가루는 만드는 과정에서 양이 많이 줄어들지요. 이와 같이 하얀 빵을 만드는 일은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고 비싸다 보니, 흰 빵은 일부 지배계급과 부자들 밖에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습니다. 나중에는 흰 빵을 먹는 것 자체가 신분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일부 귀족들은 자신의 부와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더욱더 흰 빵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가난한 평민들은 제분 과정의 부산물이나 정제가 덜 된 밀가루로 빵을 만들 수 밖에 없었지요. 그나마 이것도 구할 수 없었던 하층민들은 호밀, 귀리, 보리, 기장 등을 재료로 빵을 만들었고요. 그래서 그들이 먹는 빵은 거칠고 검은 (또는 갈색) 색이었습니다.

‘흰 빵을 먹는 사람들'. 그 시절 부자들을 부르는 또 다른 명칭이었지요. 이들의 화려한 삶은 당시의 문학이나 그림 등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흰빵 & 검은빵_small.png

왼쪽: 뤼뱅 보쟁, 〈체스판이 있는 정물〉(1630), 오른쪽: 루이 르냉, <행복한 가정>(1642)

왼쪽 그림은 프랑스의 화가 뤼뱅 보쟁 (Lubin Baugin: 1612~1663)1630년에 그린 〈체스판이 있는 정물〉 입니다. 이 그림에는 당시의 사치품들이 등장합니다. 체스판을 비롯해 악기와 와인, 유리병은 17세기 바로크 시대 귀족들의 화려하고 여유로운 삶을 보여주는 사치품들입니다. 여기에 흰 빵이 당당하게 한 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부드럽고 맛있어 보이는 흰 빵은 속살 뿐 아니라 겉도 하얗지요. 좀 덜 구워진 것 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실제로 당시의 귀족이 어찌나 흰 빵을 좋아했던지 껍질도 하얗게 만들기 위해서 살짝 덜 구웠다고 합니다.

뤼뱅 보쟁은 정물화로 유명하지만 종교나 신화적 의미가 담긴 그림도 많이 그렸습니다. 주로 성모 마리아나 아기 예수, 또는 성가정을 주제로 그렸는데요. 그의 정물화와 종교화는 스타일이 확연히 다릅니다. 정물화가 세밀한 관찰을 통해 물체를 배열하고 엄격한 양식에 맞춰 사실적으로 묘사된 반면에 종교화는 양식화 되고 우아한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종교화의 경우,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면서 라파엘이나 파르미쟈니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두가지 그림의 성격이 얼마나 달랐는지 후세 평론가들은 두 명의 다른 화가가 뤼뱅 보쟁이라는 하나의 이름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평론가 중에는 그의 정물화 마저도 그저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심오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체스판이 있는 정물〉은 <오감(The Five Senses)>이라고도 불리는데 그림 속의 사물이 각각 감정을 담고 있다고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알아볼까요. 그림 속의 악기와 악보는 청각, 꽃과 거울은 시각, 카드와 부드러운 지갑은 손끝의 촉각을 자극하는 물체들이지요. 여기에 맛있는 빵과 와인은 미각과 후각을 자극합니다. 이들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고 만족시킵니다. 즉 세속적 삶의 쾌락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물체들의 배열과 구도를 볼까요. 즐거움을 상징하는 카드와 악기는 테이블에서 떨어질 듯 위태롭게 놓여 있습니다. 언젠가는 끝난다는 의미겠지요. 반면에 예수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빵과 와인은 뒤 쪽에 안정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감사와 사랑을 상징하는 카네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쾌락은 잠깐이지만 영혼의 양식과 사랑은 영원하다는 걸 의미하는 걸까요. 이 그림은 놀랍게도 보쟁이 스물 여덟 살 때 그렸습니다. ‘프랑스 정물화가 중에 가장 혁신적인 화가라는 평을 받을만 하지요.


오른쪽 그림은 루이 르냉(Louis Le Nain :1603~1648)<행복한 가정> 입니다. 르냉 역시 프랑스 화가로 프랑스 북동부에 위치한 라옹(Laon) 출신입니다. (앙투안), 동생(마티외)와 함께 삼형제가 모두 화가였는데요. 농촌에서 자란 그들은 소박한 농민의 삶을 그렸고, 검소한 농촌 가정이나 농민의 노동을 통하여 인간적인 진실을 추구하였습니다. <행복한 가정>세례 후의 귀가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그림 오른쪽, 엄마에게 안긴 아기가 세례를 받고 온 후의 행복한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지요. 이렇게 축복받고 행복한 날에 그들이 먹는 음식은 고작 딱딱하고 맛없어 보이는 커다란 갈색 빵입니다. 어쩔 수 없는게 이 딱딱한 호밀빵 인지 곡물빵이 당시 가난한 농부들의 주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 부자의 빵과 가난한 사람의 빵을 그린다면 어떨까요? 위의 두 그림과는 반대로 부자들의 식탁에는 통곡물이나 호밀로 만든 검은 수제 깜빠뉴가 올라와 있겠지요. 가난한 사람의 식탁에는 공장에서 만든 하얀 식빵이 놓여있을 겁니다. 검은 빵은 흰 빵보다 정말 좋은 빵일까요? 다음주에는 검은 빵과 흰 빵이 등장하는 문학을 통해 이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보겠습니다.

어느새 10월입니다. 이번주에도 지난주처럼 쉬는 날이 있네요. 쉬어 가면서 더욱 맛있고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참고문헌

<역사학자 정기문의 식사> 정기문, 도서출판 책과함께, 2017

<빵의 역사> 하인리히 E. 야콥, 곽명단, 임지원 옮김, 우물이 있는 집, 2009

<빵의 지구사> 윌리엄 루벨, 이인선 옮김, 휴머니스트, 2017

<빵 와인 초콜릿> 심란 세티, 윤길순 옮김, 도서출판 동녘, 2017

뤼뱅 보쟁 〈체스판이 있는 정물〉: https://en.wikipedia.org/wiki/Lubin_Baugin

루이 르 냉 <행복한 가족>: https://en.wikipedia.org/wiki/Le_Nain


--- 변경연에서 알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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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80.1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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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7 19:47:53 *.212.217.154

10여년전 처음 외국에서

왜그렇게 맛없는 호밀빵을 좋아할까 생각했었드랬죠,


지금은 맛나서 찾아먹네요^^

프로필 이미지
2019.10.14 07:51:21 *.180.157.29

호밀빵에 맛들이면 흰 빵 못 먹지요.

자극적인 맛이 아닌, 건강한 맛에 입맛을 들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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