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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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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3일 12시 55분 등록

불안의 짐짝들에게

 

입술 뜯는 버릇을 고쳐야지 고쳐야지 하는데 당최 고쳐지지 않는다. 아내는 물론이고 딸까지 나서서 지청구를 주곤 했지만 도통 멈춰지지 않는다. 요 며칠 간은 더욱 심해져서 입술 여기저기 피딱지가 앉았다. 나는 불안한 모양이다.

 

불안은 낯선 곳에 산다는 물리적 불안과 때를 같이해 날아든 존재론적 흔들림이었다. 입술 뜯는 버릇을 고치지 못할 만큼 나는 흔들렸던 모양이다. 불안은 피딱지가 되어 입술과 내 삶 여기저기에 더럽게 앉았다. 눈에 동공이 풀려선 저도 모르게 입술을 뜯었고, 삼켜야 할 때를 잊어버리며 우적우적 씹는 밥에 늘 불안이 살았다. 식어버린 커피를 괜히 홀짝거리며 불안을 목구멍 저 안으로 넘겼다. 지나간 날들을 부정해야 했고, 관념을 철회하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상식들을 수정하고, 웃기지도 않은 개똥철학이 수시로 생겨났다 사라지며 불안을 떨어댔으니 내 존재는 흔들리지 않고 배길 수 없었다. 그저 편하게 살 팔자는 아닌 모양이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내 길일까, 내가 가는 길이니 나의 길이 아니고 누구의 길이겠는가, 아니야, 이 길은 내 길이 아닐지도 몰라.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길을 의심하고 길 위에서 길을 부정했다. 내가 태어난 나라에 살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건 이렇게나 무섭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을 송두리째 의심할 만큼 강력하다. 누군가는 장차 적응 될 거라 얘기했고 또 누군가는 다 그렇게 너같이 생각하다 그 과정을 거치며 10년이고 20년이고 낯선 타국에서 정 붙이며 산다고 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은 잘도 살아가는 것 같다. 포털에서 보는 베트남의 일상은 마치 축복 같다. 사사롭고 사소한 이야기들이 블로그와 개인 SNS에 발랄하게 장식되어 있다. 하루하루가 기쁨과 여유로 도배돼 있다. 그런데도 나는 언제까지 사니 마니 하는 원시적인 고민만 가득한가. 아닐 테다. 사람들도 만만치 않은 타향살이가 힘들 거야, 이방인 시선을 감당해야 하고 마음을 터 놓고 속을 뒤집어 까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없다는 건 치명적일 거야, 그들도 참아내는 거겠지.

 

누군가 말하기를 인생을 돌아보며 후회되는 단 한 가지는 그때 난 왜 그렇게 심각했을까였다고 하니 꼭 나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그렇다. 나는 여기가 아니었어도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질문을 해대며 나를 못살게 굴었을 테다. 어디에 있건 무엇을 했건 나는 괴로웠을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내 자신이 되기 위해 감당해야 할 당연한 괴로움인지 모른다. 길인지 아닌지, 맞는지 틀린 지를 묻는 중에 이미 거대한 답 위를 기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청구를 듣고도 멈추지 못했던 입술 뜯기 같은 불안은 마흔 줄의 인간에게 필요한 삶의 단백질인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 있는 실존의 나와,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존재의 나를 오가며 도무지 안절부절못한 두려움은 인생의 필수 아미노산일 수 있다. 폭포처럼 떨어져 깨질 삶을 대비하는 평가전인지도 모른다. 떨어져 깨지고 나면 웅덩이 하나가 만들어 질지, 웅덩이를 채우며 유유하게 흐르는 넓은 강을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고 여전히 산정 언저리를 흐르며 온갖 바위에 부딪히면서 불안은 엄습하지만 아마도 그 길 위에서 풍요로워질 것이다.

 

매일 쓰던 글은 그 불안의 자식들이었다.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써서 바쳤다. 취지도 목적도 없는 가벼운 글을 쓰면서 사소하고 얕은 내 이야기들이 혹 무거운 삶을 사는 이에게 냉소를 야기하지 않을까 또 늘 불안하다. 어디든 따라다니며 에워싸는 삭풍 같은 불안을 나는 달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나는 인간이므로, 방법은 없다. 끄떡없던 세상 하나가 무너져가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이 무거운 짐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물러설 곳 없는 이 벼랑의 언어를 나는 좋아한다. 어쩔 수 있는인간이 아닌 것을 감사하며, 이 짐짝들을 달고 어쩔 수 없다의 스피릿으로 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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